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고문은 디지털데일리가 7월5일 출간한 '디지털금융 혁신과 도전' 2019년 특별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편집사정상 본문 내용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 김민정 대표 ㈜크레파스솔루션(사진)
개인에게 담보없이 대출을 해주는 것은 신용등급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빠른 확장이 가능하지 않은 영역이었다. 개인대출은 기업을 분석해 한도를 부여하는 기업대출이나 담보 가치를 평가해 그 가치 내에서 대출을 실행하는 담보대출과는 다르다.
은행 심사역들은 자신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유무형의 체크리스트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지역 기반으로 비교적 제한된 영역의 고객을 대상으로 금융을 했던 과거에는 충분한 심사평가 기법이됐다.
그러나 그런 관행에 변화가 발생했다. 기존에는 심사역이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람들이 금융을 필요로하게되고 대출총액도 확대되면서 더 이상 과거 방식으론 우량·불량을 선별하기 어려워졌다.
신용평가모델을 발명한 미국 파이코의 첫 특채 사원이었던 에드워드 루이스 박사에 따르면, 1960년대 미국의 금융사들이 신용평가모델을 도입했던 중요한 이유는 ‘기존 심사역의 체크리스트가 더 이상 유용하지 않았기때문’이었다.
그 외에 대량의 대출 심사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대출심사 프로세스의 자동화가 필요했고, 전체 대출자산의 리스크관리가 중요해지면서 금융사에는 일률적인 기준에 의해 평가하고 대출 자산의 부실 가능성을 예측해 현재 자산의 상태를 알려주는 통계적 모형이 필요하게 됐다. 이것이 신용평가모형이 도입, 확산됐던 배경이다.
신용평가모형은 의사결정을 위한 모형이다. 어떤 데이터를 활용해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종류가 구분된다. 대표적 신용평가 모형인 신청평점모형(application scorecard)은 고객이 신청 당시에 제출한 정보들, 즉 대출신청서에 기입하거나 제출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신규대출을 승인할 때에 활용하였던 모형이다. 행동평점모형(behavior scorecard)은 대출 또는 신용카드 발급을 받은 사람의 금융거래, 상환 등 행동 정보를 기반으로 한도의 상·하향, 연체관리 등에 활용한 모형이다.
우리가 신용등급으로 부르는 크레딧뷰로(신용정보사)스코어는 1989년에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 졌으며, 신용정보사를 통해 집중하여 공유하고있던 각 금융회사의 금융거래 정보를 바탕으로, 하나 하나의 정보를 조회할 때 보다 금융사들이 더 쉽게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든 신용정보사의 새로운 서비스 모델이었다.
신용등급은 전 국민의 대부분을 대상으로 해 다수의 금융사가 심사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스코어를 산정하기 때문에 예측력외에도 안정성이 중요한 가치이다. 스코어카드 방식 자체가 예측력을 다소 양보하더라도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통계적 방식을 사용한다. 특히 신용등급의 경우에는 몇몇의 이벤트로 인해 매월 점수 변동폭이 크게되면, 몇 달 전에 그 신용등급을 신뢰하고 의사결정 내렸던 금융사의 의사결정 자체의 의미가 저하되기 때문에,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를 취하였다.
단기적인 신용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을 포기하더라도 최근 2년간의 기록을 살펴 안정성을 강화하는 것이나, 숫자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비율로 전환하여 사용하고, 단순한 연체 일수가 아니라 연체일수의 증가패턴이나 최대치 등을 살피는 금융거래 데이터 처리 방식은 이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금융거래정보는 그 사람의 신용을 평가하는 유일한 요소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금융 데이터가 없는 사람의 경우에도 프로파일링과 연속형 모델링 기법 등을 통해 개인의 성과를 추청하는 기법(performance inference, reject inference)은 신용평가 모형의 기술 발전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신용등급의 사용이 확산되어 점차 제도화 되면서 담보가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대안들이 등장했지만 금융거래 기록이 없는 사람들의 신용등급은 산출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금융회사에는 새로운 툴이 필요했다. 원래 크레딧뷰로의 설립 목적은 다른 금융사를 이용했던 기록의 확인이었다. 이 때문에 이를 요약한 신용등급이 금융정보를 포함하지 않은 사람들을 평가하는 데 취약한 것은 태생적 한계이다.
