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최근 삼성 사장단 인사를 앞두고 전망을 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삼성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좀 격하게 표현하면 삼성전자가 곧 삼성그룹이란 생각을 하면된다”는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그룹 매출의 70%에 육박하는 삼성전자가 튼튼하면 삼성그룹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삼성전자 핵심 인사들만 주시하면 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2014년 정기 사장단 인사가 발표된 2일,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의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차분했다.
부회장 승진자가 나오지 않는 등 인사폭이 예상외로 크지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역시‘성과주의’를 제외하면 크게 의미를 부여할만한 ‘의외의 선택’또는 ‘과감한 한 수’로 읽혀질만한 내용이 없었기때문이다. 그동안 다양한 각도에서 하마평을 쏟아냈던 언론들도 머쓱한 표정이다.
부회장 승진이 이뤄지지않은 배경에 대해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은 “삼성전자외에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회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고 담백하게 설명했다.
결국 한발 떨어져 생각해보면, 이번 삼성의 사장단 인사는 ‘현재 그룹내에서 삼성전자외에는 믿을만한 카드가 없다’는 위기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사장 승진 대상자 6명중 5명이 삼성전자에서 발탁됐고, 또 전동수 반도체부문 사장이 삼성SDS 대표로 중용되는 등 삼성전자의 출신 인력들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삼성측은 ‘삼성전자의 성공 DNA를 계열사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같은 ‘삼성식 성과주의’ 전략이 현재의 삼성그룹이 지향해야 할 가치인지는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성과주의가 적절하게 조직을 긴장시키는 요소로 작용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자칫 과열되면 그룹 전체를 움직이는 획일주의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과감한 도전정신과 소프트 드라이븐을 강조해온 그동안의 삼성 전략에도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더구나 삼성은 이건희 회장 시대를 이어 안정적으로 3세 경영시대로 넘어가야할 시점이다. 지주회사 방식이든 아니면 기존의 순환출자 방식의 변형이든 어떤 식으로든 발전적인 그룹 분할이 당면 과제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는 지난 9월 삼성전자의 글로벌 브랜드 가치를 396억달러(약 42조6000억원)로 추정했는데 이는 지난해의 329억달러보다는 20.4%나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애플의 983억달러에 비하면 여전히 격차는 크다.
경쟁사인 애플이 아이폰5와 같은 참혹한 결과물을 내긴했지만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보다는 애플쪽에 혁신의 리더십을 높게 보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경기침체로 시장환경이 녹록치않은 상황에서 성과를 낸다는 것 그 자체가 혁신이긴하지만 삼성이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할때 향후 10년, 20년를 내다볼 수 있는 과감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앞서 지난 6월,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일컬어지는 신경영선언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각오를 다진바 있다. 하지만 그 각오가 무색할 만큼 올해 그룹내 일부 계열사들의 실적은 참담하다.
국내 건설업계 전반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우 올해 3분기에만 746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위기상황이다. 이에 그룹측에서는 최근 긴급 경영진단을 실시하고 삼성전자 인력을 투입하는 등 진화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상황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모습들이 여타 계열사들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준다면 다행이지만‘삼성전자 의존형’분위기로 흘러간다면 그룹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인사에서 나타난 성과주의는 곧 이어질 임원급 인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내년 그룹내 여타 계열사들에겐 어떤 형태로든 삼성전자식 혁신이 휘물아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시장이 보고싶어하는 것은 성과주의를 넘어선 삼성의 과감한 혁신 의지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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