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지난 몇 년 간 전세계 스토리지 업계의 뜨거운 감자는 올 플래시 스토리지다. 2010년 초반부터 수많은 올 플래시 스타트업이 등장하면서 시장 경쟁에 불을 지피고 있지만, 여전히 플래시 가격이나 용량, 데이터 복제 등 여러 이슈로 예상보다는 더디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스토리지 업계 1위인 EMC가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올해까지 자사의 모든 스토리지 제품을 올 플래시로 전환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데이터센터 인프라의 변혁을 예고하고 나섰다. 기존 제품과의 카니발리제이션(자기잠식)에 따라 다소 주춤했던 과거에 비해 플래시를 자사 전략을 핵심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3일 개최된 기자간담회에서 김경진 한국EMC 사장은 올 플래시 스토리지를 아이폰으로 변화된 스마트폰 업계에 비유하며, “이제 때가 됐다”고 본격적인 올 플래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그동안 스토리지 제품의 핵심 저장 장치는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였다. 1980년대 들어서 보편화된 HDD는 기존 테이프를 대체하며 기업용 스토리지의 핵심 장치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CPU나 메모리가 지난 수십년 간 가격이나 용량이 향상되며 발전해 온 것과는 달리 HDD는 지난 십수년 간 1만5000RPM의 속도에 머물러 있었다. 발열이나 안정성 등의 문제로 더 이상 발전되지 못했던 것이다.
김 사장은 “이 때문에 지난 십수년 간 기업의 데이터센터는 1만5000RPM의 볼모로 잡혀있었다”며 “모든 것이 바뀌었는데, 그 거추장스러운 모터 하나 때문에 포로가 돼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 거추장스러운 1만5000RPM 하드 디스크의 벽을 깨주는 ‘물건’이 플래시다. 그리고 플래시 매체의 발전에 따라 엔터프라이즈 업계에서도 플래시를 메인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시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스토리지 1위 업체인 EMC의 움직임이 이를 더 촉발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김 사장은 이를 ‘아이폰의 순간(Iphone moment)’라고 불렀다.
지난 수십년 간 스토리지 업계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씬프로비저닝이나 데이터 중복제거, 스토리지 가상화 등 수많은 기술 변화를 거쳐 현재에도 클라우드 스토리지나 소프트웨어정의스토리지(SDS) 등 다양한 이슈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올 플래시만큼 시장 변화를 크게 일으킨 이슈는 지난 10년 간 없었다.
1위 업체에게는 시장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새로운 도전자들에게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전쟁이 시작됐다. 업계 1위가 스스로를 부정하면서까지 혁신에 나선 지금 과연 10년 후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