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말 많고 탈 많았던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이 11일 문을 열고 본격적인 연구활동에 들어갔다.
AIRI는 삼성전자‧SK텔레콤 등 국내 7개 대기업이 공동 출자했다. 자본금은 210억원으로 7개 기업이 각각 30억원씩 참여했다.
AIRI 출범 취지는 민간이 힘을 합쳐 선진국에 뒤쳐진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손을 잡고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겠다 하니 이보다 더 좋은 그림은 없을 듯 싶다.
하지만 AIRI는 출범 전부터 기업의 자발적 의지가 아닌 정부의 압력에 의해 대기업들이 십시일반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미래부가 나서서 기업들에게 연구원 설립을 종용했다는 구체적인 정황도 지적됐다. 공교롭게도 7개 대기업 중 한 곳만 제외하고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떠맡은 기업들이다. 그러고 보면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영역도 다른 대기업들이 자발적 의지에 의해 뭉쳤다는 것은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아직 인력이 갖춰지지도 않은 민간 연구원에 정부가 연간 150억원씩 총 750억원의 용역과제를 약속한 것 역시 논란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 과정에서 미래부가 관련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의혹도 국감에서 지적됐다.
정부의 해명도 설득력은 있다. 단순히 '알파고' 충격으로 급조된 연구원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율주행, 의료,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주목을 받았고 정부가 나름 시의적절하게 연구원 설립을 추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공지능 분야 기술자립을 위한 정부의 노력도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정통부 이후 정부가 산업의 진흥을 주도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정부의 의지와 노력은 높게 평가하지만 사실상 정부가 주도해 설립된 연구원이 얼마나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대표적인 국책 연구기관인 ETRI를 비롯해 다양한 기관에서 인공지능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 기술적 자립도가 낮았던 시절과 달리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알아서 스스로 투자를 한다. 정부가 CDMA, 초고속인터넷 탄생을 주도했지만 3G 이후로는 기업들이 스스로 투자하고 경쟁하면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인공지능 역시 기업이 필요하다면 충분히 투자해서 스스로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다. 정부는 투명한 과정을 거쳐 정부과제를 수행하면 된다. 기업이 나서지 않아 정부가 나섰다? 시장이 존재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이 분명한데 가만히 있을 기업은 없다.
김진형 원장은 출범식에서 "4차 산업혁명에서 인공지능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대학과 출연연구원의 연구결과를 신속하게 산업에 적용하는 것이 연구원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이 한국의 연구원이 아니라 세계의 연구원이 되길 기대한다"며 "민첩하게 움직여 산업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연구원이 되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어찌됐든 출범했다. 김 원장과 최 장관의 말처럼 AIRI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란다. 통신강국의 초석을 놓았던 ETRI처럼, AIRI가 지능정보 강국으로 가는 이정표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해본다. 기자와 일부의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게 AIRI가 이 정부 이후로도 쭉 잘 됐으면 좋겠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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