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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애플, 무엇을 위한 ‘라이트닝’ 고수인가

- EU, USB-C 통일 법안에 속도…지난달 무선 장비 지침 개정안 통과

[디지털데일리 백승은 기자] 지난해 11월 유독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세계 최초 USB-C 아이폰’에 대한 내용이었다. 애플이 아닌 미국의 한 대학생이 만든 시제품이다. USB-C 타입 아이폰은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 등재됐다. 경매 결과 이 제품은 무려 8만6001달러(약 1억982만원)에 낙찰됐다.

최근 ‘1억원’을 주지 않고도 USB-C 아이폰을 구매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모바일 기기 충전기를 USB-C로 통일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EU 입법부 유럽의회 소속 시장 및 소비자 보호 위원회(IMCO)는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무선 장비 지침’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이번 결과로 이달 개최하는 EU 본회의에서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든 스마트폰은 USB-C 규격을 따라야 한다. 실질적인 개정안 대상은 애플의 아이폰이다. 안드로이드는 이미 USB-C로 통일됐지만 아이폰은 2012년부터 ‘라이트닝’ 충전 단자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EU가 개정안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자 폐기물 감축이다. EU 위원회에 따르면 매년 유럽에서 5억개 이상 충전기가 출시된다. 충전기에서 발생하는 전자 폐기물은 연간 1만3000톤으로 추정된다. 충전 단자를 통일하면 불필요한 충전기를 줄여 전자 폐기물을 감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애플은 개정안 관련 선제적인 대응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IMCO가 개정안을 추진한다고 알리자 성명을 발표하고 “혁신을 억압하는 규제”라며 “유럽과 전 세계 소비자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이 전부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공식 입장을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애플은 규제 관련 세부 사항이 모두 매듭지어진 다음에 언급하는 태도를 오랫동안 보여 왔다”라며 “업계에서도 애플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지만 개정안이 모두 통과된 후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EU의 개정안은 지난 2020년 애플이 기본 구성품에 충전기를 제외하면서 선보였던 논리와 같다. 당시 애플은 환경 보호를 앞세우며 충전기를 없앴다. 그렇다면 이번 개정안과도 뜻을 함께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USB-C에 대한 소비자 수요도 상당하다. 스마트폰 한 대에 1억원을 투자할 만큼 말이다. 애플이 이번만큼은 ‘버티기’ 전략 대신 개정안을 수용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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