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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영 칼럼

[취재수첩] USTR 보고서에 담긴 자국기업 편들기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발간한 ‘2022년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국내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이슈에 대해 비판했다.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이나 유럽연합(EU) 등의 디지털 분야 정책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USTR가 매년 3월말 작성해 미 의회에 제출하는 무역장벽 연례보고서는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60개국의 통상 현황과 함께 미국 기업이 해외시장 진출 시 겪는 각 분야별 애로 사항을 나열하고 있다. 결국 해외에서 활동 중인 자국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내용으로 채워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올해 보고서에서 국내 ICT 분야와 관련한 내용 중 눈에 띄는 대목은 망 사용료 이슈다. 보고서는 작년 한국 국회에서 넷플릭스 등 자국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통신사에 망 사용료를 의무적으로 지급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고,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한국 사업자와의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어 양국 간 무역 장벽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의 경우 특히 지난 2020년부터 국내 ISP인 SK브로드밴드와 망 이용대가 문제로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또, 보고서는 한국 사업자와의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근거로 일부 한국 인터넷서비스제공자(통신사, ISP)들 스스로가 CP이기 때문에 미국 CP들이 지불하는 비용이 한국 경쟁업체들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통신사 KT가 제공하는 OTT ‘시즌’이나 SK텔레콤과 지상파3사가 만든 ‘웨이브’ 등을 겨냥한 것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현재 대부분의 국내외 CP들은 ISP에 망 사용료를 직간접적으로 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네이버와 같은 국내 CP는 현재 ISP에 매년 약 1000억원 규모의 망 사용료를 부담하고 있고, 지난해 국내에 진출한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플러스 등 미국 OTT 역시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업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망 사용료를 지불한다.

이에 따라 넷플릭스와 같은 대형 CP가 망사용료를 내는 것은 경쟁상 불이익이 아닌 오히려 공정한 경쟁의 밑거름이 되는 셈이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글로벌 CP가 발생시키는 트래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폭증하면서, 통신사들은 과거보다 망에 훨씬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공감대는 이미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전세계 ISP들과도 형성돼 있다. 유럽 4대 통신사는 유럽연합(EU) 의회에 넷플릭스와 같은 빅테크기업의 네트워크(망) 개발비용 공동 부담 규칙을 제정해달라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를 냈으며,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도 최근 CP가 트래픽 증가에 따른 망 투자를 공동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현재로선 이번 USTR 보고서에 너무 과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USTR가 문제 삼은 부분은 한국이 미국 기업을 차별적으로 대우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새 정부 출범을 한달 여 앞둔 시점에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통상압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도 국내기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익을 대변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침 지난 6일 인수위와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한 통신업계가 넷플릭스 등 대형 CP에 합리적인 망 이용계약 의무를 부여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인 전기통신사업법을 조속히 개정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들의 움직임이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갈등이 커지고 있는 ICT 이슈의 정책 마련이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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