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심재석기자] 미성년자 강간 후 살인을 일삼은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를 뒤쫓고 있는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용의자의 카카오톡 대화를 확보하고, 도주를 돕는 조력자와의 대화에서 그의 소재지를 찾아냈다고 하자.
이 경우 카카오톡을 서비스 하는 다음카카오는 고객(살인범)의 프라이버시를 지키지 않은 부도덕한 회사일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수사기관이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서 전화통화나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대화 등을 감청하는 것이 사회문제가 된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에는 한 정당의 부대표가 집시법 위반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지인들과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검찰에 전달됐다. 물론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두고 다음카카오가 정부의 사이버 검열에 동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특히 최근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 망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하지만 비난의 화살을 다음카카오가 맞고 있는 것은 다소 이상하다. 다음카카오는 대한민국에 설립된 기업으로, 대한민국의 법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이번 사건에서 다음카카오는 대한민국 검찰이 대한민국 사법부로부터 발부받은 합법적인 영장에 따라 정보를 제공했다.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법을 따랐을 뿐이다.
다음카카오가 영장에 명시되지 않은 대화를 넘겼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현재까지 그런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아마 수사대상이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이었다면 다음카카오가 비난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수사대상이 정당 관계자인데다가 집시법이라는 정치적 성격을 띤 사건이기 때문에 논란이 커졌다.
하지만 압수수색영장 대상이 중대범죄자인지 가벼운 범죄자인지, 정치적인 사건인지 판단하는 것은 다음카카오의 역할이 아니다. 다음카카오는 사법기관도 수사기관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인 다음카카오는 한국의 법에 따를 의무가 있을 뿐이다.
집시법 위반 수사대상자의 카카오톡 내용을 검찰이 보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비난의 대상은 검찰이나 법원이 돼야 한다. 기업이 자체 판단으로 영장집행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 다음카카오는 법을 지켰다. 법을 지켰다는 이유로 비판을 한다면, 다음카카오가 초법권적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된다.
다음카카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카카오톡 대화내용 저장 기간을 2~3일로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정부가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와도 2~3일 이전의 대화는 볼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휴대폰이 고장나거나 해외출장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못 본 사람들은 4일 이전에 온 카카오톡 메시지를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줄이더라도 논란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번 사태에서 다음카카오는 최대 피해자다. 법을 지켰을 뿐인데 비난도 받고 상당수의 사용자가 경쟁사인 텔레그램으로 떠났다.
<심재석 기자>sj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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