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올 한해 기업 IT시장에서 뜨겁게 달아 오른 것 중 하나가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다. 전사자원관리(ERP)와 같이 기업의 필수 솔루션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기대에 맞춰 처음 국내에 RPA가 소개된 지 2년여 만에 국내 기업 솔루션 시장에서 확실하게 안착한 느낌이다.
몇몇 글로벌 기업은 제외하고 세계 순위권에 속한 RPA업체들이 국내에 들어왔다. 국내 기업들도 RPA 기능을 제품화해 선보였다. RPA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것이다.
글로벌 RPA 업체들이 우리나라를 주목한 것은 바로 일본에서의 성공 탓이다. 글로벌 RPA 업체들이 일본에 진출해 급속도로 RPA 라이선스가 증가하는 것을 목도하고 이웃 우리나라를 타겟으로 본 것이다. 비슷한 기업 문화와 업무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일본에서의 성공을 재현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이 주52시간 근로제다. 국내 진출을 저울질 하던 한 글로벌 RPA 기업은 시장 조사 컨설팅을 통해 우리나라에 주 52시간 이슈가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진출을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업무시간 단축이 법률로 제도화되면서 RPA 업체들이 한국 시장의 가능성을 확신한 것이다.
시장은 이미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고 RPA 기업들도 일본 등 해외 사례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시장에 진입하면서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해 소개된 RPA를 대기업, 금융그룹, 유통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전사, 전 그룹사 도입 등을 타진하는 곳도 나타났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RPA 시장이 너무 과열돼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우선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저가 수주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 만난 RPA 업체 관계자들 모두가 저가경쟁을 우려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도네이션이 양반일 정도”라고 전했다. 사실상 0원에 납품하는 도네이션보다 더 좋은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저가 수주 경쟁은 RPA 업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다. 특히 최근 RPA가 인공지능과 결합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하는 국내 업체들의 경우 타격이 심하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투자를 받는 규모도 상당하기 때문에 이 같은 경쟁에선 다소 유리한 상황이다.
저가 경쟁은 향후 기업에 대한 유지보수 등 후폭풍으로 다가 올 수 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RPA란 용어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최근 만난 한 금융사 관계자는 “RPA라는 명칭으로 기안서를 내는 대신 업무 혁신이라는 주제로 올렸다”며 “너도 RPA냐 하는 얘기가 나와 어쩔 수 없었다”고 전했다.
RPA 업체들의 메시지도 변하고 있다. 오토메이션애니웨어, 유아이패스를 비롯해 그리드원 등 국내 업체들도 ‘RPA’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다른 메시지를 전하는데 마케팅 초점을 전환화고 있다.
국내 진출한 지 불과 2년이 안된 시점에 IT솔루션 제품의 마케팅 포인트가 변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RPA가 얼마나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기업들의 RPA 도입 여정은 이제 첫발을 내딛은 상태다. 아직도 RPA는 일부 단순업무를 대체하는데 그치고 있다.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는 ‘판단’이 필요한 영역에까지 RPA가 도입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RPA의 갈길이 아직 멀다는 의미다.
하지만 벌써부터 피로감을 나타내는 시장의 징후는 좋은 신호는 아니다. 여타 명멸해 갔던 수많은 IT솔루션과 기술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도 시장에서 한번 숨을 고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