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25일 발행된 오프라인 매거진 <인사이트세미콘>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지속적으로 거론돼 왔던 중국 BOE의 10.5세대 LCD 생산라인 투자가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10.5세대 라인을 갖추게 되는 BOE는 공장이 가동되는 2018년 이후 60인치 이상 초대형 패널 시장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10.5세대 투자 외에도 중국 현지 패널 업체들은 무서운 기세로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대형 LCD 패널 업계의 동향과 각 업체별 라인 투자 현황, 국내 업체들의 대응 방향을 살펴본다.
글 한주엽 기자 powerusr@insightsemicon.com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인 BOE가 10.5세대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라인을 건설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BOE의 10.5세대 라인은 투입 기판 크기가 3370×2940mm으로 일본 샤프의 10세대(3130×2880mm) 공장 보다 큰 세계 최대의 사이즈다.
BOE는 이 공장을 구축하기 위해 400억위안(한화 약 7조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장이 위치하는 곳은 안후이성 허페이시다. 내년 초 건설에 돌입해 2018년 가동하는 것이 목표다. 이 공장의 최대 생산 용량은 기판 투입 기준 월 9만장에 이를 것이라고 BOE는 설명했다. 10.5세대 공장 건설에 필요한 첫 투자 자금 220억위안 가운데 40억위안은 BOE의 보유금으로 이뤄지고 나머지는 중앙 정부가 댄다. 전체 투자금 400억위안에서 180억위안은 허페이시 인민정부가 투자기관 등을 모집해 마련할 계획이다. 즉, 10.5세대 LCD 공장을 짓기 위해 BOE가 직접 부담하는 금액은 전체 투자액의 10분의 1 수준인 셈이다.
BOE는 푸저우에 신규 8.5세대(2500×2200mm) LCD 공장을 짓겠다는 발표도 했다. 이를 위해 푸저우건설투자그룹과 제휴 관계를 맺었다고 밝혔다. 푸저우에 지어지는 새로운 8.5세대 LCD 공장에는 300억위안(한화 약 5조2000억원)이 투입되며 월 생산 용량은 기판 투입 기준 12만장이다. BOE의 이번 증설 투자 발표로 2018년 이후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이 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0.5세대를 앞세운 BOE는 60인치 이상 초대형 패널 시장에서 타 업체 대비 높은 원가 경쟁력을 가져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10.5세대 라인 가동에 따른 영향
60인치 이상 초대형 LCD 패널 생산은 7, 8세대 라인에선 효율성이 떨어진다. 자르고 버리는 기판의 면적이 증가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8세대 기판 한 장에선 55인치 패널 6장을 생산할 수 있다. 버리는 면적도 거의 없다. 그러나 60, 62, 65인치 패널은 3장이 최대다. 이럴 경우 버리는 기판 면적이 30%를 훌쩍 넘어간다. 버리는 기판 면적이 증가하면 원가가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반면 BOE의 10.5세대 라인에선 65인치를 8장, 21대 9 비율의 61인치, 70인치 패널을 각각 10장, 8장씩 뽑아낼 수 있다. 61, 65, 70인치 모두 버리는 기판 면적이 10%를 초과하지 않기 때문에 8세대 공장에서 찍어낼 때 보다 원가가 낮다.
현재 프리미엄 제품군의 화면 크기는 55인치. 유의미한 이익을 낼 수 있는 주력 판매 제품군은 30인치 후반대를 포함한 40인치대다. 그러나 2018년까지 화면 크기는 점진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50인치대가 주력으로 올라올 때 쯤 BOE의 10.5세대 공장이 완공될 것으로 관측되는데, 이 때 60인치 이상 초대형 패널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밀어내게 된다면 삼성디스플레이나 LG디스플레이 등 선두 업체들은 BOE의 제품 운영 전략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샤프는 10세대 투자가 너무 빨리 이뤄져 전사 실적에 큰 악화를 불러왔다. BOE의 경우 투자 시점만 놓고 보면 적절하게 이뤄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BOE 측은 10.5세대 투자를 발표하며 “큰 디스플레이를 선호하는 것이 최근의 TV 소비 경향으로 앞으로 꾸준한 성장이 예상된다”며 “이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BOE의 10.5세대 투자에 부정적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경민 현대증권 연구원은 “초대형 TV 수요가 둔화될 경우 샤프처럼 가동률 부진과 이익 축소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술적 실패 위험성도 거론된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8세대를 가동한 뒤 3년이 지났는데, 아직 50인치 이상 울트라HD(UHD) 패널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BOE가 3년 뒤 단독으로 10.5세대를 정상 가동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10.5세대 라인 건설에 참여할 장비, 글래스 공급 업체가 있을 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삼성과 LG의 투자 방향
9.1인치 이상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 1위 업체인 LG디스플레이도 같은 이유로 BOE의 10.5세대 증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상돈 LG디스플레이 최고재무책임자(CFO) 전무는 4월 22일 오후 여의도 LG 트윈타워에서 열린 2015년도 1분기 실적발표 IR 현장에서 “대형 세대가 대화면 패널 생산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재료비 및 공정 속도 증가, 장비와 글래스 등 후방 생태계 환경을 고려해보면 재무적 측면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많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전무는 BOE의 뒤를 이어 10.5세대 LCD 투자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10.5세대 LCD 투자는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며 “BOE의 투자가 우리의 투자 방향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LG디스플레이는 LCD에서 경쟁하기보단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에 투자와 연구개발(R&D)을 집중할 것”이라며 “60인치 이상 대형 LCD 제품은 기존 8세대 공장에서 다중모델생산방식(Multi Model Glass, MMG) 기술로 충분히 경쟁력 있는 원가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MMG는 기판 하나에서 동일 크기의 패널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TV, 모니터, IT 패널 등을 골고루 찍어내는 기술이다. 버리는 기판 면적을 줄여 원가를 절감할 수 있으나 작업이 어렵고, 공정 시간도 많이 걸린다.
