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약자들에겐 ‘최후의 수단’인데…‘통화 녹취’ 금지법안, 꼭 필요한가 [디지털 & 라이프]
디지털데일리
발행일 2022-08-23 17:42:53
[디지털데일리 신제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9 대통령 선거에 앞서 한차례 고비를 겪었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김건희 여사와 이명수 서울의 소리 기자 간 7시간의 통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다.
당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MBC의 보도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오면서, 한 때 통화 녹취가 ‘불법’이 아니냐는 논란도 일었다.
하지만 당시 법리를 따지기도 전에 대선 이라는 큰 소용돌이속에서 별로 이슈가 되지는 않았고, 대선 이후 논란도 수면밑으로 가라앉았다.
우리나라의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제3자가 타인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만 불법으로 명시돼있다.
즉, 제 3자가 아닌 쌍방간 대화에 참여했던 당사자가 자신의 목소리가 같이 들어가게 녹음하는 행위 자체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법정 다툼에서 통화 녹음 파일을 문서화한 자료가 결정적인 증거로도 채택될 수 있었던 이유다.
◆“동의없는 녹음은 ‘불법’ 규제해야”…국민의힘 윤상현 의원 법안 발의에 논란 확산
그러나 최근 쌍방간의 대화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동의없이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행위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어길 시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법안이 새롭게 발의됐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8일 국민들의 '음성권' 보장에 초점을 둔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며, “통화 당사자 한쪽이 자의적으로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은 다른 한쪽의 사생활의 자유 또는 통신 비밀의 자유를 침해한다”라고 꼬집었다.
물론 해외에서도 이를 적용하는 일부 사례도 있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 미국의 13개주와 프랑스 등 일부 해외 국가에서는 상대방의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 “내가 ~한 상황이라면” 네티즌 의견 분분
그러나 이같은 개정안에 대해 “피해 입장을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네티즌들 간 의견은 분분하다.
만약 녹취로 인해 부당한 협박을 당하는 쪽이 사회적 약자거나 피해자라면 개정안이 실행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오히려 억울한 일을 당했을 경우 이를 입증하는 수단으로써의 녹취의 경우에는 ‘녹취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도 있다는 것이다.
법정에서 증거 능력으로서의 통화 녹취가 제외되면 피해자는 증거를 입증하기위해 적지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할 수도 있다.
만약 데이트 폭력, 금전 요구 등의 일환으로 상대방으로 부터 녹취록 유출 협박을 받게 되는 경우를 가정하면 개정안은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보호’의 종류에는 프라이버시권 이외에도 억울함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 확보로서 녹취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마치 교통사고에서 자동차의 블랙박스 영상 기록과 같은 역할을 통화 녹취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종영된 TV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나왔던 사례처럼, 동그라미의 아버지는 독소 조항으로 가득찬 형제간의 유산 상속 계약서 작성에서 강요나 허위, 강박에 의한 계약임에도 이를 녹취한 증거 자료가 없어 꼼짝없이 당할뻔한 사례가 있었다.
이처럼 법을 악용해 유선상으로만 이행을 약속하고 이후 잡아떼는 이른바 ‘말 바꾸기 식 사기’와 관련된 억울한 상황에 처할 경우, 녹취가 불가하다면 피해자로서 증거를 확보할 방법이 영영 박탈될 위험이 있다. .
◆ ‘사생활 보호’냐 ‘증거 확보’냐… 끝없는 딜레마
단순히 개인 간 분쟁을 넘어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건일 경우, 증거는 때로 ‘국민의 알 권리’와 연결되기도 한다.
기자들의 취재도 결국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일종의 ‘증거’ 수집이라는 점에서, ‘증거 확보’와 ‘사생활 보호’간 딜레마는 우리 사회 끝없는 숙제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생활’을 일정 부분 침해하더라도, 녹취 파일이 ‘유의미한 증거’라는 점에 무게를 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방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23일, 경찰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에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송치 결정을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명수 기자가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녹취한 3시간여 분량의 녹취파일에는 그가 화장실을 가느라 자리를 비운 3분 동안의 녹음 내용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즉, 경찰은 해당 3분 간의 녹음에 대해 이 기자가 대화 당사자가 아닌 제 3자로서 타인의 대화를 녹음했으므로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봤다.
이 기자 측 변호인 유재율 변호사는 경찰의 결정에 대해 “(해당 녹취파일은) 김여사의 공직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판단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음에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인정받으면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라며 증거로서의 가치를 고려할 것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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