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대전환의 시대, 쏟아지는 이슈와 키워드 중 '꼭 알아야 할 것'과 '알아두면 좋은' 것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real! AI Pro]는 이 고민을 현업 전문가들이 직접 선정한 주제와 인사이트를 담아 명쾌하게 정리해드립니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요즘 인공지능(AI)은 단순히 정보만 제공하지 않습니다. 보고서 작성은 기본이요, 소설을 쓰고 이미지와 영상도 뚝딱 만듭니다. '생성형 AI'란 이름과 함께 인간 고유의 '창작' 영역까지 발을 디딘 거죠. 또한 요즘은 한발 나아가 '재미'나 '감성'처럼 특별한 공식이나 정답이 없고, 각 사회문화를 이해해야 가능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제작까지 AI로 해보려는 시도 또한 확대되고 있는데요. 독자분들은 그 한계가 과연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사실 생성형 AI보다 앞서 등장한 '딥러닝'은 사람은 도저히 찾지 못한 데이터 속 특징과 패턴을 찾는 데 발군의 성능을 보인 바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AI가 언젠가 '재미의 공식'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물론 이 상상은 아직 비약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AI 단독이 아닌, 인간과의 협업 관점에서 생각하면 보다 현실적인 기대감을 가져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인데요.
이는 마치 앞서 인터넷이 모두가 공유하는 정보의 바다를 실현했고, 유튜브는 모두의 방송국을, 틱톡은 '챌린지'라는 독특한 도구로 콘텐츠 기획의 허들을 획기적으로 낮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AI는 콘텐츠 제작의 마지막 허들인 전문 제작도구를 다루는 '스킬(Skill)'의 장벽마저 무너뜨리고 있다는 관점입니다.
또한 궁극적으로 이제 더 많은 사람이 아이디어만 갖고 콘텐츠 프로슈머(prosumer,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하는 사람)가 되는 시대도 멀지 않았다는 예측으로 이어지는데요. 본 기사에선 이처럼 흥미로운 예측에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실제 사례를 만들고 있는 김종윤 스캐터랩 대표의 인사이트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김 대표는 2011년 8월 스캐터랩을 창업, 고도의 딥러닝 기술을 바탕으로 인간에게 AI와의 풍부한 상호작용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들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감성 대화에 특화된 소형언어모델(SLM) '핑퐁-1(Pingpong-1)'을 자체 개발한 바 있으며, 이루다, 제타(zeta) 등 대화형 AI 서비스들을 필두로 감성 AI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인물로 평가됩니다.
'감정 패턴'도 찾아내는 요즘 AI, 시사점은?
안녕하세요, 김종윤입니다. 요즘 생성형 AI의 한계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AI의 기술적 특징을 바탕으로 해석하면 비교적 명확한 부분들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잠깐만 딥러닝 얘기를 해볼까요? 현대적 AI의 기초이자 바탕이 된 딥러닝 기반 AI는 한마디로 '원하는 결과물과 적절한 데이터만 입력하면 스스로 패턴을 찾아내는 AI'입니다. 이전 시대 AI의 한계는 특정 행동 구현을 위해 사람이 A부터 Z까지 다 가르쳐야 했다는 점인데요. 이 부분에서 스스로 특징을 찾고 학습도 가능한 AI의 진보는 굉장히 큰 변화였죠. 지금처럼 AI가 콘텐츠를 생성하고 창의력을 갖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놀라운 건, 특징을 찾아내는 능력이 '감정'처럼 정형화하기 어려운 영역에서도 가능했던 점입니다. 예컨대 '~~ 상황에서 여자친구가 뭐라고 답할까?'는 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대상의 이면 속 감정과 환경을 이해해야 그나마 합리적인 답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오늘날의 AI는 충분한 데이터와 목표만 주어지면 꽤 그럴듯한 수준의 감정 분석과 대응도 충분히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전제를 두고 다음 이야기들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전문가와 일반인의 벽을 허문 LLM, 그 결과는?
