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SM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 3사의 중장기 성장 방향성이 위협받는 상황으로, 카카오는 SM엔터테인먼트와의 파트너십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 7일 카카오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지분 공개매수 시작을 알리며 낸 입장문 일부다. 얼핏 보면 SM도 카카오 공동체에 속해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전략적 사업 파트너 SM을 향한 카카오 애정과 신뢰는 굳건해 보인다. 현 SM 최대주주 하이브 움직임을 ‘위협’이라고 표현한 대목에서는 사뭇 절박함까지 느껴진다.
카카오와 하이브 간 1조원 규모 ‘쩐의 전쟁’이 시작된 가운데, 연일 신고가를 기록하는 SM 주가에 업계 안팎이 주목하고 있다. 기존 SM 기업가치 대비 몸값이 치솟으면서 일각에서는 SM 경영권에 관심 없다던 카카오가 왜 이렇게까지 SM 인수에 힘을 쏟는지 의아해 한다. 하지만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들이 SM에 끝없는 러브콜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난다.
◆“12만원 받고 3만원 더” 카카오에 SM은 황금알 낳는 거위=카카오가 프리미엄을 붙여서라도 SM 인수에 사활을 거는 까닭은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의 ‘비욘드 코리아’ 과업과도 직결된다. 카카오는 수년전부터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목표를 외쳐왔다. K팝 콘텐츠는 막강한 글로벌 팬덤 시장을 기반으로 다양한 비즈니스모델(BM)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카카오 미래 성장동력으로서 제격이다.
카카오엔터 산하에는 ▲글앤그림·로고스필름·메가몬스터·어썸이엔터 등 영상 콘텐츠 및 배우 매니지먼트사 ▲글로벌 웹툰·웹소설 플랫폼 타파스·래디쉬·우시아월드를 소유한 타파스엔터테인먼트 ▲멜론 등 다양한 콘텐츠 기업이 있다. 하지만 웹툰과 웹소설은 이제 막 글로벌 확장을 시작한 데다, 배우와 음원 역시 글로벌 진출을 위한 지식재산(IP)으로서 아직은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평가다.
카카오엔터가 이미 손을 뻗은 K팝 분야도 핵심으로 내세울 만한 자체 IP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상황은 비슷하다. 카카오엔터 자회사로는 ▲아이유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 ▲아이브·몬스타엑스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더보이즈·에이핑크 소속사 IST엔터테인먼트 ▲싱어송라이터 중심 소속사 안테나 등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이 독자적인 사업 운영을 하고 있어 카카오엔터가 제대로 내세울 만한 K팝 아티스트는 아이브 정도뿐이다. 방탄소년단(BTS)·뉴진스 등이 속한 하이브에 비해 카카오엔터가 지닌 K팝 IP 파워는 다소 밀리는 게 현실이다.
카카오 입장에서는 더욱 확실한 성장동력과 글로벌 진출을 위해 SM과의 전략적 제휴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SM은 K팝 열풍을 이끈 3대 연예기획사 중 한 곳으로, 동방신기·소녀시대·샤이니·엑소·레드벨벳·NCT·에스파 등 K팝 대표 그룹을 대거 보유 중이다.
◆영업이익 확대와 카카오엔터 상장…SM으로 두 마리 토끼 잡는다=증권업계는 카카오의 SM 인수가 ‘5000억원을 버는 유일무이 종합 엔터사로 가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8일 현대차증권 리포트에 따르면 카카오엔터와 카카오픽코마 합산 기준 올해 매출액은 2조5600억원, 영업이익은 2500억원으로 관측된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이들 기업공개(IPO) 기업가치는 최소 25조원 이상을 타깃으로 하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영업이익 100배 수준으로 달성이 녹록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카카오가 SM 인수에 성공하게 되면, 2023년 매출 3조5000억원과 영업이익 3700억원, 2024년 매출 4조4000억원과 영업이익 5000억원 달성이 가능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매출 가운데 ▲35%가 웹툰 ▲30%가 K-팝 ▲20%가 드라마 ▲15%가 멜론에서 창출됨에 따라 연간 5000억원 영업이익을 거두는 국내 유일 글로벌 규모 엔터사가 탄생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SM 인수는 카카오가 중요한 공동체 과제로 여기는 카카오엔터 IPO 모멘텀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SM과의 사업적 협력으로 카카오엔터 가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향후 경영권을 확보한 카카오가 SM을 카카오엔터 연결종속회사로 편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승자의저주’ 실현될까…카카오 주주가치 훼손 우려도=카카오가 가진 ‘실탄’은 넉넉하다. 최근 카카오는 사우디국부펀드와 싱가포르투자청에서 1조154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이 중 8975억원이 지난달 24일 입금됐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카카오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 총액도 4조5552억원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양사 간 SM 인수 경쟁이 과열되면서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이브가 내건 SM 공개매수가 주당 12만원에 이어 카카오가 15만원을 제시하면서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도 연일 커진다. 승자의 저주란 치열한 경쟁 끝에 얻은 것의 실상을 들여다보니 이득은 고사하고 손해 막급인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 1월까지만 해도 SM 한 주 가격은 7만~8만원 선에 머물렀다. 이제 SM 몸값은 지난해 카카오가 이 전 총괄과 물밑 접촉할 때 투자시장에서 거론됐던 적정 가격대(4000억원~6000억원)보다도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 됐다.
카카오가 SM 주식을 공개매수한다는 소식을 전한 이후 기업가치 훼손 우려로 주가가 하락하자 주주들 사이에서 불만도 쏟아진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카카오 주가는 지난 9일 고점을 찍은 이후 하락하는 추세다. 지난 7일 SM이 카카오에 신주 및 전환사채를 발행한다고 공시한 후 3거래일간 카카오 주가는 상승세를 타며 7만900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 전 총괄 가처분 신청 인용과 하이브 공개매수 등으로 주가는 다시 내려가고 있다.
그럼에도 카카오는 SM에 조 단위 자금을 투입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김현용 연구원은 “카카오가 재작년 타파스와 래디쉬를 인수할 때도 조 단위 자금 유출이 있었다”며 “이번 SM 공개매수 역시 카카오가 콘텐츠 부문 글로벌 진출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가 제시한 SM 공개매수가 15만원은 SM 주가수익비율(PER) 40배 수준이다. 김 연구원은 “하이브를 제외하면 SM과 JYP, YG 모두 시장에서 PER 40배를 받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그만큼 카카오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하고서라도 SM을 갖고 싶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