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삼성전자(대표 김기남 김현석 고동진)가 서울대 공동연구소 내 위치한 C랩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내외 스타트업 과제 500개 육성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이 같은 슬로건을 내걸었다.
‘관리의 삼성’은 꼬리표처럼 삼성을 지칭할 때 따라 붙는 수식어다. 사람과 조직, 시스템을 일사불란하게 관리해 리스크를 방어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특유의 기업문화를 일컫는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앞장서 ‘관리’를 벗고 ‘창의’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했다.
변화를 거듭하는 글로벌 시장 속에서 부각된 키워드는 창의를 기반으로 한 혁신이다. 휴대폰시장의 최대 강자였던 노키아·모토로라의 몰락을 목도했고, 비디오 대여 서비스로 시작한 벤처기업인 넷플릭스가 미국 산업을 이끄는 기술주로 올랐다. 시대의 흐름을 읽은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은 글로벌 IT공룡으로 성장해 블루오션을 창출하고 미래산업까지 점유하려 한다.
삼성전자도 변화의 기로에 놓인 만큼 신산업을 위한 창의와 혁신에 대한 갈증이 지속돼 왔다. 기존의 조직문화에서 발생할 수 없는 아이디어 발현과 상품·서비스화를 글로벌 경쟁력에 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혁신적인 서비스는 창의적인 조직문화에서 발현된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C랩’이라는 판단이다.
C랩은 지난 6년간 임직원의 참신한 아이디어 발굴과 조직문화의 변화를 이끌어왔다. 올해부터 삼성전자는 C랩을 외부 스타트업에 본격 개방하고 지원하면서 판을 키운다. 5년간 500개 스타트업 과제를 육성하겠다는 방침이다. 더 새로운 아이디어를 지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면서 정부의 일자리 창출 기조를 실현한다는 명분도 얻었다.
궁극적으로 삼성전자는 성공 스타트업에 대해 인수합병하는 전략인 ‘스핀인(Spin-in)’까지 염두에 놓았다. 내외부에서 나온 검증된 아이디어를 삼성전자 사업에 적용했을 때, 신산업에서의 긍정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삼성전자는 창의적인 회사인가?”=이날 삼성전자에 따르면 C랩 이전에 임직원에게 “삼성전자는 창의적인 회사인가?”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조직 분위기인가”라고 물었을 때 2명 중 1명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은 “창의적인 회사다”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응답하면 변화된 모습을 나타냈다.
또한, C랩을 통해 삼성전자는 숨겨져 있던 새로운 인재군을 발견했다. 보통의 기업은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고 고성과를 내는 직원을 우대하고 높은 연봉을 책정해 왔다.
그런데, C랩 내에서 과제를 수행하면서 고성과 직원이 아닌 5% 인력이 창의인재로 분류됐다. 흔히 말하는 ‘일 잘하는 직원’은 아니지만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높은 창의력과 몰입, 도전정신을 보이고 있는 인력들이다.
이재일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장<사진>은 “이들이 삼성전자뿐 아니라, 나아가 사회·국가의 미래를 바꾸는 선봉자 역할을 할 것”이라며 “C랩을 6년간 운영하면서 임직원 스스로 변화된 모습을 체감하고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C랩의 초기 3년은 임직원이 아이디어를 서슴없이 구현하며 내부 혁신의 대표명사로 자리매김했으며, 이후 3년은 관계자와 외부 대학생을 참여시켜 오픈 이노베이션(혁신)의 메카로 성장시켰다”고 덧붙였다. ◆“C랩에서 배출한 성공 스타트업, 다시 M&A하겠다”=삼성전자는 ‘C랩 아웃사이드’를 통해 사업 협력이 가능한 2~3년차 스타트업뿐 아니라 아이디어만 있는 예비 창업자, 1년 미만의 신생 스타트업을 육성한다. 이 프로그램만으로 5년간 100개의 스타트업을 키울 예정이다.
이날 이 센터장은 “관리의 삼성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왔는데, 지난 6년의 교훈으로 외부에 C랩을 오픈하기로 했다”며 “올해부터 2022년까지 향후 5년간 C랩 경험과 노하우를 외부에 개방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성공한 스타트업은 다시 삼성전자가 M&A하는 스핀인 기회도 갖게 된다. C랩을 통해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34개 회사는 삼성전자가 투자를 하고 지분을 확보한 상태다. 그렇지만, 여기에 관리의 삼성은 없다.
계약서에 일체 경영에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삼성전자는 이들 기업에 16~25%가량의 지분만 확보한 상태다. 다만, 도움을 요청할 경우 삼성전자의 유통망을 활용하거나 멘토링을 받을 수 있다.
외부 스타트업에 대해서도 동일한 방침을 적용한다.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장만 마련한다. 기존의 조직문화를 강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육성기간을 완료하고 성공 스타트업 사례가 될 경우, 삼성전자에서 적정가격을 받고 되팔 수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에서는 스타트업 엑싯(Exit, 투자금 회수)을 위한 M&A 시장이 활성화돼 있다. 삼성전자가 여기에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검증된 사업성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확대하고 신산업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이 센터장은 “C랩에서 독립한 스타트업을 지배 또는 경영 간섭하거나, 삼성 스타일로 육성할 계획은 없다”며 “삼성전자가 육성한 스타트업을 시장가치와 동등한 가격을 지불해 스핀인하는 사례가 꼭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