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1980년대 각 그룹 계열사들의 전산실이 하나로 모여 출범한 오늘날의 IT서비스업체들은 우리나라 시스템 통합(SI) 시장을 개척한 주역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기자가 처음 이 시장을 취재하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SI는 회사와 업계를 설명하는 일반적인 단어였다.
하지만 오늘날 SI는 다소 부정적 어감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장기간 야근에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는 업종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SI업체들은 스스로를 IT서비스업체라고 얘기한 지 오래다.
SI는 사실 대기업의 전산실 출신이라는 태생적인 ‘원죄’를 가지고 있다. 물론 SI업체들이 그룹사 내부 물량에 의존해 혁신을 꾀하지 않았다는 점은 스스로 반성해야 하는 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I업체들은 대기업 계열사 시스템 구축을 통해 ‘시스템 통합’이라는 역량을 쌓아온 것은 부정할 수 없다.
IT시스템을 개별로 구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개별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함으로서 개별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스템이 탄생한다. 이를 일원화해 관리가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기업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시 말해 SI라는 단어에는 기존에 서로 다른 것을 합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최근 IT시장에는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 기존 기업 IT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신기술이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상황이다. SI, 요즘의 IT서비스업계에 이는 새로운 도전이 될수도, 도태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클라우드가 보편화되면 전통적인 SI사업은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서버나 솔루션을 버튼 하나로 클릭해 시스템을 구성하는 시대가 오면 SI 자체의 필요성이 희박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SI자체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외산 솔루션과 국산 솔루션의 차이점 중 가장 큰 것이 ‘커스터마이징(최적화)’ 여부다. 이 커스터마이징은 외산 솔루션의 국내 시장 진입을 막는 큰 장벽 중 하나였다. 하지만 반대로 국내 솔루션의 후진성을 의미하기도 했다. 개별 기업마다 요구사항을 다 맞춰주느라 솔루션 패키지로 출시했더라도 실제 결과물은 A사에 특화된 제품, B사에 특화된 제품 식으로 파편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화 제품이 과연 나쁜 것일까? 제품을 만드는 회사 입장에서는 유지비용이 증가하겠지만 이를 사용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입맛대로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편의성을 굳이 외면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다. 시스템 통합도 마찬가지다. 시스템 통합은 예를 들면 공산품을 개별 기업이나 개인에 맞게 최적화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또 시스템 통합을 통해 전혀 다른 서비스나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클라우드도 현재로선 새로운 것이다. 하지만 사용하다보면 언젠가는 최적화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사람은 항상 편한 것을 찾게 마련이고 사람이 모여 집단을 이루는 기업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시스템 통합은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쌓아온 업체들의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물론 기자의 생각은 그동안 SI를 출입하면서 업계에 경도(?)된 측면도 있다. 최근 만난 한 IT서비스업체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기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직접 클라우드로 사업을 수행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SI를 통한 커스터마이징 이점 보다는 표준화와 유연성 면에서 기업이 갖는 이점이 더 강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클라우드의 약점, 이른바 ‘깊이’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개인화, 기업화된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하지만 이 역시도 ‘적응’의 문제라고 답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이후 개발부서와 현업 모두의 관심은 클라우드로 가 있는 듯 하다. 이런 상황에서 SI가 다시 기회를 노릴 수 있을지 아니면 기업 IT시장에서 클라우드가 최종 승자로 남을지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상일 기자>24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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