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작년 여름부터 공장에 사람이 없었다. 중국 정부 지원도 끊긴 것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는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장쑤 인핀테크 옵토일렉트로닉스(이하 인핀테크) 이야기다. 이 업체는 지난 2018년 국내 디스플레이 협력사들과 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6세대 박막트랜지스터(TFT)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라인 구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발주 이후 장비를 가져가지 않을뿐더러 잠적한 상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DMS 탑엔지니어링 예스티 베셀 등은 연이어 인핀테크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이들 업체는 각각 61억원 110억원 78억원 105억원의 피해를 봤다. 관련 비용은 대손 처리했다. 비상장사까지 포함하면 총 1000억원 규모 손실이다.
당초 계약 종료일은 2018년 4분기였다. 인핀테크는 수차례 기간을 연장했고 결국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행동에 나선 곳은 DMS다. 이 회사는 작년 12월30일 ‘계약상대방의 장비 인수 불가로 인해 계약을 실효했다’고 밝혔다. DMS는 현지 직원을 통해 지난해 여름부터 인핀테크 공장에 인력이 없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기본 장비만 만들어놓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여파가 적었다.
사전에 문제를 인지했지만 취소 공시는 늦어졌다. 고객사에서 취소 공문이 와야 하는데 연락 두절인 탓이다. 지속 연락을 시도했다는 증거 자료를 통해 작년 말이 돼서야 공시를 낼 수 있었다.
나머지 3개 업체는 지난달 계약해지 사실을 전했다. 5월28일 공시한 탑엔지니어링은 납품할 장비 제작을 완료했다. 인핀테크에서 장비를 수급하지 않으면서 피해가 가장 컸다. 회사 관계자는 “쓸 수 있는 부품은 재활용하고 나머지는 폐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예스티와 베셀은 지난달 31일을 끝으로 인핀테크와 거래를 해지했다. 상대방의 계약위반이 사유다. 두 업체는 이 문제로 2019~2020년 실적 하락을 겪었다. 현지 에이전시를 통해 공문을 보내고 있지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업체는 소송전도 준비하고 있지만 접촉이 되지 않아 반포기한 분위기다.
국내 장비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KDIA)도 나섰지만 큰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작년 7월 주한중국대사에 공식 항의했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장쑤 지방정부 및 중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등과 협조하고 있지만 인핀테크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주요 임직원이 퇴사해 연락조차 쉽지 않다.
KDIA 관계자는 “과거부터 중국 업체의 대금 및 잔금 지연 이슈가 있었지만 원만하게 해결된 사례가 없었다”며 “코로나19 영향으로 현지 조사에 차질을 빚고 있어 단기간에 끝내기 힘들 것 같다. 꾸준히 팔로우하면서 국내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예스티는 지난 3월 중국 KDX와의 법적 분쟁에서 승리하면서 설비대금 90%를 배상받게 됐다. 양사는 2018년 장비계약을 맺었지만 KDX는 선급금 지급 및 장비 입고 등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이듬해 예스티가 계약 이행을 촉구했으나 KDX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결과적으로 중국 중재위원회가 ‘151억원 중 136억원을 보상하라’고 판결하면서 예스티는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