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금융IT 시장에서 삼성SDS, LG CNS, SK C&C 3사를 ‘빅3’로 부른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그전에는 한국IBM, 한국HP 등 글로벌 IT업체들과 국산 3인방 등 두 개의 그룹이 양분돼 금융IT 시장의 주도권을 다퉜다. 물론 또 그 이전, 1990년대에는 메인프레임을 앞세운 한국IBM이 금융IT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했었다.
2000년 중반이후 구축된 삼성, LG, SK 빅3의 아성은 지난 10여년간 견고했다. 빅3끼리 치열하게 경쟁도 하지만 암묵적으로 빅3 이외의 제3의 플레이어가 진입하는 것을 허용하지도 않았다. 포스데이타가 금융IT 시장에 본격 진입하려했으나 얼마 안가서 포기했고, 한때 한창 잘 나가던 티맥스 역시 금융 SI(시스템통합) 시장 공략을 시도하려다가 실패했다.
금융IT시장에선 SI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 사업을 상시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적정선의 인력을 유지해야한다. 그런데 이 자체가 상당히 리스크가 크다. 인력을 잔뜩 확보해놓았는데 예상했던 IT사업이 미뤄지거나, 프로젝트 대금을 제때 받지못하면 심각한 재무적 곤란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든든한 모그룹의 매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 그래서 금융SI업의 본질을‘맷집’으로 표현하기도한다.
지난 2013년6월, 삼성SDS가 금융IT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하면서 빅3 체제는 자연스럽게 붕괴되고, 시장은 LG CNS와 SK C&C 중심의 양강체제로 전환됐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양강 체제가 오래갈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금융SI 시장 상황이 변한 것도 있지만 양강 구도 자체가 가지는 불안정성 때문이다.
IT사업을 발주하는 금융회사들도 2개사 이외의 업체가 입찰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2개사 구도로 흘러갈 경우 상호간의 견제 보다는 담합의 유혹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보기때문이다. 어느 한 회사가 입찰에 포기할 경우 1개 업체만 남아 모양새를 그르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중견 IT서비스업체중 빅3의 한 축을 차지할만한 외형을 갖춘 업체가 성장하지 않은 상태지만 시장은 새로운 빅3 체제가 곧 정립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관련 한화S&C, 아시아나IDT, 대우정보시스템 등 중견으로 분류됐던 업체들이 금융IT 시장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2금융권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수주하거나 시너지효과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M&A(인수합병)을 과감하게 시도하고 있다. 대우정보시스템은 15일 SWIFT, e뱅킹 분야에서 강점을 가졌던 코마 스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삼성SDS가 빠져나간 빅3의 한 자리를 누가 채울까’를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한화S&C의 행보는 주시할만하다.
한화S&C 금융영업부문 정회권 상무는 삼성SDS 출신이다. 2년전, 삼성SDS가 금융IT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소속 금융IT 전문 인력들이 금융IT시장 확대를 노리는 중견 IT서비스업계로 대거 스카웃됐다. 그도 그중 한 명이다.
정 상무는 “한화S&C는 금융IT시장의 빅3의 한축으로 성장하길 원하고 있고, 또 그만큼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화S&C는 지난해 7월 신협중앙회의 차세대 공제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올해 한화S&C는 외환펀드서비스가 발주한 90억원 규모의 차세대 사무수탁시스템 구축 사업을 수주했다.18개월 일정으로 진행되는 이번 사업에서 한화S&C는 펀드 기준가격 계산(KASS)과 포트폴리오 운용지원 서비스(PMS),주문 체결 지원 서비스(OMS) 개발에 나선다.
2금융권에서 쌓은 대규모 IT사업 역량을 은행권으로 넓히는 것이 한화S&C의 과제다. 하지만 조급해하지는 않는다. 최근 진행된 모 은행 차세대시스템 사업자 선정에선 회사 내부적으로 정한 가격 정책때문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상무는 “가격정책이 흔들리면 결국 나중에 그 후폭풍을 고스란히 받게된다”고 말했다.
한화S&C가 노리는 것은 은행권 차세대시스템 사업에 고정돼 있지 않다. 1000억원대가 훌쩍 넘는 빅뱅 방식의 은행권 차세대프로젝트 자체가 앞으로 나올 가능성이 적은데 그것만 바라보고 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모바일, 스마트금융, 빅데이터, IT융합형 선제안 서비스 등 다양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한화S&C가 ‘금융IT 빅3’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근거는 세가지다. 방향성, 풍부한 경험, 그리고 업그레이드된 조직과 인력이다. 한화S&C는 올해초 금융영업부문을 기존 을지로 본사에서 여의도 한화투자증권으로 이전시켰다. ‘금융영업의 전진기지가 필요하다’는 판단때문이다. 온라인 네트워크가 발달한 시대에 '전지기지론'에 전적으로 수긍이 가지는 않지만 금융IT 시장을 새로운 블루오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화S&C측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새로 마련된 여의도 금융영업부문 사무 공간은 완벽한 모바일 오피스로 구현했다. 팀장 자리도 따로 없고 팀원들은 자유자재로 소통할 수 있는 레이아웃을 갖췄다. 특히 직원이 눈치안보고 마음껏 통화를 할 수 있도록 1평 남짓한 통화부스를 사무실 곳곳에 설치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다소 고지식한 그룹 이미지를 고려하면 매우 신선해 보인다. 또한 건설현장에서 사용하는 안전모가 임원실에 하나씩 배치된 것도 흥미로웠다. 정상무는 “현장에서 사고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화S&C의 강점은 역시 ‘풍부한 경험’이다. 한화생명(옛 대한생명), 한화손보, 한화투자증권 등 한화그룹 금융계열사들의 IT아웃소싱을 안정적으로 오랜기간 전담하고 있는 것은 큰 강점이다. 한화S&C는 금융IT부문에서 연간 1500억~2000억원대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화S&C는 지난 2년여 동안 금융IT시장 공략을 위한 인력을 크게 보강했다. 특히 내부 비지니스 디벨로프(BD) 조직은 금융권을 대상으로 새로운 사업을 선제안하는 역할을 맡는다. 디지털 BPR, 핀테크, 클라우드 컴퓨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선제안 사업 모델을 이 조직에서 만들어 낸다. 아직 외형은 올라오지 않았지만 한화S&C가 기존 빅3에서 강점으로 평가받았던 조직문화와 제도를 개방적으로 흡수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부분이다.
삼성SDS가 금융IT 시장에서 철수하기전 이 부문에서 올린 연간 매출은 약 5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시장의 주인은 아직은 무주공산이다. 이 시장을 잡기위한 한화S&C를 비롯한 중견 IT서비스업체들의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됐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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