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 기자] 남미의 자원 부국 칠레가 자국의 리튬 산업을 국유화하겠다는 충격 선언으로 관련 업체들의 주가가 급락하고 국제 리튬 선물가격이 급등하는 등 혼돈에 빠졌다.
앞서 지난 20일(현지시간) 가브리엘 보릭(Gabriel Boric) 칠레 대통령은 "경제를 활성화하고 환경 보호를 위해 리튬 산업을 국유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현재 칠레는 세계 2위의 리튬 생산국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보릭 대통령은 이날 TV 대국민 연설에서 "국유화는 우리가 지속 가능하고 발전된 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우리가 이것을 놓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앞으로 칠레에서의 리튬 계약은 국가 통제를 받는 민관 협력관계로만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여파로 칠레에서 자원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세계 1위 리튬 생산업체인 알베말의 주가는 21일(현지시간) 마감된 미국 증시에서 전일대비 10.00% 급락했고, 2위업체인 SQM의 ADR 가격도 전일대비 18.57% 급락으로 마감했다.
반면 이 발표로 그동안 약세를 보였던 리튬 선물 가격이 중국 우시 스텐인레스강 거래소 선물시장에서 하룻새 11%급등하는 등 국제 광물 가격이 다시 들썩이는 모습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날 보릭 대통령은 알베말과 SQM의 기업명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기존 계약을 해지하지는 않겠지만 기존 계약이 만료되기 전에 기업들이 국유화 일정에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기존 계약에 따르면, SQM의 계약은 2030년, 알베말의 계약은 2043년에 만료될 예정이다.
이같은 칠레의 국유화 선언은 이미 지난해 3월 러-우크라이나 전쟁이 본격화되고 글로벌 자원 공급망에 교란이 생기면서 어느정도 예고됐던 수순이다.
실제로 앞서 멕시코는 지난해 리튬 개발 사업을 국유화했고, 인도네시아는 2020년 배터리 핵심 소재인 니켈의 수출을 금지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국가의 개입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와 병행해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등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들어가는 주요 광물 생산국들을 중심으로 국가적 자원 협의체 구성 논의도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본질적으로 관련 국가들 중심으로 '자원의 무기화' 수순을 밟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따라 리튬을 비롯한 국제 광물 가격의 담합 등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다.
공교롭게도 과거 석유와 유사하게, 리튬과 같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도 생산지역과 소비지역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원 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앞선 1970년대이후 수차례 석유 파동을 거치면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중동 산유국 중심의 OPEC까지는 아직 아니지만 광물 자원부국들은 전기차 시대가 경제적 이득을 얻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편 이같은 칠레의 국유화 발표에 대해 앨버말측은 "물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며 칠레의 추가 성장에 대한 투자와 신기술 사용에 대한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게 미칠 영향도 현재로선 제한적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중에서는 SK온이 SQM과 장기공급계약을 맺고 광물을 조달받고 있다.
다만 칠레와 같은 국유화 선언이 연쇄적으로 나타나게될 경우, 전기차 배터리의 글로벌 공급망 체계가 다시 불확실성이 커지고,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전기차 산업 생태계 전반에는 악재로 인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