실제로 스캐터랩이 대화형 감성 AI의 잠재력을 확인한 챗봇 '이루다', 그리고 올해 개발한 AI 채팅 플랫폼 '제타(zeta)'는 개발 및 운영 과정에서 AI가 인간과 협력하면 감성과 재미 요소를 활용해 충분히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AI와 협력하는 인간'에 지금 기사를 읽는 여러분도 포함된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창작과 관련된 어떤 전문성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AI에게 원하는 상황을 입력(prompt, 프롬프트)할 방법만 안다면 말이죠. 그런데 그 방법이란, 대개 카톡에 메시지를 입력하는 수준이라 특별히 배울 필요가 없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특히 LLM(거대언어모델) 기반 AI를 연구하며 저희가 가장 놀란 부분이 프롬프팅의 강력한 힘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루다 시절에는 하나의 성격적 특색을 지닌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언어모델을 세세하게 파인튜닝(Fine tuning, 미세조정)'하는 작업이 필수였는데요. 이는 AI 모델을 기술적으로 깊이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입니다.
반면 이제는 누구나 쓰는 일상 언어로 원하는 캐릭터의 특징을 정해주면 단기간에 꽤 수준급 캐릭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건 앞서 언급했듯 전문가가 꼭 필요하진 않고요. (물론 수준 차이는 있습니다만) 즉, 이 변화를 적절히 이용한다면? 일반 사용자가 직접 원하는 캐릭터를 프롬프팅해 제작하는 것, 그 캐릭터에게 직접 다양한 상황을 부여하며 생동감 넘치는 대화를 경험하도록 만든 서비스가 바로 제타였습니다.
내 상상을 거부하는 AI라니? 그런데 재밌다!
특히 자신의 성격과 대화의 맥락, 사용자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LLM 기반 AI의 특징을 적극 활용해 제타에 부여한 특수 기능이 바로 '지시문'이었는데요. 아래 이미지는 사용자가 '일진녀 수현'이란 캐릭터와 대화하는 장면으로, 수현이 사용자에게 자신의 고민을 들은 대가로 '바나나 우유'를 사 오라며 강요하는 장면입니다. 사용자는 이 요구를 처음에는 대화(말)로 거절하다 통하지 않자, 지시문을 통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없이 자리를 뜨려고 한다'는 상황을 주입했습니다.
그런데 AI인 수현이 이 말에 똑같이 행동과 대화가 가미된 형태로 반응합니다. 심지어 사용자의 계획을 방해(!)합니다. 사용자 캐릭터의 앞을 가로막고, 이후엔 손을 잡으며 도망치지 못하게 한다고 하죠. 일단 자리를 떠서 귀찮은 상황을 종료하려고 했던 사용자의 의도가 완전히 박살(?)난 것인데요.
결국 시나리오 속 사용자는 바나나 우유를 사주든지 다른 묘수를 써서 도망가든지 여러 상황을 다시 고민해야 할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 가운데 사용자는 처음 의도와 달리 더 돌발적이고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에 놓일 가능성도 높아지게 됐지요.
AI 대화에서 이런 전개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오늘날 AI는 이제 주어진 상황과 맥락을 더 정교하게 이해하며, 역으로 새로운 상황을 창조하여 사용자에게 제시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AI와 상호작용, 망해도 콘텐츠가 된다
관건은 앞으로 이런 개념을 도입한 AI 콘텐츠 서비스가 제타 외에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가운데 주목할 AI 콘텐츠 산업의 변화는 이처럼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AI의 탄생'입니다.
