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 블로그 미디어 = 딜라이트닷넷] '거창하게 로마 흥망사까지 들먹일 필요가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 권력의 몰락은 외부의 공격보다는 내부의 부패가 원인이다.
국가의 말기적 현상을 나타내는 '부패'사례들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매관매직이다. 관직을 사고 파는 것. 공정한 평가 결과는 무시되고 소위 빽과 '연줄'에 위한 공기업 입사가 속출하는 사회, 그런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채용대상 인원 518명중 무려 493명이 부정채용 의혹을 받고 있는 강원랜드 사례는 가히 '역대급' 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5월 출범한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적폐청산이 시도되고 있다. 공기업 채용비리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더 확대되는 모양새다. 정부는 강원랜드,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서부발전, 대한석탄공사, 한국디자인진흥원 등 채용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공기업에 대해 검찰을 통한 전방위 수사에 착수했다.
최근 정부의 중간 조사 발표는 충격적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남의 눈을 의식한 교묘한 눈속임은 아예 귀찮다는 듯이 공지된 채용규정을 제멋대로 위반해 점찍은 사람을 채용한 사례가 적지않았다. 방약무인(傍若無人), 남의 눈을 의식하지않고 내키는대로 하는 모양새를 일컫는 말이다. 아예 대놓고 채용비리를 저지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일반 기업들의 채용은 공기업에 비해 공정할까. 구체적인 조사 자료가 없더라도 국민적 정서는 '공정하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많을 것이다.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의원(정의당)이 공개한 우리은행 채용비리 의혹은 어쩌면 극히 예외적인 일탈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추악한 민낯일지 모른다.
고액의 예금을 맡긴 VIP 고객의 자녀이거나 금융감독 당국 고위직의 자녀, 국가정보기관의 자녀.....
금융권에서 평가가 좋았던 이광구 행장이 수장으로써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록 심 의원이 공개한 자료는 적나라 했다.
채용비리나 또 거기에서 거기인 특혜채용. 이것의 본질은 결국 '갑질'이다. 채용비리는 '갑질'의 파생어다. 갑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을에게 자신의 자녀 취업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을'은 피해자가 아니다. 을은 그 대가로 갑에게 든든한 '보험'을 든 셈이기때문이다. 동정할 필요가 없다. 결국 갑과 을은 부패의 공생 관계다.
채용과 관련해, 금융 IT분야를 취재하면서 과거 불편했던 몇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참고로 지금부터하는 얘기는 비교적 오래된 얘기다.
발주처인 금융회사와 납품 관계에 있는 IT기업에 해당 금융회사 IT부서 직원의 자녀가 취업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사례에는 국내에 진출해있던 외국계 IT기업도 포함된다. 오히려 외국계 기업의 사례가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IT장비를 납품하는 회사에 발주처 임직원의 자녀가 근무하는 것,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해를 살 명분은 되지만 단순히 우연일 수 있고, 특혜채용과 전혀 무관하게 본인의 실력으로 입사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두 다리 건너 쉬쉬하면서 들리던 얘기들은 가끔씩 눈치를 챌 정도로 증폭되곤 했다. 입찰경쟁에서 탈락한 경쟁 IT기업들이 어디서 들은 풍문을 가지고 관련 내용을 발주처에 투서를 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풍문의 당사자가 드러내놓고 직을 내려놓거나, 고소고발과 수사로 이어지거나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러한 풍문들은 결과적으로(?) 흥밋거리에 그치곤 했다. 설사 풍문이 사실이었다하더라도 그것때문에 책임을 따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씩 이러한 풍문이 단순한 흥밋거리를넘어, 불편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갑의 자녀'로 인해 대형 IT프로젝트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한 사례다. 2000년대 초반, 한 대형 금융회사은 차세대 IT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IT사업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 그로 인한 피해는 모두가 입었다. 프로젝트 실패의 원인을 찾기 위해 분주했다. 관련하여 다양한 이유가 제기됐다. 그중 하나로, 컨설팅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런데 황당했던 것은 당시 이 IT사업을 컨설팅했던 회사에 발주처인 이 금융회사 고위직의 자녀가 재직하고 있었다는 소문이 돌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곤란하다.
이 소문이 진실에 얼마나 부합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프로젝트를 실패하게한 결정적 이유가 맞는다면 이는 암묵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게임의 룰'을 크게 벗어난 것이다.
이러한 일탈의 관행을 허용한다면 신의와 성실의 준수의무, 공공의 선은 결국 붕괴된다. 누구도 최선을 다하지않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비수 또는 암수가 난무하게 된다.
항상 그런것은 아니지만 IT사업을 따내기 위해 직원들의 월급통장을 발주처 은행으로 옮기고, 체크카드나 신용카들 몇백장씩 발급받는 것은 그동안 금융권 IT사업 입찰에서 심심치않게 보았던 '가벼운 일탈'(?)이다. 하지만 엄중히 따지고 보면 오십보 백보다. 이러한 일탈이 용인되서는 안된다.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처럼 부패에 둔감한 사회, 이는 나라를 망하게하는 말기적 현상이 된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많이 투명해졌을 것으로 믿는다. 그 시절의 불편했던 기억만으로 전부를 설명하는 것은 분명한 일반화의 오류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개인적인 솔직한 느낌은 '아직 모르겠다'이다.
과연 그때보다 지금이 좀 더 나아졌을까.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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