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IT / 김광옥의 관전(觀戰) ①] ‘금융IT 조직의 통합’
금융산업이 혁신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디지털데일리는 김광옥 금융IT혁신포럼 회장(사진)을 금융IT분야 고정 패널로 초대해, 금융IT와 관련한 다양한 혁신 과제들을 독자 여러분들과 자유롭게 얘기해 볼 계획입니다. 김 회장은 농협 CIO, IBK시스템 대표를 역임했으며, 30년간 금융IT 현장을 지킨 주인공입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제에 따라 컬럼,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을 취할 생각입니다.
‘관전’의 첫번째 주제로 '금융IT 조직의 통합'으로 잡았습니다. 앞서 지난 1월,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계열사간 고객 DB공유를 허용하고, IT 등 후선지원업무는 통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후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를 중심으로, 지주사내의 IT 조직을 통합해 그룹 전체를 관리하는 신개념의 SSC(Shared Service Center) 전략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이에 대한 김광옥 회장의 견해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편집자>
“IT 경쟁력은 CEO의 큰 관심사”
일본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금융회사가 합병하거나 통폐합하는 여러 이유중에는 반드시 IT투자 비용이 꼽힌다. 늘어나는 IT투자 비용을 견디지 못해서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합병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영을 잘못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늘어나는 IT 투자비의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비대면채널, 디지털금융 비중의 확대로 금융회사의 경쟁력에서 IT인프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인데, 이에 대한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고민이 깊다. 특히 IT인프라의 고도화 여력이 부족한 중소 금융회사들은 IT의 불안정, 보안사고에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어 금융권 내에서 IT품질의 양극화가 더 심화될 것으로 생각된다.
IT투자 여력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은행 등 대형 금융회사들도 물론 그들 나름대로 고민이 깊다.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새로운 IT트랜드에 대한 IT 직원들의 적응력, 막대한 IT비용을 포함한 IT자원의 효율적인 배분과 운영, IT 현안에 대한 선택과 집중 등 쉽지않은 과제다. 기존 레거시시스템과 같은 IT 인프라의 고도화외에 빅데이터, 클라우드, 인공지능(AI)과 같은 새로운 변화에 기존 IT인력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입장에서보면 IT는 여전히 불안하고, 취약한 부문이다. CEO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IT에 민감하다. 한 해 수천억원을 IT비용으로 책정하는 CEO 입장에서 볼 때 ‘IT 경쟁력’은 IT 인프라의 안정적인 운영외에 IT의 생산성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당연히 IT 조직도 IT경쟁력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혁신적으로 개편하고 싶어한다. 과거 20년전부터 금융권에서 SSC가 제기됐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도 상황은 그때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IT 직원들, 현실 안주하지 말아야”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그룹의 IT조직을 반드시 SSC와 같이 물리적으로 통폐합하는 방식은 아니더라도 기존 IT조직을 개편해야할 필요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궁극적인 목적은 IT 조직의 가치를 기존보다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데 있다.
좀 민감한 얘기이기지만 금융회사 IT부서에 오래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갑(甲)의 위치에 있게 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소위 ‘갑질’에 익숙해진다. 이런 풍토하에서는 개인의 자발적인 분발이나 역량 증진을 기대할 수 없다. 또 그런 분위기에서는 거친 변화의 물결을 감당할만한 내공을 스스로 단련하기가 곤란하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O2O, 핀테크 등 새로운 기술과 트랜드에 대해서도 IT 부서는 두려움을 갖지 말고 적극적으로 리드해야 한다. 최근 ‘스마트금융’ 업무의 경우엔 현업이 IT부서보다 오히려 아젠더를 리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당연히 IT부서로서는 위기감을 느낄만하다. IT직원들이 기존 관성대로 시스템을 관리하고, 현업의 요구에 따라 상품 개발을 지원하는 정도에 머무르면 안된다. 절차탁마(切磋琢磨), IT 직원들이 더 연구하고 발전해야만한다. 그래야 궁극적으로 금융회사의 IT부서가 디지털금융 경쟁력을 주도할 수 있다.
농협이 시도했던 SSC... ‘실패의 교훈’
본인이 농협에 근무할 때인 지난 2000년초, IT부문을 떼내 별도의 IT전담 회사를 만들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별도의 IT 회사가 농협의 IT 개발 및 운영 전체를 책임진다는 점에서 현재의 SSC 방식과 개념상 같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일단 정서적인 문제를 넘지 못했다. SSC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노조의 반발, IT부서 직원들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 IT 전담 회사로 옮기게 될 경우 처우 개선과 복지에 대한 확신 결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또 당시 시기적으로본다면 당시는 IMF 사태를 겪고, 극심한 은행간의 통폐합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용불안에 대한 은행권의 트라우마도 심했다.
