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우리 충전기의 부품 문제를 발견하고 100% 리콜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는 남녀 전직원, 이훈 대표도 드라이버를 들고 현장에 나가 부품을 교체했다. 인상 깊은 경험이었다. 고객의 욕을 직접 다 들어보면서 제조업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잡게 됐다. 이젠 누굴 만나도 다시는 그런 제품을 만들지 말자고 이야기하곤 한다.”
지난 9일 경기도 성남시 경기기업성장센터 에바 사무실에서 만난 신동혁 부사장이 들려준 일화다. 에바는 전기차 충전기 제조사로는 처음으로 2022년, 2023년 CES(세계 최대 IT박람회) 혁신상을 2회 연속 수상한 업계의 유망 스타트업으로 알려져 있다. 독특한 기술과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가 특징인데, 위 일화처럼 직접 체득한 경험에 따른 품질경영에 대한 의지도 남다른 편이었다.
◆ 삼성 씨랩의 유망주, 기술·인력·시기 삼박자 타고 시장 안착
에바의 모태는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양성 프로그램인 ‘C-랩(씨랩)’이다. 씨랩의 35번째 스핀오프 기업으로 2018년 독립했다. 초기부터 ▲자율주행 로봇 충전기 ▲근력증강 이동식 충전기 ▲차량 탑재용 충전기 ▲전력공유 충전기 등 여러 참신한 아이디어 상품을 내놔 시장의 눈도장을 찍었다.
특히 기존 방식 대비 충전기 설치·유지 비용, 도입 편의성을 대폭 개선한 전력공유형 완속충전기 ‘스마트 차저(Smart Charger)’는 현재 에바의 매출을 책임지고 있는 효자 상품이다. 비공식 통계로는 완속충전기 시장에서 지난해 판매량 기준 상위권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올해 출시된 최신 모델은 세계 최초로 화재감지 기능도 탑재됐다. 전기차 화재 사고에 대한 사회적 주목도가 높아진 최근 상황을 고려할 때 전작에 이어 좋은 성과가 기대되고 있다.
신 부사장에 따르면 에바의 성장 과정에는 기술력, 인재, 시기의 고른 삼박자가 함께했다. 우선 기술 측면에서 ‘멀티탭’처럼 하나의 배선에서 다수의 충전기가 전력을 나눠 쓰는 전력공유 기술은 그 자체로 그리 특별한 방식은 아니다.
다만 충전기를 확장 설치하려면 복잡한 세팅 과정이 필요하다. 에바는 이를 기기만 연결하면 자동으로 공유 세팅이 이뤄지는 원천 특허를 개발해 적용함으로써 차별화에 성공했다. 도입 고객 입장에서 동일한 방식이라면 비용과 시간을 크게 절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기와 인재 확보 측면에도 운이 따랐다. 신 부사장에 따르면 지난해 초 ‘반도체 수급 대란’이 한창일 때, 경쟁사들의 충전기는 대부분 운영체제 구동에 반도체를 포함한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가 필요한 모델이었다.
부품난이 가중되면서 경쟁사들은 확보한 AP를 대부분 급속충전기에 우선 사용하는 전략을 취했는데, 이는 완속 충전기의 국내 공급망이 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완속은 급속보다 충전 속도는 느리지만 일반 아파트나 일반 가정집에도 설치할 수 있어 그 수요는 적지 않다.
때마침 에바의 완속충전기는 AP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한 모델이었다. 또 대기업 출신의 유능한 구매 담당자도 에바에 합류하면서 경쟁사들보다 부품 수급도 우위를 점하게 됐다. 이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물량을 적기에 공급 가능했던 거의 유일한 업체로, 에바는 완속충전기 시장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사업 기반을 닦게 됐다.
◆ 기술, 품질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신제품이 세상 바꿀 것”
그러나 에바는 안주를 택하는 대신, 특허 경쟁력을 비롯해 기술력, 품질 고도화에 방점을 두고 다음 성장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신 부사장은 “사내에서 특허 보상제를 운영 중”이라며 “특허 출원과 등록에 적잖은 인센티브를 주다 보니 직원들도 경쟁적으로 특허를 낸다. 덕분에 특허청이 부여하는 A급 특허 보유량이나 해외특허 출원에서도 앞서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다만 특허나 기술력만 갖고 있다고 사업에서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에바가 전직원이 드라이버를 손에 잡아야 했던 경험으로 얻은 ‘품질관리’의 중요성은 충전기 시장의 문제와도 맞물리면서 다음 사업의 행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전기차 충전기 산업은 잦은 고장 문제에 대한 고객 불만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 업계에서 정부의 충전기 보조금 수취, 이익 극대화를 우선해오면서 품질은 뒷전이 된 까닭이다.
신 부사장은 “급속충전기만 하더라도 파워모듈이란 핵심 부품의 품질이 중요한데, 여기서 제조사가 보조금 이익을 고려해 원가절감을 하면 제품은 당연히 고장이 잦을 수밖에 없다”며 “같은 가전이라도 중국산보다 삼성전자 제품을 더 많이 쓰는 이유도 결국 품질과 수리의 용이성 때문이다. 최근 미국 출장 중 현지 공장 부지를 알아볼 때도 에바는 충전기 업계의 삼성 같은 존재가 되자고 다짐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에바는 오는 11월에 출시할 신규 100kW급 급속충전기 제품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신 부사장은 “우리가 완속충전기 시장은 많이 장악했지만 급속충전기 시장에선 아직 미미하다. 하지만 올해는 새 제품이 다시 한 번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앞서 지적한 파워모듈을 혁신하고 내구성 강화에 집중한 제품이란 설명이다.
이 밖에도 현재 대부분 철제 기반인 충전기들은 소재 특성상 녹이 슬기 쉽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밀폐형 구조 등을 잘 검토해 고장 나지 않는 고품질 충전기를 보급해 나가는 것이 에바의 중장기적 사업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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