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 시장이 새로운 변환점을 맞고 있다. 가입자 천만을 돌파하면서 성장 궤도에 올랐지만, 통신사 자회사와 사물인터넷(IoT) 회선이 이를 주도하면서 알뜰폰 본연의 질적 성장은 미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더욱이 금융권의 진출까지 더해져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실정이다. 업계 안팎에선 정부의 제도적 지원과 더불어 알뜰폰 시장의 자생력 강화가 숙제로 떠오른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알뜰폰 산업의 현재를 살펴보고, 앞으로 가야 할 미래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국내 알뜰폰 시장이 1000만 가입 시대를 열었지만, 질적성장은 양적성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신사 자회사들과 금융 대기업이 알뜰폰 시장 성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중소 알뜰폰 업계는 자체 전산설비를 갖춘 풀(Full)MVNO 즉 ‘MVNE’ 사업자 육성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MVNE는 통신망 재임대 사업자로, 보통 통신사(MNO)와 알뜰폰(MVNO)의 중간 단계 사업자로 이해된다. 자체 전산 설비를 갖추고 다른 알뜰폰 사업자의 과금·CS 등 시스템을 구축·운영하는 데이터 중간 도매상 역할이다. 일본·네덜란드 등 알뜰폰이 활성화된 시장에선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MVNE 사업자가 여럿 나오기도 했다.
통신사 망을 임대해 쓰는 특성상 알뜰폰 시장은 어쩔 수 없이 통신사 영향력이 큰데, MVNE가 등장하게 되면 통신사와 알뜰폰 사업자 사이에 전문적인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체 설비로 독자적인 요금제 설계도 가능하기 때문에, 알뜰폰 시장을 통신사가 아닌 알뜰폰 사업자 스스로 주도할 수 있게 된다.
MVNE 사업자를 육성해달라는 것은 달리 말해 알뜰폰 사업자가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달라는 요구기도 하다. 그간 중소 알뜰폰 업계에는 정부의 지원정책에 기대지 않은 자체적인 자생력 강화가 숙제로 제시돼 왔다. 하지만 이들 사업자는 정작 투자를 하고 싶어도 제도적 불확실성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토로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매제공 일몰제다. 현재 1위 통신사인 SK텔레콤은 법적으로 알뜰폰 사업자에 망을 의무 제공해줘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무 도매제공 제도는 일몰 기한이 3년으로 정해져 있다. 매 3년마다 도매제공 의무화를 일몰하느냐 여부를 두고 업계는 긴장 태세다. 중소 알뜰폰 업계는 계속해서 일몰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중소 알뜰폰 업계의 협상력이 낮아 SK텔레콤과의 도매제공 협상을 정부가 대신해주는 판인데, 도매제공 의무화가 일몰로 사라지게 되면 더더욱 협상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도매제공 자체가 불확실해지는 꼴인데 그럼 어떤 사업자가 확신을 갖고 투자를 할 수 있겠나”고 강조했다.
도매대가 산정방식도 쟁점이다. 도매제공에 관해 정의한 전기통신사업법 제38조에 따르면 도매대가 산정은 도매제공사업자의 소매요금(영업이익 100% 포함)에서 마케팅비용과 광고비용 등의 회피가능비용을 제외하고 산정하는 방식이다. 알뜰폰 업계는 그러나 통신사에만 유리한 산정방식이라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이러한 산정방식에 대해 “도매대가가 지나치게 높아질 뿐 아니라 교환설비·전송설비 등 중요한 설비에 대한 투자비 회수가 어렵게 돼 설비 기반 알뜰폰 사업자(MVNE)의 등장이 어렵게 되는 등 알뜰폰 사업의 다양성 확대와 고도화가 어려워진다”고 우려를 표했다.
따라서 알뜰폰 업계는 ‘원가 산정방식’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용하는 설비와 서비스 원가(음성전화·데이터이용료 등)에 적정 투자보수를 더해 도매대가를 산정하는 것이다. 설비 설치를 많이 할수록 도매대가를 더 적게 부담하는 식이다. 주로 통신3사간에 음성 접속료를 산정할 때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중소 알뜰폰들도 더 경쟁력 있는 요금제와 고객서비스를 갖춰 자생력을 키워야만 대기업과 공생할 수 있다”면서 “다만 도매제공과 도매대가가 다 통신사에 달려 있는 구조에선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법 개정을 통해 제도적으로도 알뜰폰이 자생력을 기를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