먼저, 노조의 반발은 이제 ‘상수’(常數)로 놓아야한다. 과거에 비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만약 SSC를 시도한다면 그 과정에서 노조와 진솔하게 대화하고 비전을 공유하는 노력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본질로 들어가야한다.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IT 직원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일이 핵심이다. 개인적인 경험상, IT 본부내 팀장급 이상의 간부 사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들이 SSC에 대한 비전과 확신을 가져야한다. 그래야 팀원들도 믿고 따라온다. 지내놓고보니 당시 농협은 이 부분에서 다소 세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 간부들의 마음을 보다 세심하게 읽었어야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은행의 최고경영진은 IT 직원들을 IT 엔지니어라기 보다 ‘은행원’이란 생각을 먼저 해줘야 한다. SSC와 같은 물리적인 방식으로 IT조직을 은행에서 분리해내려했을 때 IT직원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좀 복합적이다.
IT 전담 회사 직원으로 신분이 바뀌었을 경우, 직원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단순히 은행원 수준의 연봉, 복지 수준과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만이 아니다. 물론 앞으로 금융 지주사들이 SSC를 시도하게 될 경우, 최고경영진은 IT 전담 회사로 전직하는 IT직원들에게 최소한 기존 은행 수준의 연봉과 복지수준을 동일하게 제시하거나 더 높은 인센티브를 책정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야만 그들을 설득할 수 있기때문이다. 과감한 연봉과 복지 혜택의 배려는 SSC를 시도하기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당시 농협도 IT 전담회사로 가는 직원들에게 직급을 한 단계씩 올려주고, 일정 규모씩 자사주를 제공 하는 등 나름대로 많은 혜택을 제시했었다.
역사에 있어 가정(假定)은 부질없는 것이다. 다만 IT 직원들이 당시 제시된 조건대로 IT 전담 회사로 옮겼으면 17년이 흐름 지금, 결과는 결코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금융시장에서 농협이 가진 규모와 위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은행 IT 직원들이 IT 자회사로 전직을 결정하기에 앞서 불안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다름아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 이는 연봉과 복지 등 외형적인 것들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문제다.
현재 은행 IT직원들중 많은 수가 IT가 전공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IT전공자도 아닌데 내가 과연 IT 회사 직원으로 잘 버텨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에서 의외로 여러 사람들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은행 소속이었을때는 IT부서가 적성에 맞지 않으면 자원해서 지점에 나갈수도 있었지만 IT자회사로 옮기면 이젠 퇴로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이 부분에선 은행 최고 경영진의 소프트한 노력이 필요하다. IT비전공 출신이라도 적성에 맞는 업무를 찾아주거나 직원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함으로서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IT 비전공자라할지라도 은행 업무를 제대로 꿰고 있으면 그 자체로 IT 전담회사에 가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본인이 CIO로 재직할 당시 ‘100명의 직원에겐 100가지의 저마다 장점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조직을 꾸리고 운영했다. 직원들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장점은 가지고 있고, 그 장점을 찾다보면 결국 다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통합 IT조직, 외부인 영입은 금물”
현재 우리FIS를 제외하곤 국내 지주사및 은행권에서는 SSC를 제대로 해본 사례가 드물다. 다만 이와 유사하게 은행 IT부서와 IT자회사의 이원화된 조직 구조가 존재했다.
2000년 이후, 지난 십수년간 은행내 IT 조직(CIO) 또는 IT자회사에 외부 인물이 영입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는 내지는 못했다. SSC를 통해 IT전담 자회사를 출범시키게 되면 내부 출신의 IT인력을 중용하는 게 리스크를 더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무턱대고 명성만 믿고 외부 IT 명망가를 영입했을 경우, 자칫 조직 자체가 와해돼버리는 경우가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SSC는 여러 회사의 IT자원들이 모여 통합되는 곳이기때문에 그 속성상 매우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경험이 많고 IT직원들의 신망을 갖춘 내부의 인사가 SSC의 리더로서 적합할 것으로 생각한다.
금융 IT 전문가, 충분히 가치있는 도전
금융IT는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분야다. 기존 금융 IT자회사들이 운영 및 유지보수 역할에 비중을 뒀다면 향후 SSC 체제에서는 그룹내 SM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솔루션을 통해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가질수 있다고 본다.
현재 국내 은행권 IT자회사 중에서 IBK시스템 (기업은행의 IT자회사)은 훌륭한 성공모델로 꼽을 수 있다. IBK시스템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여신솔루션과 함께 오랜기간 은행 SM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를 국내 캐피탈업계 차세대시스템 분야에서 많은 수주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는 수출입은행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까지 공동수주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해외시장 공략도 가능해졌다.
앞으로 금융IT 분야는 분명히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다. 본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너무 겁먹을 필요없다.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 불철주야 노력하는 많은 금융 IT 후배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리 =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Copyright ⓒ 디지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