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기획]① <프롤로그> IT산업, 지난 10년의 역사…그리고 미래
우리 IT산업에 대한 위기론에 커지고 있다. 우리 나라의 IT 대표 기업들은 주력 품목의 매출 하락과 함께 중국 등 후발 주자들의 추격에 고전하고 있고, 기존 사업을 대체할 신사업 전략 역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론‘우수한 IT인프라와 함께 축적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기만 넘기면 글로벌 IT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긍정론도 아직 적지 않다.
<디지털데일리>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앞으로 10년, 우리나라 IT산업의 미래는?’을 주제로특집을 마련했다. 앞으로 10년이 우리 IT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총 12회에 걸쳐 진행될 이번 기획특집에서 10년후 IT산업의 미래를 조망해보고, 통신, 모바일, 소프트웨어, IT서비스 등 각 분야별 선도 기업들의 미래 대응전략을 소개할 예정이다. <편집자>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국내 주요 IT기업들의 2014년도 경영실적은 실망스러웠다.‘단지 시장 조정과정일 뿐 곧 반등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평가도 있었지만‘이미 전성기가 지났다. 이제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야한다’는 주문도 적지 않다. 특히 그동안 타 업종에 비해 호황을 누려왔던 IT산업은 상대적으로 위기감이 더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해 IT업계 뿐만 아니라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심사는 ‘삼성 위기론’이었다. 가뜩이나 장기불황으로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IT기업의 실적부진은 시장 분위기를 더욱 냉각시켰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삼성그룹 관계사들이 코스피(KOSPI)에서 차지하는 시가총액은 30%에 육박한다. 삼성위기론이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IT지표의 위기, 경제 전반의 위기로 해석되는 건 이 때문이다.
지난 1월, 삼성전자의 2014년 매출액이 발표되자 시장은 적지 않은 충격에 빠졌다. 2014년 매출액이 206조2100억원으로 전년대비 32%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영업이익도 25조300억원으로 매출대비 영업이익률이 12.1%를 기록했다. 이 역시 전년대비 16.1% 하락했다. 모바일 부문의 실적악화가 직격탄이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에 연결 기준으로 매출 47조1179억원, 영업이익 5조9793억원을 기록, 전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13.1% 증가하는 등 분위기를 반전시켰지만 시장은 좀 더 두고 보자는 분위기다. 당장의 실적 개선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필요하다는 게 시장의 심리다.
시장에서 비관론이 커질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불확실성’이다. 현재 우리 IT산업을 대표하는 주요 기업들은 거의 대부분‘불확실성’이 주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 희망의 넘쳐났던 10년전, 우리 IT산업은?…역사가 주는 교훈 = 본지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전인 지난 2005년의 국내외 주요 IT 이슈들을 리뷰해봤다.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할 때 ‘과거’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충분히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온 길이지만 막상 하나 둘씩 차분하게 복기해보면 의외로 의미를 부여할만한 요소가 많은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는 연속적인 선택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숱한 오류와 시행착오도 있으며, 그 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뼈아픈 패착도 있다. 지난 10년간 우리 IT산업의 역사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지난 2005년, 우리 IT산업은 활력이 넘쳤다. 지금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넘쳐났다. 물론 몇 년뒤 엄청난 반전이 이뤄지지만 당시에는 일취월장(日就月將)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2005년 한국 IT업계는 기술적 도약이 컸던 해로 기록됐다.
특히 이 해에는 세계 휴대이동방송 표준을 원용해 한국 고유의 지상파 휴대방송 서비스를 개발하고 상용화한데 이어 모바일 초고속 인터넷으로 불리는 휴대인터넷 서비스를 우리의 자체 기술로 완성해냈다. 지상파DMB 상용화와 와이브로(Wibro)의 개발은 세계에 한국의 IT 기술력을 과시한 쾌거중의 쾌거로 기록됐다.
또한 2005년에는 우리나라 대표 IT수출 품목으로 자리잡은 휴대폰 분야가 약진했다. 삼성전자는 연간 휴대폰 생산량 1억대를 돌파하면서 샴페인을 힘차게 터뜨렸으며, 세계 휴대폰 산업의 강국의 자리를 굳혔다.
이로부터 불과 2년 뒤인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해 스마트폰 시장을 선점하고, 노키아의 몰락을 재촉하면서 세계 휴대폰시장을 격랑에 빠뜨리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휴대폰 시장에선 모토로라의 ‘레이저(RAZR)폰’이 초슬림폰 열풍을 주도했다. 모토로라에 이어 삼성전자와 LG전자, 큐리텔, VK 등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도 앞다퉈 ‘1mm 전쟁’을 벌였다.
또한 슬림폰 열풍과 함께 ‘블랙’ 디자인이 부각됐다. 삼성전자가 출시한 블루블랙폰II 모델은 출시 두 달만에 200만대가 판매되는 놀라운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은‘블루블랙폰’을 앞세워 ‘연간 휴대폰판매 1억대 시대’로 진입했으며 ‘월드퍼스트-월드베스트' 전략이 착착 맞아떨어지면서 거침없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또한 2005년은 우리 방송 역사에 상당히 의미있는 사건으로 기록된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시대가 개막된 해다. 이동중에도 TV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서비스 플랫폼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커졌고, 수도권 지하철 전 구간에 중계기를 앞다퉈 설치했다. 당시 ETRI는 2010년이면 지상파 DMB가 이용자 수 1000만, 시장규모 1조3633억원의 거대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장밋빛 예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불과 몇 년만에
이같은 장밋빛 전망은 거품으로 변하고 만다. DMB서비스가 수익모델 확장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3~4년만에 위성, 지상파DMB 모두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한채 구조조정의 운명을 피할 수 없게된다.
