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얼마 전 넷플릭스의 테드 서랜도스 공동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을 찾았다. 2박3일의 짧은 일정 속에 기자간담회까지 가진 서랜도스 CEO는 한국 콘텐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특히 한국과의 동반성장을 강조하며 다 함께 좋은 콘텐츠 생태계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도 천명했다.
기대가 컸을까. 동반성장 가치를 강조한 서랜도스 CEO가 막상 논란이 된 망 이용대가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간담회에서 망 이용대가 질문이 나오자 “통신사와 협력해야 한다”며 원론적 입장을 말하는 데 그친 것이다. 넷플릭스가 투자한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오픈커넥트’를 언급하며 망 이용대가에 대해 사실상 선을 긋기도 했다.
그러나 전세계 인터넷제공사업자(ISP)들은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유발하는 막대한 트래픽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과거 이메일이나 문자 정도를 전송했던 수준에서 엄청난 트래픽의 고화질 동영상 데이터를 전송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망 투자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ISP들은 네트워크에 대한 공정한 기여를 글로벌 CP들에 요구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관련 논의가 활발하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망 투자를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한 자금 조달 모델을 찾아야 한다”(티에리 브르통 EC 집행위원)며 실제 글로벌 CP들에 망 투자 분담 의무를 부과하는 ‘기가비트연결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CP들이 정당한 망 이용대가를 내야 한다는 국내 ISP들의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에서 높은 수준의 네트워크 인프라를 사용하면서 사업을 영위하는 CP들이 그 대가를 내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SK브로드밴드의 경우 트래픽 급증으로 전용망을 설치해 줬음에도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넷플릭스와 소송을 진행 중이다.
넷플릭스는 물론 생각이 다르다. 유럽에서 망 투자 분담 의무가 법제화 될 경우 창작자와 콘텐츠에 대한 자신들의 투자 활동이 저해될 것이라며 강경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SK브로드밴드와의 소송에서도 트래픽 전송 의무는 어디까지나 ISP 몫일 뿐 CP들이 부담할 이유가 없다며 망 이용대가의 정당성을 전면 부정하는 중이다.
하지만 공정한 망 투자 분담, 이 의제가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도 결국 ‘동반성장’이다. 이제 ISP들만으로는 높아진 이용자 기대를 충족하는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이 더 이상 어렵기 때문에, 트래픽 폭증에 대한 책임이 있는 대형 CP들도 어느 정도 기여를 함으로써 미래 네트워크 생태계의 진정한 동반성장을 꾀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 우리 국회에는 일정 규모 이상 부가통신사업자의 망 이용계약 체결 또는 망 이용대가 지급을 의무화 한 일명 ‘망무임승차방지법’이 발의돼 있다. 지난해 빅테크의 여론전에 밀려 입법이 진전되진 못했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글로벌 논의가 활발해진 만큼 우리도 망 이용대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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