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FC-BGA(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 이름만 들으면 FC 바르셀로나, FC 바이에른 뮌헨 등 세계적인 축구팀이 생각나죠. 전혀 연관성은 없으나 반도체 패키지 기판 분야에서는 이들과 같은 지위를 가진 제품입니다. 반도체 공급난이 워낙 큰 이슈라 가려져 있지만 FC-BGA 같은 고성능 반도체 패키지 기판도 못 구해서 발을 동동 구를 정도랍니다. 캄프누 구장에서 열리는 FC 바르셀로나 홈경기 티켓을 예매하기 힘든 것처럼요.
우선 반도체 패키지 기판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죠. 반도체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노광, 식각, 증착 등 공정을 반복하면서 만들어집니다. 외부 충격을 보호하고 투입할 기기와 연결하기 위한 포장(패키징) 단계를 끝으로 반도체 생산 과정은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이대로 스마트폰이나 PC 등에 넣을 수는 없는데요. 레고 블록처럼 단순히 끼워서 연결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디바이스 부품에 전원을 공급하고 부품 간 신호를 주고받는 메인보드와 연결해야만 합니다. 문제는 반도체 단자 사이 간격이 100마이크로미터(㎛)로 A4 용지 수준인 반면 메인보드 단자 간격은 약 350㎛라는 점. 3~4배 차이가 나는데 직접 이을 수는 없겠죠. 여기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게 반도체 패키지 기판입니다.
반도체 패키지 기판은 녹색 판대기인 인쇄회로기판(PCB)으로도 불립니다. 말 그대로 회로가 새겨진 기판으로 도체와 절연체가 적층된 구조로 이뤄집니다. 이 패턴은 반도체에 그려진 회로와 연결고리죠. 쉽게 말해서 물(전기적 신호)이 하천(반도체) - 강(패키지 기판) - 바다(메인보드)로 흘러나가는 원리입니다. 참고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댐 역할을 하는 것이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라는 제품입니다.
FC-BGA는 PCB 일종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PCB 중 가장 높은 몸값과 성능을 자랑하죠. 가히 녹색 괴물 ‘헐크’라 부를 만합니다. 실제로 헐크처럼 크고 빠르고 강한 특성이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FC-BGA는 플립칩(Flip Chip)-볼그리드어레이(Ball Grid Array)의 줄임말인데요. 그대로 풀면 칩을 뒤집은 공으로 된 격자무늬 배열입니다. 직독직해하니 더 어려운 느낌이죠.
기존에 반도체 패키지 기판은 와이어를 통해 이어지는데 FC-BGA는 솔더볼이라는 공 모양 부품이 연결합니다. 솔더볼은 주석, 은, 구리, 납 등을 섞어 만듭니다. 다시 해석하면 반도체를 뒤집어 솔더볼이 격자무늬로 배열된 기판에 부착하는 제품이 FC-BGA입니다.
줄 형태로 입출력(I/O) 단자를 형성할 때보다 더 많은 연결고리를 마련되고 칩과 기판 간 거리가 줄어듭니다. 이렇게 되면 한 번에 많은 신호를 빠르게 보낼 수 있죠. 물리적으로는 멀티탭과 같은 복잡함을 없애고 제품 두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우수한 제품이라는 의미죠.
FC-BGA와 유사한 제품으로 FC-칩스케이패키지(CSP)가 있습니다. 원리는 같은데 용도와 크기에서 차이가 납니다. FC-CSP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모바일 기기 칩, FC-BGA는 중앙처리장치(CPU) 또는 그래픽처리장치(GPU)용 기판으로 주로 쓰입니다.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는 성능만큼이나 얇고 가볍고 작은 ‘경박단소’ 특성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소형이지만 성능이 좋은 고효율이 핵심이죠. CPU나 GPU는 PC나 데이터센터 등에서 활용돼 상대적으로 공간 제약이 적습니다. 이 때문에 고성능이 최우선 과제죠. 결과적으로 FC-BGA는 FC-CSP보다 더 크고 복잡한 회로도를 갖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FC-BGA는 뛰어난 성능을 갖춘 반도체 패키지 기판인데요. 이름값만큼이나 만들기 어렵습니다. 일본 이비덴·신코덴키, 대만 하나마이크론, 한국 삼성전기 등 세계적으로 10개 내외 업체만 생산할 수 있다고 하네요.
FC-BGA는 다시 IT용과 서버용으로 나뉩니다. 이는 부착하는 반도체 성능에 따라 갈리는데요. 똑같은 CPU, GPU여도 노트북이나 PC 등에 쓰이거나 데이터센터에 도입됩니다. 당연히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후자가 고성능 제품이죠. 서버용은 공간 제약이 덜 해 더 크기도 합니다. 더 많은 칩이 연결돼야 하고 패턴 정밀도가 PC용보다 고난도여서 서버용 FC-BGA 제작이 가능한 업체는 3~4곳에 불과합니다.
