[디지털데일리 백승은 기자] 폐지가 새 종이로 다시 태어나고, 시간이 지나 새 종이가 다시 헐게 되면 또다시 새 종이로 탈바꿈한다.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엡손의 종이재생장치 ‘페이퍼랩’에서는 현실이 된다.
900장의 헌 종이를 넣으면 새 720장이 돌아오는 마법 같은 기술이 담긴 페이퍼랩을 24일 일본 나가노현 시오지리시에 자리한 엡손 히로오카 사무소에 방문해 직접 작동 과정을 지켜봤다.
페이퍼랩은 공간 한쪽을 꽉 채울 만큼 큰 몸집을 갖췄다. 양팔을 벌려도 다 들어올까 말까 한 크기다. 두께 역시 상당히 투박하다.
몸집은 커다랗지만 기술은 섬세하다. 페이퍼랩을 작동하게 하는 열쇠는 ‘드라이 섬유 기술(Dry Fiber Technology)’이다. 폐지를 긴 섬유로 한 차례 분해한 후 이를 결합하는 기술을 뜻한다.
폐지를 넣은 후 작동 버튼을 누르자 3분가량이 지나자 새 종이가 출력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제품 외부에 어떤 과정을 거쳐 새 종이가 만들어지는지 그래픽으로 알려준다. 처음에는 파쇄기처럼 잘게 쪼개졌다가 이후에는 가루처럼 갈리고, 이 가루가 뭉쳐 결합돼 새 종이가 된다.
폐지 900장을 넣으면 새 종이가 700장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1시간에 A4용지 720장, 1분에 12장을 만들어낸다. 이미 본의 3대 은행 중 하나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을 비록해 유럽 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활용되고 있는 만큼 기술 구현력은 상당히 높았다.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폐지 재활용 설비와는 달리 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보통 A4 용지 1장을 만드는 데 물 한 컵이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획기적인 변화다.
통상 종이 생산 전과정에서는 종이 원료의 운반, 제지의 유통 등으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그렇지만 페이퍼랩으로 90g/㎡ 무게의 종이를 약 7.9톤 생산할 때, 1년 간 약 6.2톤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미 사용한 종이를 재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엡손은 이를 ‘카본 오프셋(carbon offset)’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즉 실질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다.
추가 목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친환경적이다. 약 7.9톤의 종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사용된 폐지의 펄프를 일부 사용한다고 가정해도, 85그루의 목재가 새롭게 원료로 사용된다. 이와 달리 페이퍼랩은 100% 사용된 폐지만을 원료로 종이를 만들기 때문에 새로운 목재 사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다만 제작 초기인 만큼 일부 새 종이가 울어서 나오거나 종이의 경사가 울퉁불퉁하게 구현되는 등 불량률은 다소 존재했다. 재활용지인 만큼 일반 종이와는 달리 다소 두꺼운 점도 눈에 띄었다. 현장에 있던 엡손 관계자에 따르면 통상 700장에서 20장가량은 불량이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선보일 업그레이드 모델에서는 이 점을 개선해 적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눈에 띄는 점은 재사용 용지를 다시 재사용할 수 있다는 점. 현재 상용화된 제품에서는 10%만 가능하다. 즉 재사용 용지 10장을 넣으면 1장의 ‘재재사용’ 용지를 얻을 수 있는 것. 업그레이드 모델에서는 이 기능을 확 살려 100%를 달성할 계획이다. 크기 역시 현재보다 절반 가량 줄어든다. 한국에서는 이 업그레이드된 제품이 2024년 출시될 예정이다.
오가와 야스노리 엡손 글로벌 대표는 페이퍼랩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업그레이드 제품은) 현재보다 절반 정도 작아질 것이며, 기기에 파쇄기까지 붙어서 모여진 폐지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이퍼랩은 즉각에서 문서를 파쇄할 뿐만 아니라 가루 상태에서 재활용하기 때문에 보안 정도가 높다. 이에 대해 오가와 대표는 “고객들은 보안에 대해 많은 만족을 보이고 있다. 또 굳이 재활용 센터를 방문하지 않고 사무실 안에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크기가 너무 크고, 가격이 비싼 것은 아직 한계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히로오카 사무소의 주요 사업 중 하나는 잉크젯 프린터 생산 및 기술 개발이다. 엡손의 기둥 사업인 잉크젯 프린터 제품과 더불어 잉크젯 프린터용 ‘프리시전코어(PrecisionCore)’ 프린트 헤드를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는 엡손의 프린터로 나타낸 다양한 제품들을 둘러봤다. 한쪽 벽을 모두 덮는 거대한 현수막부터 티셔츠, 라벨지, 벽지와 바닥, 심지어 돌에도 원하는 도안을 프린트해 구현해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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