2005년에는 제주, 서울, 부산 등 국내에서 잇달아 시험 서비스에 성공한 와이브로 서비스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8월 시속 60~80km로 달리는 차량에서 초고속 인터넷과 멀티미디어 스트리밍, VoIP 화상전화를 하나의 단말기에서 동시에 구현했던 와이브로 역시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그러나 와이브로 역시 불과 몇 년후 LTE와의 기술경쟁에서 밀려 완전히 잊혀진 단어가 된다.
와이브로는 글로벌 기술표준 동향에 대한 정보력의 부재, 원활할 소통없이 성과주주의 집착한 관 주도의 IT정책이 얼마나 큰 리스크를 갖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때마다 IT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되고 정책을 남발하는 사례는 이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편 당시에도 국내 통신 및 통신서비스 시장 경쟁은 치열했다. 초고속 인터넷 시장의 구조개편이 본격화되면서 당시 법정관리 중이던 두루넷이 하나로텔레콤에 매각됐으며 파워콤이 초고속 인터넷 소매업에 진출, 시장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또한 SK텔레콤이 국내·외에서 독자적인 단말기 사업을 펼치기가 여의치 않자 자회사인 SK텔레텍을 팬택계열에 전격 매각했다. SK텔레텍을 인수한 이 해에 팬택의 역사는 새롭게 쓰여지는 듯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법정관리중인 팬택의 상황을 반추해보면, 역사의 반전은 흥미로움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2005년 국내 엔터프라이즈솔루션 시장에선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업체들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고 국산 소프트웨어 업체들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시기로 기록됐다.
앞서 1년 전인 지난 2004년, 오라클은 국내 기업 고객들에게 적용했던 유지보수료를 기존 8%에서 라이선스 기준으로 전격적으로 22%로 인상했다. 금융권을 비롯해 기업 사용자들은 급증한 유지보수료 부담 때문에 강력하게 반발했으며,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진짜 패닉은 이를 대체할 국산 소프트웨어 기술이 없었다는 점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오라클의 22% 유지보수율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됐으나 국산 소프트웨어업체들은 여전히 이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다. 공정위가 최근에야 오라클 유지보수료율을 불공정행위로 판정했지만 이를 오라클이 순수히 인정할런지는 의문이다.
2005년, 공정위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메신저, 미디어플레이어 끼워팔기에 대해 33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함으로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공정위는 미디어플레이어와 메신저, 미디어서버에 대해선 앞으로 10년 동안 분리 판매하거나 끼워팔 경우엔 경쟁제품과 동반 탑재해 판매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국산 소프트웨어업체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위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몇 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대기업의 공공IT산업 참여를 제한하는‘SW산업발전진흥법’이 발효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사실상의 파트너 관계에 있는 업체를 앞세워 우회로를 통해 여전히 공공IT시장에 참여하고 있고, 국산 소프트웨어업체들의 어려움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입으로만 상생을 외칠 뿐‘SW 제값주기’에 인색한 시장의 후진성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기업이 어려운 시장상황에도 불구하고 양호한 경영실적을 달성한 비결이 협력 업체의 희생을 담보한 결과라면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
◆혁신의 시대,‘스마트폰’의 탄생, 그리고 혼돈 = 지난 10년의 IT산업 역사를 돌이켜보면 가장 혁신적인 사건은 역시 스마트폰의 탄생으로 요약된다.
혁신과 동의어가 된 애플은 2005년까지 특별히 주목할 만한 회사는 아니었다. 앞서 2001년 MP3 플레이어 아이팟을 내놓았고 2003년 온라인 음악 서비스인 ‘아이튠스’를 발표하는 등 혁신성으로 주목을 끌었지만 애플이 10년후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보는 세계 IT기업의 공룡이 될 것이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은 선보이면서 세계는‘스마트폰’시대로 넘어갔으며, 세계 IT산업은 스마트폰 출시 이후와 이전으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다..
당시 휴대폰 세계 1위 노키아는 드라마틱하게 몰락했고, 빠른 속도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가던 삼성전자는 6개월여만에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놀라운 혁신성과 대응력을 과시했지만 이 때부터 세계 곳곳에서 애플과의 지리한 특허 소송전을 치러야했다.
휴대폰은 이제 모바일 컴퓨터가 됐고, 휴대폰의 핵심 경쟁력은 OS(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에서 결정되는 시대로 빠르게 전화됐다. 당연히 시장의 주도권은 소프트웨어에서 갈렸으며 불과 3~4년만에 글로벌 모바일 산업 생태계가 재편됐다.
스마트폰 발명의 후폭풍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2015년 현재, 전문가들은‘IoT(사물인터넷)에서 1차적인 후폭풍은 멈출 것’이란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넓게보면 IoT도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 수년간 IT시장이 침체됐다고는 하지만 IoT, 빅데이터, 핀테크, 웨어러블 컴퓨팅, 3D 프린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이슈는 끊임 없이 떠오르고 있다. 앞으로의 10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는 우리가 어떻게 현재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과감하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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