FC-BGA가 대략적으로 어떤 제품인지 알았으니 어떻게 제조하는지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겉보기에는 녹색 판인데 자세히 보면 단순하지 않습니다. 표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복잡한 선들이 그려져 있고 단면을 잘라보면 여러 층으로 이뤄져 있죠.
전반적인 공정은 반도체와 유사합니다. 반도체로 치면 웨이퍼인 동박적층판(CLL) 위에 여러 작업을 통해 완성됩니다. ▲드릴 ▲도금 ▲노광 ▲식각 ▲절연 ▲검사 등 17개 단계로 나뉘죠.
CCL은 구리를 입힌 동박층과 수지(레진)와 보강기재가 결합한 절연층으로 이뤄집니다. 동박층은 구리로 만든 회로층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절연은 말 그대로 전기가 통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리 섬유와 에폭시(딱딱한 우레탄) 소재가 섞인 ‘FR-4’가 절연층을 형성하죠. 코어 역할을 하는 FR-4는 우수한 전기적 및 물리적 특성, 저렴한 비용, 관통 홀 제작 용이 등 장점으로 꼽힙니다. 코어 위아래로 빌드업(쌓는) 공정과 백엔드(매조지하는) 공정이 동시 진행되면서 FC-BGA가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죠.
다시 돌아와서 CCL에 드라이필름(DF)을 열로 부착하고 노광기로 회로 이미지를 새기고 패턴대로 도금합니다. 이후 불필요한 DF를 제거하죠. 이를 반복하고 여러 층으로 쌓으면 FC-BGA가 됩니다. 과거 10개층 내외였다면 최근에는 20층 이상 제품도 나오고 있습니다.
중간에 생략한 게 있는데요. 여기서 FC-BGA 핵심인 아지노모토빌드업필름(ABF)이 등장합니다. ABF는 절연 소재로 반도체에서 발생하는 전류 문제를 해결하고 전자가 안정적으로 흐를 수 있게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강성(변형에 저항하는 정도)과 내구성이 높은 ABF를 사용하면 반도체 기판 내 미세패턴을 구현하는 데 유리하다고 하네요.
참고로 ABF은 일본 아지노모토라는 회사가 독점 공급합니다. 시장점유율은 98% 이상이고요. 아지노모토는 세계 최초로 인공조미료(MSG)를 제조한 기업인데요. 이 MSG는 글루탐산에 나트륨을 결합한 것인데 아지노모토가 글루탐산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을 전자재료 분야에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ABF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대만 등에서는 FC-BGA를 ABF 기판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ABF는 드라이필름에 앞서 기판에 얹어집니다. 아까 언급한 공정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드라이필름에 회로를 새기기 위해 회로 모양으로 파낸 뒤(식각) 파인 곳을 전기도금하면 구리 알갱이가 빈틈을 채웁니다. 이후 드라이필름을 걷어내고 층들을 잇기 위해 비아(Via)라 지칭하는 회로 연결 구멍을 뚫으면 FC-BGA 완성품이 나옵니다. 50㎛ 수준에 불과한 비아는 고층 빌딩의 엘리베이터인 셈이죠.
기판에 들어간 ABF는 구리층 간 전기가 통할 수 없도록 하는 절연체이면서 구리 알갱이가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주기도 합니다. 사실상 ABF가 없으면 FC-BGA가 정상 작동할 수 없다는 뜻이죠.
추가적으로 최근에는 코어를 배제한 ‘코어리스(coreless)’ FC-BGA가 상용화됐다고 하는데요. 코어리스 제품은 기존 방식처럼 코어층을 형성한 뒤 위(빌드업)층와 아래(백엔드)층을 분리해 2개 기판으로 만드는 형태입니다. 코어가 빠지면 기판이 얇아지고 송신률을 높이는 등 장점이 있습니다. PC용 코어리스 FC-BGA는 서버용에 버금갈 정도로 비싸다고 하네요.
간단히 알아봤는데도 이 정도인 FC-BGA. 만들기는 어렵지만 그만큼 사업적 가치가 있는 제품입니다. 통상 기판 업체는 ‘을(乙)’인데 FC-BGA로 ‘갑(甲)’이 되고 있습니다. 서두에 이야기한 글로벌 기업들이 협력사에 투자금을 제안하면서 물량을 확보할 정도죠. 업계에 따르면 FC-BGA 공급난은 오는 2026년 전후까지 이어질 전망입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기를 필두로 대덕전자 코리아써키트 LG이노텍 등이 수천억~조단위 투자를 단행 중입니다. 국내 1위 삼성전기는 올해 하반기부터 서버용 FC-BGA까지 생산한다고 하네요. 그동안 일본과 대만 업체가 시장을 주도했다면 전방산업 호황에 따라 한국 기업도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분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