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정부가 전기통신사업법 전면개정을 추진하면서 잡음이 일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산업기조인 ‘규제완화’에 역행하는 대목들이 몇 가지 있어서다. 특히 전기통신사업법의 주된 규제대상인 기간통신사업자(통신사)는 물론, 새로운 규제대상인 부가통신사업자(플랫폼)도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 전기통신사업법 개정방안 발표…학계·업계는 ‘우려’
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이종호, 이하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은 ‘디지털 경제·사회 구현을 위한 통신 서비스 및 기반에 관한 법률’로 법명 변경이 검토되고 있다. 기존 기간통신역무로 분류되던 통신 서비스는 ‘전송서비스’로, 부가통신역무로 분류되던 각종 플랫폼 서비스는 ‘정보서비스’로 바뀌게 된다.
이는 최근 플랫폼 등 부가통신사업자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에도 전기통신사업법은 여전히 통신사 등 기간통신사업자 중심 규제에 집중돼 있다는 문제제기에 따른 것이다. 기간통신사업자의 경우 형평성에 맞지 않는 규제를 완화하고, 부가통신사업자는 새로운 규율체계에 편입시켜 각종 시장 부작용을 해소하는 방향이 기대됐다.
그러나 실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방안’은 학계와 업계의 많은 걱정을 불러모았다. 개정 과정에 직접 참여한 권남훈 건국대학교 교수가 “규제완화도 꽤 있지만 동시에 규제강화라는 생각도 없지 않다”며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제언했을 정도다.
◆ 과잉규제·중복규제 지적…신중한 법제화 검토 필요
첫 번째로 꼽히는 쟁점은 망중립성 원칙을 법률화하겠다는 대목이다. 망 중립성이 인터넷 기본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는 현황 등을 고려, 현행 가이드라인상 최소한의 기본원칙을 법률로 규정하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방침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업계는 과도한 규제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이미 2011년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으며, 실제 가이드라인 제정 이후 통신사들의 망중립성 관련 위반행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 체계에서도 충분히 규율이 가능한 상황에서 굳이 법제화를 하는 것은 과잉규제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최근 글로벌 거대 콘텐츠제공사업자(CP)의 망무임승차가 중요 문제로 대두되고 이들의 망 투자 분담 필요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망중립성의 법률화는 충분한 숙의가 전제돼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공익목적 전송사업을 허용한다는 부분도 논란이다. 비영리 목적으로 자가망을 활용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지자체에는 기간통신사업 등록을 허용한다는 것인데, 당장 통신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30년간의 통신 민영화를 거스르는 정책인 데다, ‘민간주도 경제’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와도 맞지 않은 부분이라는 것. 지자체 통신사업은 선심성 공약의 일환으로 무분별하게 추진될 가능성이 높고, 민간 사업자와 사업권이 충돌할 시 국가 재정 낭비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네트워크와 플랫폼 사업자에 부여하는 ‘서비스 안정성 확보’ 의무는 통신업계와 플랫폼업계 모두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개정안은 기간통신사업자의 경우 전기통신서비스 안정성 확보 노력 의무를 명시하고, 이와 관련해 기술적·관리적 조치 이행실적을 제출하도록 요청 근거를 마련했다. 부가통신사업자 역시 서비스 안정성 확보 관련 자료 제출 의무를 규정하고, 국내대리인의 업무범위에도 자료제출 의무를 명시하도록 했다.
서비스 안정성 확보 조치의 경우 그러나 이미 현행 전기통신사업법과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규율된 조항들로, 중복규제 지적이 제기된다. 통신업계 입장에서는 이미 통신망과 주요 데이터센터에 대한 관리 책임이 명기돼 있는 상황에서 규제가 추가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20년 신설된 부가통신사업자의 서비스 안정성 확보 의무(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7)를 이미 적용받고 있는 플랫폼업계 또한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이번 전면개정안을 마련하면서 ‘파편적인 법률개정으로는 변화된 환경에 맞는 정책수요를 충분히 담아낼 수 없다’고 자평했는데, 정작 발표된 개정안은 파편화된 조항들로 짜깁기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개정안의 출발은 기간통신사업자와 부가통신사업자의 규제 형평성을 맞추는 것이었는데, 결과물은 규제강화 일색”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