삼성디스플레이도 공식적으로는 10세대 라인에 관한 투자 계획은 없는 상태다. 이창훈 삼성디스플레이 상무는 지난 1월 29일 열린 2014년도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샤프를 제외한 업체의) 65인치 패널은 6세대 라인 혹은 8세대에서 MMG로 생산하는 게 대부분”이라며 “삼성디스플레이는 6세대 LCD 라인이 없기 때문에 8세대에서 (MMG로) 효율적 생산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까지 10세대는 구체적으로 검토된 바 없지만 차기 투자와 관련해선 시장 상황에 따라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삼성의 내부 기조는 ‘OLED 집중 투자’라는 계획이 있는 LG와는 사뭇 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룹 전반적으로 ‘현실에 기초한 이익 추구’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에 획기적인 원가절감, 수율 확대가 없는 한 OLED TV 패널 시장에 무리하게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업계에선 삼성이 60인치 이상 초대형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샤프의 10세대 공장 운영사인 사카이디스플레이프로덕트(SDP)의 지분 인수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속된 적자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샤프는 보다 근본적이면서도 강력한 구조조정을 전제로 주거래 은행으로부터 2000억엔의 자본 지원을 받기 위한 최종 협상에 돌입한 상태다.
SDP는 샤프와 대만 홍하이가 각각 37.6%씩 다이니폰프린팅, 토판프린팅이 9.54%씩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홍하이 회장인 궈타이밍은 지난 2012년 660억엔(약 6000억원)의 개인 자금을 출자해 SDP의 지분을 확보한 바 있다. 한 관계자는 “샤프 경영진은 SDP의 지분을 홍하이에 넘기는 것 보단 ‘그래도 우리가 인정하는’ 삼성에 넘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2013년 홍하이가 샤프 본사 지분 9.9%를 확보하려다 실패한 것은 당시 인수 가격 문제에도 논란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술이전, 본사 경영 참여 등 과도한 요구로 반발을 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샤프는 홍하이 대신 삼성전자와 퀄컴에 본사 지분 각각 3% 가량씩을 넘겼다.
SDP 지분 인수는 삼성 입장에서도 놓치기 아까운 카드다. 수천억 원 지분 매입으로 수 조원이 필요한 10세대 공장 증설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3년 샤프 경영진과의 만남에서 SDP 지분 인수를 먼저 제안한 바 있다. 물론, 샤프의 10세대 공장 지분을 인수하려면 현 SDP의 공동 최대주주인 대만 홍하이의 반발, 일본 정부의 승인 등 많은 산을 넘어야 한다.
10.5세대는 ‘먼 얘기’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당장 중국에서 가동되는 8세대 공장이 늘어나면서 중단기적 공급과잉 혹은 경쟁 격화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BOE는 현재 8개 LCD 생산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TV용 대형 LCD를 생산하는 8세대 라인으로는 베이징 B4, 허페이 B5가 현재 가동 중이다. 두 공장의 생산 용량은 기판 투입 기준 각각 12만장, 9만장으로 총 21만장이다. BOE는 최근 충칭 8.5세대 B8 공장도 가동을 시작했다. 이 공장의 최대 생산 용량은 9만장으로 초기 5~6만으로 첫 양산을 시작한 뒤 서서히 생산량을 늘릴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발표한 허페이 10.5세대(B9), 그리고 푸저우 신규 8세대(B10) 라인까지 가동되면 BOE의 대형 LCD 패널 생산 능력(7세대 이상)은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가 증설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근접한 수준까지 뛰어오르게 된다. 이미 BOE의 대형 LCD 생산 용량은 대만의 이노룩스와 AUO를 앞선 상태다. 8세대 생산 용량이 부족한 이노룩스의 경우 6세대 라인을 개조해 39.5인치 TV 패널을 찍어내고 있지만 BOE의 생산 용량 증가세를 따라가는 건 부족해 보인다.
BOE를 제외한 중국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들도 대형 LCD 투자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CEC-판다는 최근 난징 8세대 공장을, CSOT는 선전 T2 8세대 공장 가동에 돌입했다. CEC-판다는 청두에도 8세대 공장을 가동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저가 TV를 주로 공급했던 중국 현지 TV 업체인 HKC도 최근 일본과 대만의 기술진을 대거 영입해 충칭에 신규 8세대 LCD 패널 공장을 짓는다고 공식 밝힌 바 있다.
중국 업체들의 이처럼 공격적으로 증설을 단행하더라도 업계 전반적인 수급 상황은 균형을 맞출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TV의 평균 크기 상승, 39, 39.5, 44, 48, 49인치 등 다양한 크기의 패널 출하가 증가하면서 과거처럼 단순히 공급과잉→실적하락이라는 공식은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창환 LG디스플레이 TV마케팅 담당은 “무엇보다 TV 완성품 업체들의 패널 수요가 견조하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의 장비 내재화 움직임은 국내 중소 업체들에게 위협이 될 전망이다.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일본과 한국 업체들로부터 장비를 들여오고 있다. 따라서 이번 BOE를 비롯한 중국 패널 업체들의 투자 발표는 관련 장비 업계에 단기적으로는 호재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기술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도태될 공산이 크다. 중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14-2016 신형 디스플레이 산업 발전 행동계획’에 보면, 중국은 2016년까지 전체 디스플레이 장비군 40% 가운데 40%를 내재화할 계획이다. 국내 장비는 일본 장비와는 달리 대부분 기초적인 공정에 사용되므로 이 같은 중국 정부의 계획이 달성될 경우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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