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하 '전금법' 개정안)을 둘러싼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간의 갈등이 수면위에 떠오른 가운데 외부기관을 이용한 청산제도 검토와 더불어 중앙은행 결제망에 직접 비 은행사업자 참여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8일 한국금융연구원 주최로 온라인으로 진행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관련 토론회’에서 발제에 나선 이순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급거래청산제도는 지급결제시스템과 운영기관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해 결제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현재 논의되는(디지털 지급거래)청산제도가 도입된다면 보완논의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장 참여자의 예탁행위정보 관리에 외부 청산제도가 도움 되겠지만 동시에 행위감독을 강화해 빅테크 등의 지급결제 청산위험에 대응하는 고민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연구위원은 또 “일평균 1000만건 이르는 빅테크 금융결제에 대한 청산거래를 감시하기 어렵다. 감독체계가 매우 정교하고 잘 설계되어야 하는데 어려운 문제다. 영국에서는 자격조건을 엄격히 마련해 비은행 결제업자도 은행결제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시행하고 있는데 우리도 외부청산과 더불어 중앙은행 결제망에 직접 비은행사업자 참여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빅테크 참여로 외부 청산제도 재검토 논의=기존 은행 중심의 전통지급 수단에 대한 법률이 최근 다양한 빅테크 기업의 시장 합류와 전자적 지급수단의 일반화로 인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문제인식 아래 추진되고 있는 것이 전금법 개정안이다. 그동안 제도적, 관습적으로 유지되던 전자금융거래법이 사실상 새롭게 쓰여 지는 셈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최근 불거지고 있는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갈등의 핵심은 디지털 지급거래에 대한 청산제도화다. 전금법 개정안에선 빅테크 등의 전자금융업 진출에 따라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외 청산업자의 난립 위험을 막기 위해 청산의무를 부과하고, 지급금액 정산 등에 전문화된 기관을 지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거래에 있어서 ‘청산’은 은행 간 채권채무 관계를 종결하는 것으로 은행 간 오고 간 금액을 확정해 최종결제를 마무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앤장 정성구 변호사는 “청산은 거래를 전달, 대사하고 일정한 경우 결제 전에 확인하는 과정으로 잠재적으로 거래를 차감하고 결제의 최종금액을 확정하는 것으로 한마디로 얼마를 결제해야 하는지 판단해서 확정하는 절차”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안에선 지급결제청산기관에 대한 감독권한을 금융위에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한국은행과 충돌이 일어난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금융결제원에 ‘전자지급거래청산업’ 허가를 주고 금융결제원에 대해 검사, 감독, 제재권까지 갖는 내용의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전금법 개정안에 포함된 전자지급거래 청산의무,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에 대한 보고와 검사 등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빅테크 기업에 대한 전자지급거래 청산기관 감독권을 금융위원회가 갖게 되면 한국은행의 고유업무인 지급결제제도 관리 권한이 훼손된다는 이유 탓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이번 전금법 개정으로 금융위가 이른바 ‘빅브라더’가 될 것이라는 강도 높은 공세에 나선 상황이다.
◆기능중심 금융규제 전환 필요=빅테크 업체들이 외부 청산기관인 금융결제원에 거래정보를 제공하면 감독기관인 금융위가 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빅테크 및 핀테크 업체들도 외부 청산기관을 통한 디지털 지급거래 청산제도화에 대해선 썩 내켜하지 않고 있다. 특히 빅테크 및 핀테크 업체의 내부 전자금융거래에 대해서도 과연 외부 청산이 필요하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 김지식 이사는 “거액의 이용자 자금이 오고가기 때문에 자금보호 방안이 필요해 예탁금 예치제도와 외부 청산제도가 만들어졌는데 모두 제도의 설계 문제다. 외부 청산제도 도입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내부거래 외부청산의 경우 사업자 입장에서 부담이 증가한다. 망분리와 더불어 외부청산 의무가 부가되면 빅테크 업체에게 부담이 과중된다. 또, 청산시스템에 대한 개발 부담도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하나금융연구소 정중호 소장은 “청산 대상이 내외부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이 국내에 사무소를 설립해 아마존 플랫폼을 통해 국내에서 해외로의 역외거래가 발생하더라도 아마존 내부에서 움직이는 지급결제여서 규제당국의 개입이 필요 없다고 하면 굉장히 큰 규제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청산기구 신뢰의 문제, 즉 개인정보 보호를 지키면서 청산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도 “외부청산은 투명성 제고를 위해 중요하다. 금융서비스 뿐만 아니라 기업 서비스 전반에 있어 투명성 확보는 글로벌 트랜드다. 외부 청산기관으로의 데이터 이전 자체는 신뢰와 책임성의 문제다. 개인정보 이전의 이슈로 보면 외부청산의 경우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하고 개인정보의 대량처리의 경우 한곳으로 집중시키는 것이 위험할 수 있지만 필요는 하다. 이전되는 정보의 적절성과 수준 등을 개별적으로 판단해서 금융위의 관리감독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에선 전금법 개정안이 일괄적인 규제보다는 기능중심의 규제로 변화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점에선 대부분 동의하기도 했다.
이순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금법 개정안이 특정 수단에 대한 규제보다는 행위규제를 중심으로 한 기능중심의 규제로 고민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나금융연구소 정중호 소장도 “현재 금융사와 금융업자의 법적지위가 다른데 전금업 개정안이 기본법 수준의 포괄적 수준의 개정으로 이뤄지다 보니 업무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따라서 기능적 규제로 가야 한다. 일괄적 규제체계 마련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