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왕진화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지난달 초까지 강력히 입법 드라이브를 걸었던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가칭, 이하 플랫폼법)’이 다시 등장했다. 공정위가 플랫폼법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추가로 의견을 수렴하고, 법안 내용이 마련되면 조속히 공개하겠다고 한 지 약 1개월 만이다.
10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한기정 공정위원장이 지난 7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을 방문해 올해 공정위 주요 계획 중 하나로 밝힌 ‘연내 플랫폼법 입법 추진’을 놓고 플랫폼 업계를 비롯한 국내외 빅테크 기업들이 다시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공정위가 입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플랫폼법은 소수 핵심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지정하고 있다. 이들 사업자에 자사 우대와 멀티호밍 제한(자사 플랫폼 이용자에 경쟁 플랫폼 이용을 금지하는 행위) 등 플랫폼 시장 반칙 행위들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사전 규제 성격을 짙게 띤다.
이 법안이 적용될 사업자로는 한국의 네이버, 카카오 및 미국의 구글(유튜브), 애플, 아마존, 메타 등이 유력하게 점쳐져 왔다. 구체적인 지정 기준이나 대상 기업 등 법안 주요 내용은 현재까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공정위, 왜 다시 ‘플랫폼법’ 입법 카드 꺼내들었나=업계에 따르면 당초 공정위는 신속한 법 시행을 위해, 플랫폼법 제정을 청부 입법 형식으로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당시 공정위 측은 여당의 정무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들을 해당 용건으로 만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공정위는 각 의원들에게도 플랫폼법 관련 내용을 끝까지 공유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위는 플랫폼법을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며 제정에 뜻을 굳혔다. 그러나 국내외 플랫폼 업계는 물론 학계와 전문가, 스타트업까지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벤처기업 대표들도 너나할 것 없이 공정위의 이러한 시도를 꾸짖었고, 컨슈머워치 등도 소비자 편익이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유는 공정위의 불통 및 과도한 사전 규제 우려 등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벤처기업협회는 “많은 중소상공인들이 오프라인 채널을 통한 판로확대가 어려운 상황인 반면, 온라인 플랫폼에 의존한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규제 도입으로 플랫폼 산업이 위축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소상공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상공회의소와 국회입법조사처까지 잇달아 우려의 목소리를 냄에 따라, 공정위는 추진 발표 3개월 만인 지난달 7일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며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공정위의 이같은 숨고르기에도, 소상공인연합회와 또 다른 일부 소비자단체는 플랫폼법이 빠르게 입법돼야 한다며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업계는 지난 7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이 디지털시장법(DMA)을 시행한 시점이나 소상공인연합회 기자회견 등이 시기적으로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공정위가 플랫폼법 재추진 카드를 다시 꺼낼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보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위의 플랫폼법이 무기한 연기되며 상대적 박탈감과 감당하기 힘든 부담으로 소상공인의 경영 의욕이 나날이 저하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는 플랫폼법을 신속하게 제정하고, 규제 대상에 소상공인 사업장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쿠팡, 배민 등 업종별 독과점 플랫폼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암참 만남, 그 이후…CCIA “사전 지정 방식은 차별적”=지난 7일, 한 위원장은 암참 회원사를 대상으로 열린 오찬간담회(강연)에서 연내 플랫폼법 제정 추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한 위원장은 “플랫폼 독과점의 폐해를 보다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국내외 사업자와의 적극 소통으로 합리적인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해당 강연은 그간 암참과 공정위의 연례 행사로 진행돼 왔지만, 이날의 온도 자체는 여느 때와 달랐다. 플랫폼법 키워드 등장만으로 한층 차가운 긴장감이 웃돌았다.
특히 이날 오찬간담회에는 플랫폼법 규율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기업인 구글, 애플, 메타 등이 불참했다. 대신, 구글과 애플, 메타 등 주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회원사로 둔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가 7일(현지시각) 공정위의 플랫폼법 재추진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CCIA는 한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플랫폼법이 미국의 디지털 수출을 겨냥함으로써, 미국 기업, 근로자 및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위험을 갖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CCIA는 조나단 맥헤일 CCIA 디지털 무역 담당 부사장 명의로 공식 성명서를 내고, “특정 기업을 사전지정하는 방식에 대해 계속해서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정책의 최종안이 공정하며, 시장에서 미국 기업 입지를 뒷받침하도록 기대한다”는 내용을 밝혔다.
한편, 이날 한 위원장은 암참 회원사들과의 만남에서 플랫폼법 연내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을 뿐 구체적인 시기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지난 1월 미국상공회의소가 플랫폼법 제정 우려 성명을 내는 등 국내외 빅테크 및 업계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아직도 공정위는 플랫폼법 내용을 공개하진 않고 있지만, 어쨌든 재추진 의사를 강력히 밝힌 만큼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다만 현재 국회 상황으로는 청부 입법이 어려워졌기에, 총선이 끝난 뒤 6월 국회 즈음 공정위가 (플랫폼법 입법 추진을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을 개시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또 다른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는 현재까지도 국내 관련 업계에 소통 시도나 만남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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