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민후 원준성 변호사] 은행 예금계좌에 돈이 착오로 잘못 송금된 경우, 잘못 송금된 것임을 알면서 임의로 소비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일관된 판시이다(대법원 1968. 7. 24. 선고 1966도1705 판결, 대법원 2005. 10. 28. 선고 2005도5975 판결, 대법원 2006. 10. 12. 선고 2006도3929 판결 등).
계좌번호 대신 지갑주소를, 원화 대신 가상화폐를, 금액 대신 개수를 입력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가상화폐의 송금절차도 은행 예금계좌에 돈을 송금하는 경우와 형식이 유사하다. 그렇다면 누군가 자신의 전자지갑으로 잘못 송금한 가상화폐를 그 사실을 알면서 임의로 인출해 소비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면 마찬가지로 횡령죄나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일까. 기업 간의 거래에도 가상화폐가 왕왕 등장하는 근래이니만큼 이 부분에 대한 대법원 판단은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먼저 횡령죄에 대하여 본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 성립한다(형법 제355조 제1항). 형법은 타인의 재물을 신임관계에 따라 보관하는 자에게 이를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는 행위를 금지토록 규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대법원은 금전의 특성을 고려하여 예금계좌에 송금 된 금원을 '재물'로 보고, 또한 착오로 예금계좌에 송금 된 금원은 송금인과 수취인 사이에 별도의 거래관계가 없더라도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수취인에게 그 금원을 보관하여야 할 신임관계가 있다고 인정한다. 따라서 예금계좌에 착오로 송금된 금원을 임의로 소비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
그러나 가상화폐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통화인 금전과 전자기록인 가상화폐를 동일하게 보기는 어렵다. 비록 가상화폐에 재산상의 가치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횡령죄에서의 “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수원고등법원에서도 착오로 송금된 비트코인은 횡령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수원고등법원 2020노171 판결). 그렇다면 비트코인의 임의소비나 반환거부 행위를 횡령으로 의율 하기는 어렵다.
다음 배임죄에 대하여 본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는 경우 성립한다(형법 제355조 제2항). 횡령죄와 달리 재물의 보관자로 한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착오로 송금된 가상화폐를 임의로 소비한 경우 배임죄의 성립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배임죄의 성립도 어렵다. 착오로 가상화폐가 송금된 경우 수취인이 송금인에게 가상화폐를 반환해야 할 민사상 관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송금인과의 어떤 “신임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특히 가상화폐는 법정통화처럼 국가에 의해 관리되고 통제받는 자산도 아니며, 송금인의 인적사항도 확인되기 어렵다. 즉 그것이 보호가치 있는 자산인지, 송금인은 누구인지 등의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기 어렵다. 요컨대 자신의 전자지갑에 원인불명의 가상화폐를 송금 받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수취인을 “송금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같은 취지에서 대법원도 비트코인 착오송금 사례에서 수취인을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한 것이다(대법원 2020도9789 판결).
주의할 것은 횡령죄와 배임죄의 형사상 책임이 없다는 것뿐이지, 수취한 가상화폐가 수취인의 소유가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수취한 가상화폐를 임의로 사용한 경우 송금인에 대한 부당이득 혹은 불법행위 등 민사상의 책임은 인정될 수 있다.
민사상 책임과 형사상 책임은 그 취지와 내용을 달리 한다는 점에서 착오로 송금된 가상화폐를 임의로 소비한 행위에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한 대법원 판례는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가상화폐의 자산성이 날로 커져만 가는 오늘날 착오송금 사례를 오직 민사책임으로만 규율하는 것은 언젠가 한계에 닿을 것으로 보이므로, 바람직하게는 가상화폐를 수단으로 하는 거래관계에 대한 입법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