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홍진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은 5G 중간요금제 관련 기자브리핑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요금제 실효성을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다양한 요금 출시를 위해 통신사들과 지속 협의하겠다면서도, 구체적인 요금 형태에 대해선 어디까지나 사업자의 영역이라고 못박은 것이다.
하지만 최근 5G 중간요금제 출시를 둘러싼 지난 과정들을 되짚어보면, 과연 정부가 사업자들의 영역을 존중해준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일단, 5G 중간요금제 출시 자체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5G 요금 다양화를 약속했고, 정부 출범 이후에도 민생안정과제 중 하나로 ‘3분기 내 5G 중간요금제 도입’을 제시했다. 중간요금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바람과 별개로 정부가 통신사들에 신규 요금 출시를 압박한 것은 사실이다.
통신사들이 5G 중간요금제 출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7월 통신3사 최고경영자(CEO)들과의 첫 상견례 자리에서 조속한 5G 중간요금제 도입을 특별히 강조했고, 각사 CEO들로부터 늦어도 8월 중에는 5G 중간요금제를 출시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돌아갔다.
더욱이 지난 2020년 유보신고제가 도입됐음에도, 정부는 여전히 통신사들과 요금제 출시에 앞서 사전 교감을 하는 등 인가제 시절의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은 요금 신고시 정부가 일정 기간 반려 여부를 심사하는 유보신고제를 적용받고 있으며, KT와 LG유플러스는 정부에 요금제를 신고하기만 하면 별도 심사 없이 바로 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5G 중간요금제 출시에 있어서도 정부와 통신3사는 사실상 비공식적인 사전 협의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정부가 통신사들에 특정 금액대와 특정 구간 이상의 요금 설계를 ‘독려’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는 ‘독려’였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업자 입장에선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처럼 느껴졌을지 모를 일이다. 특히 통신사들을 직접 규율하는 위치에 있는 과기정통부의 지위를 생각했을 때 말이다.
통신사로하여금 보다 소비자 친화적인 요금제를 출시하도록 하는 정부의 역할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초 인가제를 폐지하고 유보신고제를 도입한 이유는 사업자들이 자유롭게 요금제를 출시해 시장 경쟁을 촉진하기 위함이었다. 실상 그러나 사업자들이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통신사들도 책임이 있다. 적극적인 요금 경쟁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와 달리, 유보신고제 도입 이후에도 사업자들은 신규 요금제 출시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5G 중간요금제 이전까지는 통신사들이 일부 온라인·특화 요금제를 출시한 것을 제외하고는 요금 경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비록 정부의 압박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지만, 5G 가입자가 2000만명을 돌파한 상황에서 통신사 자체적으로 중간요금제를 출시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는 점도 비판을 부르는 대목이다.
이러나 저러나 유보신고제가 도입된 지 벌써 3년째다. 유보신고제는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대신 시장 경쟁에 의의를 두는 제도로서 그 역할이 분명히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진정한 의미의 유보신고제 실현을 위해 지난 관행을 씻어내야 한다. 특히 사업자들의 영역을 존중하되 자율 경쟁을 독려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을 고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