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한정된 방송시장 재원을 두고 업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 가운데 프로그램 사용료 배분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 회의에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들이 사실상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연내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의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다.
◆ PP업계, 콘텐츠 대가산정 가이드라인 회의 ‘보이콧’…초안에 반발
1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4일로 예정됐던 과기정통부와 인터넷TV(IPTV)·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등 유료방송사, PP 사업자 간 콘텐츠 대가산정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실무급 회의는 불발됐다. 한국채널방송진흥협회(PP진흥협회)·한국방송채널사용사업협회(PP협회)·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PP협의회 등 PP 사업자가 불참석을 통보하면서다.
이날 회의는 과기정통부가 최근 공개한 콘텐츠 대가산정 가이드라인 초안에 대한 사업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마련된 가운데, 이들은 초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회의 직전 불참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가 최근 사업자들에 공유한 콘텐츠 대가산정 가이드라인 초안은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률에 하한·상한 기준을 둔 것이 특징이다.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률의 범위는 유료방송사의 매출에 대한 PP의 기여도에 따라 정하도록 했다. 이에 PP의 기여도를 측정하는 ‘가치증감 기여율’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PP업계는 반발했다. 당초 유료방송사가 지급한 프로그램 사용료의 규모가 크지 않았던 가운데, 프로그램 사용료는 그대로 유지한 채 인상률을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PP “프로그램 사용료, 너무 적다”…유료방송사 “이미 과도”
그렇다면 PP는 유료방송사로부터 어느 정도의 프로그램 사용료를 받고 있을까.
유료방송사는 프로그램을 제공한 PP에 시청자로부터 받은 수신료를 프로그램 사용료의 명목으로 배분해 왔다. 지상파 방송사에는 재송신료(CPS)를, 일반·종편 PP에는 프로그램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문제는 배분비율이다. 2021년 기준 SO의 수신료(시청자가 방송서비스를 이용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돈) 매출액은 8825억원으로, 이 중 49%에 해당하는 4389억원이 지상파와 PP에 프로그램 사용료로 지급됐다. 지상파와 PP에 지급되는 프로그램 사용료는 각각 1120억원(12%), 3269억원(37%)이다.
같은기간 IPTV는 수신료 매출액(2조2594억원) 가운데 30.5%인 6907억원을 프로그램 사용료로 지급했다. 지상파는 2166억원(9.5%), PP는 4741억원(20%)을 IPTV로부터 받았다. 전체 매출에서 지급된 프로그램 사용료가 차지하는 비중만 놓고 봤을 땐 유료방송사가 PP에 많은 비용을 지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PP의 입장은 다르다. 지상파는 3사(KBS·MBC·SBS)가 IPTV와 SO로부터 받는 재송신료의 총합이 3286억원이라면, PP의 경우 200여개의 사업자가 받는 프로그램 사용료의 총합이 8010억원이기 때문이다. 200여개의 PP 중에서도 종편PP 등이 가져가는 프로그램 사용료의 비중이 큰 점을 고려하면 중소PP가 가져가는 콘텐츠 사용료는 매우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료방송사라고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상파가 요구하는 재송신료만으로도 버겁다는 입장이다. 특히 SO의 경우 매출이 계속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이미 많은 프로그램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SO의 방송사업매출은 2017년 2조1307억원을 기록한 뒤, ▲2018년 2조898억원 ▲ 2019년 2조227억원 ▲2020년 1조9328억원 ▲ 2021년 1조8542억원으로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유료방송사 관계자는“국내 유료방송 시장의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 유독 낮다. 넷플릭스 하나의 구독료가, 전체 유료방송을 다 보는 가격과 같을 정도”라며 “출혈 경쟁에 의해 유료방송 시장이 염가화된 상황에서 방송 재원이 외부에서 충당되지 않는 한 유료방송사도 PP가 요구하는 만큼 프로그램 사용료를 주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지상파·종편 PP→일반 PP 회의 '불참'…정부 연내 마련 의지
과기정통부는 이런 유료방송사와 PP의 입장에 모두 공감해, 한정된 방송시장의 재원을 어떻게 배분할지를 두고 사업자들과 올초부터 회의를 이어왔다.
하지만 회의는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지상파와 종편 PP 사업자들이 불참하면서다. 지상파와 종편 PP 사업자들은 유료방송사가 일반PP에 지급하는 프로그램 사용료를 늘리면 해결될 문제라는 입장인 반면, 유료방송사는 방송시장 재원이 순환되는 구조로 지급 비중이 큰 지상파와 종편을 제외하고 콘텐츠 대가산정 가이드라인을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해 왔다.
일반PP도 유료방송사가 결국 지상파·종편 PP에 지급할 사용료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두고 일반PP와의 협상에 나서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가이드라인 마련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선 지상파·종편 PP에 이어 최근 일반PP 역시 회의에 불참한 가운데 연내 콘텐츠 대가산정 가이드라인 마련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과기정통부는 사업자 의견을 수렴해 최대한 모든 사업자가 만족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연내 발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개별 사업자들과 계속 만나며 초안에 대한 의견을 들을 예정"이라며 "사업자들의 요구 중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지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연내 (콘텐츠 대가산정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최근 공개된 초안이 확정안이 아닌 만큼 추후 정부와 사업자가 재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라며 “과기정통부가 유료방송사업자들의 요구사항들을 적절하게 잘 청취해 합리적인 안을 내놓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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