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간단한 명령어(프롬포트)만 넣으면 원하는 이미지 등 개발 리소스를 제공하는 생성형 인공지능(AI) 활용이 게임업계에서도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게임개발자콘퍼런스(GDC)’가 개발자 약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가량인 49%가 생성형 AI 도구를 개발에 사용하거나 활용하는 팀에서 일한다고 답했다.
다만 과정에서 진통도 예상된다. 특히 학습한 콘텐츠를 토대로 결과물을 내놓는 생성 AI 특성상 지적재산권(IP) 침해 등 업계 내 저작권 시비가 심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에서는 엔씨소프트가 자사 ‘리니지’ IP를 침해했다며 지난해부터 게임사 상대로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는데, AI 활용이 일상화되면 이러한 분쟁 빈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학술 전문지 IEEE 스펙트럼 보도에 따르면 AI 연구원 게리 마커스와 디지털 아티스트 리드 섀튼이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와 ‘댈-E 3’를 테스트한 결과, 간접적인 프롬포트만 주어지면 콘텐츠 이미지를 원본과 거의 유사하게 구현해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노란 피부를 가진 90년대 인기 애니메이션 만화라는 프롬포트를 입력하면 ‘심슨 가족’ 캐릭터를 인식한 이미지가 도출되는 식이다. 이들에 따르면 ‘마블’ 시리즈 등 유명 영화 속 장면도 몇 가지 프롬포트만 있다면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다.
연구팀은 “AI 모델이 간단한 방식으로 상표가 등록된 캐릭터의 복제품에 가까운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서 “일부 생성 AI 시스템이 직접 요청하지 않은 경우에도 표절 출력물을 생성해 잠재적으로 사용자를 저작권 침해 소송에 노출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개발사는 출처를 정확하게 보고하거나 라이선스를 받은 데이터로 교육을 제한해야 한다. 저작권 위반을 자동으로 필터링하는 기술 솔루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관련해 이미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선 원작자와 AI 사업자간 저작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12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자사가 작성한 기사가 챗GPT 훈련에 무단으로 쓰였다는 주장이다. 같은 해 게티이미지는 생성 AI 기업 스테빌리티AI가 자사 이미지를 무단 사용했다고 고소했다.
올해도 작가 브라이언 킨, 압디 나제미안 등이 자신들 작품이 AI를 훈련하는 데 사용된 19만6640권의 책 데이터 세트 일부에 포함됐다고 주장하며 엔비디아를 고소하기도 했다.
게임업계는 아직 관련 소송 움직임은 없지만, 일각에서 분쟁 조짐은 엿보인다. 일본 개발사 포켓페어가 1월 출시해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게임 ‘팰월드’를 둘러싼 논란이다.
팰월드는 게임 내 등장하는 몬스터 ‘팰’의 외형이 글로벌 IP ‘포켓몬스터’와 매우 흡사해 화제를 모았다. 업계에선 과거 AI 활용에 호의적이었던 포켓페어 대표 발언 등 여러 정황을 거론하면서, 포켓몬 에셋을 활용한 AI로 수많은 팰을 만들어 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포켓몬 IP를 관리하는 포켓컴퍼니는 “IP 침해 소지가 있는지 조사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직 AI 저작권 침해에 대한 기준과 판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업계와 전문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저작권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원본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AI 개발사에 잠재적 저작권 이용 비용을 부과한다면 AI 산업 성장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원본 콘텐츠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AI 업체도 있는 한편, 자사 모델로 저작권 침해 문제가 생길 경우 이를 책임지겠다고 공표한 업체도 있다.
국내 게임사는 현재 자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거나, 자사 IP를 학습한 AI 도구 등을 이용해 저작권 논란에 대비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AI 윤리 프레임워크를 만들고 저작권 침해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300여명의 관련 인력 중 상당수를 학습 데이터를 고르는 데 투입하고, 학습 이미지 또한 리니지와 ‘아이온’ 등 자사가 보유한 데이터를 기반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AI 저작권 관련 판결 내용과 생성 AI 사용 가이드를 개발자에 수시로 업데이트해 제공하고, 자체 리소스를 개발에 활용 중이다. 넥슨 또한 AI 윤리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 각국 또한 AI 저작권 침해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 마련에 몰두 중이다. 미국 저작권청은 AI 창작물 등록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유럽연합은 AI 모델의 학습 과정에 사용된 저작권 자료를 모두 공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선 AI 시대 저작권 쟁점에 대응하고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주도로 지난해부터 ‘인공지능-저작권 제도개선 워킹그룹’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말에는 ‘생성형 인공지능-저작권 안내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문체부는 저작권위원회와 함께 워킹그룹 외에도 ‘인공지능-저작권 법·제도 개선 방안 연구’를 병행해 올 연말 향후 정책 방향을 발표할 예정이다.
AI 학습 관련 적절한 보상 등 적법한 이용 권한 확보 마련 방안, 저작물 거래 활성화 방안, AI 산출물에 대한 보호 여부 및 AI 산출물 표시 의무화 여부 등에 대해 창작자 권익과 AI 산업 발전 양 측면을 고려해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동양대학교 김정태 게임학부 교수는 “눈에 띄지 않지만 생성형 AI로 뿜어낸 그 결과물이 게임 속에 버젓이 콘텐츠에 포함이 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은 게임업계 뿐만 아니라 여타 업계에서도 함께 하는 고민”이라면서 “게임사들이 문제점을 같이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나아가 게임협회 차원에서의 연구나 사회적 교육도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게임 관련 협회가 선제적으로 AI 윤리 문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자체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AI 시대에 맞춰 교육 일선에서의 IP 권리 개념도 강화돼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는 현장 맞춤형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건전한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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