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SK브로드밴드는 무정산이라는 점을 알면서 망을 연결했고, 무정산 피어링은 인터넷 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넷플릭스)
“망 이용대가 분쟁과 별개로 최종 이용자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일단 망을 연결한 것이다. 비용 문제는 나중에 합의하기로 했다.” (SK브로드밴드)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는 지난 1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항소심 2차 변론에서 ‘무정산 합의’ 여부를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놨다.
앞서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망 이용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심에서 패소해 항소했다.
이날 열린 2차 변론의 쟁점은 2018년 일본에서 넷플릭스 오픈커넥트(OCA)와 SK브로드밴드 망을 직접 연결했을 당시 양사간 무정산 합의가 이뤄졌는지 여부였다.
넷플릭스 측은 “쌍방은 2015년 9월부터 망 연결에 관한 교섭을 진행했고, SK브로드밴드는 이 과정을 통해 넷플릭스 망 연결이 무정산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면서 “넷플릭스 OCA는 무정산 연결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OCA란 넷플릭스가 자체 개발한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기술이 적용된 캐시서버다. 넷플릭스는 OCA를 통해 트래픽을 상당히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보고 있다. 이른바 ‘상호무정산’(빌앤킵·Bill and Keep)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OCA가 있으니 암묵적으로 무정산이 합의됐다는 주장이다.
넷플릭스 측은 양측이 주고받은 이메일을 근거로 들어 “2016년 1월 미국 시애틀에서 최초로 망을 연결했고 이 때 아무런 비용 정산이 없었다”면서 “2018년 5월 망 연결 지점을 시애틀에서 도쿄로 변경했을 때도 SK브로드밴드는 비용 정산을 언급하지 않았고, 2018년 10월에 가서야 국제망 비용을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넷플릭스는 OCA를 통해 ‘피어링(ISP간 직접접속)’을 하고 있는 것이며, 인터넷 생태계 관행상 피어링 방식은 무정산이 원칙이라는 점도 짚었다. 넷플릭스 변호인은 무정산의 근거로 피어링에 대한 2016년 ‘PCH(Packet Clearing House)’ 시장조사 수치를 제기하며 99.98%가 무정산(Settlement-free)이라고 설명했다.
SK브로드밴드 생각은 달랐다. SK브로드밴드 측은 “넷플릭스가 망을 무상 연결하자고 했으나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망 대가를 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면서 “2018년 초 넷플릭스 트래픽 증가로 연결 지점 변경이 불가피해졌고,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 전용망에 직접 연결하되 비용 문제는 나중에 합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SK브로드밴드 측은 “망 이용대가 분쟁과 별개로 최종 이용자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면서 “신속하게 부러진 뼈를 고치지 않으면 불구가 되는 환자에게 진료비 협상부터 할 수는 없는 것인데, 수술을 하고 나니 치료비에 대한 합의가 없었으니 무상 치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피력했다.
아울러 넷플릭스가 제시한 PCH 통계 해석도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SK브로드밴드 측은 “해당 통계는 ISP에 참여하는 퍼블릭 피어링을 통해 유통되는 연결만 표본으로 삼은 것으로, 이는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2.9%에 불과하다”며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 전용망에 직접 연결돼 있고, 전용망 접속을 무료로 하는 일은 없다”고 반박했다.
무정산 합의 여부는 오는 6월15일로 예정된 항소심 3차 변론에서 핵심 쟁점이 될 예정이다. 이날 재판부는 “무정산 합의가 존재하는지 여부가 쟁점으로 보인다”며 “지금까지 변론기일에 특정 쟁점을 정하지 않았는데, 다음 기일에는 무정산 합의에 관해서만 쟁점을 특정해 들여다보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재판부는 SK브로드밴드 측에 비용 정산 협의를 유보했다는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둔 것이 있다면 제출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 비용정산을 본격적으로 요구했던 시점과 비용을 요구하지 않았던 이전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