실제로 제타에 대한 사용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입니다. 대화형 챗봇이었던 이루다는 단순 메신저 느낌이 강했는데, 스토리텔링 콘텐츠 성격이 강해진 제타는 사용자들의 평균 사용시간이 많이 증가했습니다. 유저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AI와 함께 이야기를 만드는 경험이 꽤 흥미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이렇게 만든 콘텐츠는 완성도가 낮아도 또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소비될 수 있는 가능성도 확인됐습니다. 제타는 강력한 플랫폼이지만, 앞선 사례의 특징을 보면 사실 사용자가 원하는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스캐터랩은 이를 바탕으로 '망한 제타 챌린지'라는 것도 시도해봤는데요.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 AI와의 대화나 웃긴 상황을 나누는 챌린지가 엑스(X, 구 트위터)에서 바이럴을 타 조회수가 1200만회에 이르기도 했죠. 정말 온갖 상황과 참신한 캐릭터가 챌린지에 쏟아져 나오더군요. 이를 하나의 '짤'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쉬워질 '상상이 현실로'
우리가 기대하는 다음 스텝은 AI 콘텐츠 산업의 궁극적인 변화입니다. 사실 일각에서 기대하듯 생성형 AI가 진짜 유명 작가나 PD처럼 재미있고 참신한 콘텐츠를 A부터 Z까지 만들 수 있을 것으론 기대하지 않습니다. 콘텐츠의 특성이란, 아무리 유행해도 몇 번 보면 그새 재미가 없어지는 것처럼 늘 트렌드와 변화에 민감해야 합니다. 콘텐츠 흥행을 위한 변수와 '운'의 요소도 강하고요.
이는 디지털 세계에 갇힌 AI가 아니라 사회를 직접 경험하고 살아가는 인간이 계속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이를 AI가 아무리 훈련한들 틀에 박힌 결과가 나올 확률이 더 높겠죠. 지금도 챗GPT에게 광고용 카피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의외로 고리타분한 답만 내놓지 않았나요?
하지만 분명한 건 이로써 다양한 창작의 벽이 더욱 낮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창작 스킬이 부족해 상상을 머리 속에만 가두어 두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콘텐츠 크리에이팅 판으로 뛰어들 수 있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는 정말 큰 변화입니다. 2000년대 인터넷의 확산으로 일반인도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는 웹 2.0 시대가 열렸고, 2010년대 유튜브는 공중파가 독점했던 방송 미디어의 권력을 일반인들에게 확대시켰습니다. 또한 2020년대에는 틱톡이나 캡컷처럼 누구나 템플릿처럼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과 툴이 확산됐고, 이젠 생성형 AI가 그 외 모든 아이디어를 손쉽게 결과물로 구현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솔직히 아이디어는 좋은데 그동안 구현할 플랫폼이나 제작 툴을 다루는 기술이 없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콘텐츠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앞으로는 AI가 그 벽을 빠르게 허물 것이기에 세상에 더 재미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굳이 AI가 사람을 대신해 웃기는 콘텐츠를 잘 만들 거란 기대를 거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AI 콘텐츠의 본질은 '업의 침해' 아닌 재미와 감동
물론 AI의 등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크리에이터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 스타일을 쉽게 카피하거나, 노력 없이 말 몇 마디로 만들어지는 콘텐츠를 인정하지 않는 시각이죠. 일례로 최근 해외에선 '인간지능이 창조했음'이란 역설적 태그를 다는 운동이 꽤 흥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쉽게 바라볼 여지도 있다고 보는데요. 사실 캔버스에 물감을 써야 예술이지, '일러스트레이터'는 예술이 아니라고 평가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컴퓨터 그래픽(CG)조차 무조건 부정되는 시대가 아니죠. 기술과 예술의 융합은 어느 시대에나 있던 일입니다. 결국은 AI로 합법적인 선에서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면 그것이 재미와 공감,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본질이지 나머지는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 아닐까 싶습니다.
따라서 저는 AI와 콘텐츠 제작에 관련된 논의가 너무 추상적으로 전개되지 않길 희망합니다. 과거 인터넷과 모바일의 등장, 그에 따른 큰 변혁이나 지금의 AI의 등장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더 나아지고자 하는 인간사회 진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죠.
우리 사회는 지금도 인터넷을 충분히 통제 가능한 선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불이익보단 여전히 이익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AI도 더 이상 SF(공상과학)의 시점이 아닌, 눈에 보이는 서비스나 제품을 바라보며 고민하길 바라는 마음인데요. AI가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면 어떤가요? 그 가운데서도 AI가 잘하는 것과 여전히 인간이 잘하는 것은 분명히 나뉠 것입니다. 그만큼 두려움만 앞세우기보단 먼저 호기심을 꽃피우고, 실질적 문제가 생길 때 그에 따라 대응하는 것이 무작정 배척하는 것보다 AI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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