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문기기자] “파운드리에 종사하는 삼성 2만명과 TSMC 6만명,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 시스템LSI 1만명에 퀄컴은 4만5000명. 국내 부족한 소프트웨어 종사자까지 포함시킨다면 10대 1의 싸움이다.”
김정호 카이스트(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양항자 의원(무소속) 주최로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美 반도체 유일주의, 민관학 공동 대응 토론회’ 자리에서 반도체 안보 전략과 관련해 한국의 필수 의존성 확보와 초격차 확대 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재 확보가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이러한 미국의 자국우선주의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 각계 최고의 전문가들과 우리 정부의 대응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미국은 2019년부터 엔들리스 프론티어 산업과 관련한 법안에 착수하면서 연구개발(R&D) 투자를 1500억달러에서 5000억달러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후 실제 법안이 발의되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 지지를 받았다. 미국 국무부 역시 대만 파운드리 업체인 TSMC와 협상을 시작해 120억달러 미국 내 생산계획 논의에 돌입했다. 이후 2020년 6월 ‘미국을 위한 반도체(CHIPS for America)를 발의하면서 엔들리스 프론티어 법과 병합됐다. 마침내 2022년 7월 칩스법이 상하원 모두 통과되면서 같은해 8월 조 바이든 대통령 서명으로 발표됐다.
칩스법은 미국 내 반도체 산업에 기여하는 활동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5년에 걸쳐 미국 내 반도체 제조와 조립, 테스트, 패키징, 연구개발을 위한 시설과 장비에 무려 540억달러를 투자한다. 미국 반도체 제조시설 확장과 인력개발, R&D 등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한편,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기업은 25%의 세액공제 혜택이 부여된다.
다만, 수혜 기업의 우려대상국가 진출과 투자 방지라는 일명 가드레일 조항이 문제시됐다. 중국과 러시아, 이란, 북한 등 미국 상무부와 국방부, 국가정보국 등의 지정하는 우려대상국가에 대한 발전을 억제하겠다는 것. 이를 업계에서는 독소조항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국은 칩스법을 통해 반도체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정덕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발제에 나서 “제조 및 시설 투자 인센티브 지급 계획서(2월 28일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워크포스(인력) 단어만 131회로 가장 많이 언급돼 있다”라며, “참여 기업들의 비즈니스 생산뿐만 아니라 시설인력과 건설인력 두 그룹에 대한 맞춤형 전략을 제시해야 하며, 지원 기업은 지역교육과 고등교육 기관을 포함해 전략적 파트너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명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도로 숙련된 다양한 인력은 칩스 인센티브 프로그램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라며, “강력하고 장기적인 인력 전략이 칩스 법안의 경제 및 국가 안보 목표 달성에 핵심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미국은 국립반도체기술센터(NSTC)에 20억달러를 투자하고 미국에 들어오는 반도체 기술을 공유하도록 하며, 후공정 패키징 발전을 위한 NAPMP도 가동한다. 그 다음 단계까지 준비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국내 반도체 인력 양성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반도체 분야에 필요한 인력은 12만7000명 수준이지만 현행 공급 규모는 5만명에 그친다. 정덕균 교수는 “나머지 7만7000명을 어디선가 공급하거나 추가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는데, 이는 미국과 중국, 대만도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과제”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과 중국, 대만은 인력 양성과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해외 유학생을 확보하기 위해서 STEM 분야 해외 유학생 미국 내 취업을 확대하고 있다. 기업요구로 반도체 분야 해외 인력 채용 촉진 입법까지도 검토 중이다. 중국은 직접회로를 1급 학과로 지정하고 전역에 관련 대학과 학부를 신설하고 있다. 말 그대로 혜택을 퍼 주고 있는 셈이다. 대만 역시 IT 산업를 황제산업이라고 인식하고 교육 지원에 전방위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 교수는 “인력을 양성해서 외국에 다 뺏기면 승산이 없다. 자체적으로 인력을 붙잡을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라며, “정부가 대학연구소나 수행기업에 R&D 투자만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정부와 수행기업이 함께 나서 지엽적으로 특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목했다.
이어, “미국은 NIW라고 해서 고학력자와 특수재능보유자, 전문직 등 한국의 유능한 인력을 미국 내 취업시키고 있다”라며, “중국도 인력 흡수를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며, 연구개발 과제를 생성해 중국에 귀국하면 연구개발 지원과 창업비 지원 등 혜택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인력이 국경을 통해서 왔다갔다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환경을 가지고 있으면 다 뺏길 수밖에 없다”라며, “(유능한 해외 인재를) 받아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데 굉장히 우리는 소극적이다”라며 개탄했다.
실제 미국은 대학과 기업간 적극적인 협력을 관장하고 귀국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은 정착비와 R&D 과제비, 국가 석학 칭호 부여과 우선 지원, 연구자 가족까지 의료, 교육, 주거 혜택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의 경우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외국인기술자 소득세를 10년간 50% 감면하고, 소부장 관련 외국인 기술사 소득세 3년간 70% 감면 등 수동적인 지원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정호 교수 역시 미국과 중국 등에 대응하기 위한 외교 전략에서 인재 확보가 절대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 유지와 확대, 미국과 동맹협력, 고성능 메모리 국내 사수 등의 전략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인력이 담보돼야 한다는 것.
김 교수는 “미국의 투자는 천천히 진행하면서 동맹 협력과 규제 완화를 요구해야 한다”라며, “필요하다면 한미 반도체 협력 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며, 미국 초과투자 수익률, 정보공개, 관련 조항 삭제 등의 요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