은행 처럼, 고객들의 예탁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금융회사의 경우에는 자산건전성 유지를 위해 보수적 관점을 유지하였고, 이는 금융거래기록이 검증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신용대출을 실행하는 관행으로 굳어지게 됐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금융권 별로 이자율이 비슷한 특성을 보여서, 은행에서 거절되었다는 것은 더 높은 금리로 제2금융권을 이용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사실, 거절된 사람들 중에는 불량도 있지만 우량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금융사의 리스크 담당자들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신용정보를 기반으로 자동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체계하에서는 유사한 금융연체 기록을 가진 사람들, 유사한 제2금융권 거래 경험을 가진 사람들 중에 추가적으로 우량한 대상자를 선별해 내는 것이 비용효과적이지 못하였기에, 금융사는 획일적으로 이들까지도 거절함으로써 포트폴리오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좀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은행은 은행 끼리만, 보험사는 보험사 끼리만 경쟁을 하는 구조였다면, 핀테크의 발달과 빅데이터의 증가는 금융의 수익구조 자체를 바꾸어 나가고 있다. 과거에는 백화점 우수고객에게 백화점 크레딧카드를 권유하였던 것 처럼 중국의 알리바바는 고객들의 구매력과 대금지급 등을 기준으로 중국에서 영업하는 은행들에게 대출 고객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상당부분의 수수료를 부가하고 있다.
또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이미 금융 인프라의 완비 이전에 증가한 다양한 금융 니즈를 전통적 금융회사 보다 핀테크 기술이 앞서서 충족해 나가고 있다.
또한 아마존이 고객들의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가격표를 없애고 초개인화된 가격결정 (pricing) 정책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새로운 변화의 물결들이다. 신용평가기법을 다각화 하고, 대안신용평가를 전통적 신용평가와 융합하여 사용하는 방안들은 이러한 경쟁 환경에서 금융사가 스스로 보유한 금융 경험과 데이터의 가치를 극대화 하도록 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대안신용평가 기법을 세계 최초로 금융에 적용한 렌도의 도전은 ‘이 성실하고 상환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왜 은행은 적은 돈 조차 빌려주지 않는 것일까’라는 작은 의문에서 시작했다.
렌도의 창업자들은 은행이 금융정보가 없는 사람들을 평가할 다른 정보가 없고, 또 정보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 할 수 있는 평가 기술이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해 소셜, 모바일, 심리평가 등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기존에 동일하게 거절대상이었던 사람들 중에 옥석을 가려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사실 대안 정보를 이용했던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평균적 신용등급으로는 동일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성실하게 개인 수표책의 한장 한장을 기록했던 기록을 보고 대출을 해 주었던 뉴욕의 은행 지점장이나, 성실하게 노력하는 여성들을 믿고 대출해 준 그라민 뱅크 등은 비전통적인 대안 데이터를 활용하여 성공적으로 금융의사결정을 했던 사례들이다.
다만, 이러한 사례들의 경우 효율성 중심의 금융 의사결정 체계 안에서 확장성이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있었는데, 스마트폰의 보급이 확산되고 빅데이터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과거에는 신용과 관련 없어보였던 작은 조각의 정보들을 연결해 그 사람의 삶의 맥락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동일한 신용등급 내에서 우량한 대상을 변별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지표를 형성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 강조하는 혁신적 금융은 그 사람의 과거만 보지 말고 미래 가능성을 보면서 쉽게 빌려주고 싼 금리고 빌려줘서 성장을 잘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내는데 금융이 그 기능과 역할을 다 하도록 하자는 것일 것이다.
검증을 중시하는 금융관행에서 혁신적 금융은 기존 금융기관들이 하기가 쉽지가 않다. 품을 들이는 것에 비해 당장의 수익도 많지 않을 것 같고, 또 언제든 검증된 이후에는 좀 더 싼 금리로 우리 고객으로 유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곧 닥칠, 아니 어쩌면 이미 닥쳤을 지 모르는 무한경쟁의 시대이다.
다른 모든 경쟁 금융사가 보는 동일한 정보를 동일한 관점으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리스크 평가를 한다면, 신용평가의 목적을 절반만 활용하는 것일 것이다. 금융의 개념이 부채에 머물렀을 때에는 회수해야 할 대상이므로 담보가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이것이 미래에 창출할 수 있는 것을 지금 앞당겨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크레딧으로 전환되면서 새로운 금융기회의 창출을 위한 다양한 관점의 심사평가기준을 만들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점점 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