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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현실판 라쇼몽, 단통법은 실패한 악법일까

[ⓒ디지털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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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단통법이 폐지되면) 자유로운 지원금(보조금) 경쟁이 이루어지면 저렴하게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이상인 방통위원회 부위원장)

최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를 선언한 정부를 보면 이른바 ‘라쇼몽 효과’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동명의 일본 영화에서 따온 사회학 용어인 ‘라쇼몽’은 한 가지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현상을 말한다.

단통법은 그 이름처럼 투명한 유통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처음 시행됐다. 단통법이 제정된 2014년은 통신사 간 출혈 경쟁이 절정을 이뤘던 시기였는데, 출고가 기준 90만원이었던 갤럭시S3의 실구매가는 17만원까지 떨어졌다. 이에 정부는 단통법을 통해 시장을 안정시키고, 소비자 차별을 줄이고자 했다.

실제 단통법이 시행된 직후 과열됐던 번호이동시장은 눈에 띄게 안정화됐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100만명을 웃돌던 번호이동 건수는 단통법이 시행된 직후인 2014년 10월 37만4828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지난해까지도 번호이동 건수는 50만명 전후로 유지되고 있다. 작년 12월 기준 번호이동 건수는 51만1984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10년동안 악법이라는 비판에도 불구, 정부가 단통법을 폐지하지 못했던 이유다.

물론, 시장 안정화 효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장이 안정화되면서 이통사 간 경쟁이 사라지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단통법 시행으로 추가지원금 지급 한도가 공시지원금의 15%로 제한되면서 가입자 유치를 위해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다보니 '신사를 위한 법'이라는 조소가 나오기도 했다. 경쟁이 제한되자 자연스레 이통3사의 점유율도 고착화됐고, 소비자를 위한 신규 서비스 출시도 더뎌졌다.

불투명한 유통구조도 그대로였다. 특히 이통사의 리베이트(판매장려금) 차등지급으로 유통채널 간 차별은 오히려 심화됐고, 이는 다시 이용자 차별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정도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같은 단말기를 누구는 원가를 주고, 누구는 반값에 구매하고 있다. 정보 불균형 해소를 통한 전체적 이용자 편익 증대라는 정책목표는 완벽히 달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단통법 폐지를 선언했지만, 이 같은 시장 문제에 대해선 어떠한 답도 내놓고 있지 않다. 여야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한목소리로 법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부는 현 시장의 유통구조가 혼탁하며 언제든 혼탁의 정점인 대란이 일어 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단통법은 폐지하면서도, 법 내용의 한 축인 선택약정 할인을 ‘최후의 보루’로 유지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소비자는 대리점에서 갤럭시 S24를 살 때 ‘단말 할인(공시지원금)’이나 ‘통신비 할인(선택약정 할인)’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모든 소비자가 차별없이 지원을 받게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선택약정할인제도 유지만으로 단통법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모두 상쇄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총선을 앞두고 민심에 따라 단통법을 폐지하더라도, 2014년처럼 극심한 혼탁양상이 벌어질 경우 정부는 어떻게 대처할지도 궁금하다. 심지어 선택약정할인은 지원금에 준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공짜폰에 준하는 보조금이 지급됐을때 선택약정할인 규모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궁금하다. 반복된 시장혼탁에 이름만 바꾼 제2의 단통법을 꺼내들지도 모를 일이다.

단통법을 폐지하면 자연스럽게 가계통신비 부담이 낮아질 것으로 생각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가계통신비는 말 그대로 통신서비스를 이용한 서비스비용과 스마트폰 구입 비용은 더한 것이다. 단말기 가격은 고공비행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담경감 의무를 통신사에게만 지울 때 과연 의미있고 지속적인 정책효과가 나타날지 의문이다.

단통법이 폐지된들 통신사들이 현재 지출하는 전체 마케팅 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할 가능성은 안타깝게도 높지 않아 보인다. 같은 시기에 누군가는 공짜폰을 사고, 정보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장년층은 100만원 이상을 주고 구매할 것이다. 아마도 2014년 이전처럼 말이다.

단통법은 근본적으로 좋은 법이 아니다. 애초에 탄생하지 말았어야 했다. 기업의 자율적인 경쟁을 제한하고 기업의 지원금 수준까지 정부가 정한다는 점에서 경쟁을 후퇴시킬 수 있다. 강제로 통신사들의 돈줄을 통제하기보다는 근본적인 경쟁활성화 방안을 만들었어야 한다.

"(단통법이 폐지되면) 자유로운 지원금(보조금) 경쟁이 이루어지면 저렴하게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안타깝게도 이상인 방통위 부위원장은 구체적 방안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직 명쾌한 대안은 없으리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방통위가 단통법 폐지를 위한 대안마련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없다. 출범 1년이 넘도록 상임위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방통위다.

단통법 폐지에 앞서 법의 긍정적, 부정적 효과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법의 정책적 목표인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이 현실화 됐는지부터 면밀하게 분석할 일이다.

때문에 순서는 이러하다. 정부는 왜 지난 정부에서는 단통법을 폐지할 수 없었는지, 그리고 왜 지금 시점에서 폐지하게 됐는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부터 국민들 앞에 내놓아야 한다. 단지 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인들의 "악법이다" 외침때문에 등 떠밀려 하는 것인지, 이제 정책목표는 충분히 달성됐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통법을 대체할 근본적인 대안이 있기 때문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공짜 아이폰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긴 줄이 서있는 것을 보고 정부는 가계통신비 부담이 낮아지고 있다며 좋아할지 궁금하다. 자유로운 지원금 경쟁은 언제든 불법 지원금, 이용자 차별로 바뀔 수 있다. 2014년 단통법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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