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글로벌 게임산업 패러다임을 주도하기 위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유망한 게임사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서 나아가, 이제는 각지 게임 전시회에 차례로 모습을 비추며 영향력 확대에 나서는 모양새다.
16일 지스타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오는 11월14일부터 17일까지 부산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 2024’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도시 프로젝트인 ‘키디야(Qiddiya)’가 참가해 대형 부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몰입형 게임과 더불어 1인칭 슈팅 게임을 미리 엿볼 수 있을 전망이다.
키디야는 사우디 정부의 경제 다각화 프로젝트 ‘비전2030’ 중 관광 분야의 중추로 꼽히는 프로젝트다. 수도 리야드에서 서남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사막지대에 엔터테인먼트 전 분야를 아우르는 복합 문화 공간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업 규모는 약 700억달러(약 93조원)로, 지난 3월에는 세계최초의 ‘드래곤볼 테마파크’ 설립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키디야는 앞서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도쿄게임쇼’에도 대형 부스를 내고 이스포츠 지구의 모습과 함께 사이버펑크 존인 ‘우바르’를 공개했다. 우바르는 세계 최초로 사이버펑크 라이프 스타일을 제공하는 도시로, 차세대 게이밍 경험인 IRL(현실에서 경험하는 가상현실)을 구현할 계획이다. 당시 우바르 부스는 네온 조명과 테크노 음악, DJ 부스 등이 어우러진 미래지향적 분위기로 꾸며져 이목을 끌었다.
지난 8월 세계 최대 게임쇼로 통하는 ‘게임스컴’에는 사우디 국영 게임사 새비 게임즈 그룹이 BTB(기업 대상) 부스를 내고 자회사가 보유한 게임과 이스포츠 기업을 홍보하기도 했다. 부스 규모만 놓고 보면 글로벌 대형 게임사인 중국 텐센트에도 밀리지 않아 화제를 모았다.
이외에도 사우디의 미래 신도시 건립 계획 중 하나인 네옴시티도 게임스컴에 따로 부스를 내고, 이들이 개발을 지원하고 있는 다양한 자국 인디 게임을 소개했다.
업계는 사우디의 글로벌 게임쇼 참가가 게임산업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사우디 행보의 연장선이라고 보고 있다. 일반 게이머들에게 게임을 소개하는 단순한 전시 참여를 넘어, 각지 개발사 수장 및 관계자들과 다양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업계 내부에서도 지스타에 참가하는 키디야에 대한 관심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이번엔 어떤 내용으로 부스를 내는지 혹시 알고 있느냐”라고 물어오기도 했다.
사우디는 지난 몇 년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지휘 아래, 국부펀드(PIF)를 중심으로 석유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벗어난 다양한 산업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특히 이스포츠와 게임 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 산업을 통해 향후 약 3만9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게 사우디 정부 계획이다.
이를 위한 포석 다지기도 순차적으로 진행 중이다. 자국 개발사 육성에 집중하는 한편, 글로벌 개발사 지분을 공격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현재 PIF가 보유한 글로벌 게임사 지분만 엔씨소프트와 넥슨, 닌텐도, 액티비전블리자드, 일렉트로닉 아츠(EA), 캡콤 등 다수다.
작년에는 미국 모바일 게임사 스코플리를 50억 달러(약 6조8270억원)에 인수했다. PIF가 지금껏 해외 개발사에 투자한 금액만 약 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격적인 투자를 앞세워 세계 이스포츠 시장 주도권도 조금씩 가져오고 있다. 지난 여름엔 수도 리야드에서 약 6000만 달러의 총상금을 내걸고 ‘e스포츠 월드컵’을 개최했다. 이를 계기로 내년엔 리야드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와 함께 ‘e스포츠 올림픽’을 열기로 했다.
종교로 인한 폐쇄성과 미비한 통신 인프라 등으로 인해 과거 ‘험지’로 통했던 중동 시장은, 현재 사우디의 투자 속에 성장 기대치가 큰 신흥 시장으로 떠올랐다.
시장 조사 업체 니코파트너스에 따르면 중동 게임 시장 규모는 2022년 18억달러(2조4539억원)에서 2026년 28억달러(3조8172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 잠재력이 뛰어난 만큼, 국내 게임업계 내부에서도 이를 전략적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동은 여전히 불투명성이 짙은 지역이지만, 잠재력이 높은 만큼 한국 게임사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중동 내에서 한국 게임과 이스포츠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은 긍정적”이라며 “지스타를 통해 네트워킹을 전개할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국내 중소 게임사들에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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