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단통법(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이 또 한번 수술대에 올랐다. 집도의는 정부와 국회인데, 단통법을 어떻게 손봐야 할지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단통법을 둘러싼 서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기 때문이다.
◆ 정부, 단통법 개정 논의…신중한 입장
17일 정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최근 단통법 개정에 관한 논의에 착수했다. 과기정통부는 올 6월 발표할 ‘통신시장 경쟁촉진 정책방안’ 일환으로 단통법 개정을 검토하던 중이었다.
일각에선 이같은 행보를 단통법 폐지 움직임으로 해석하기도 했지만, 정부는 폐지보다는 개정에 초점을 두고 매우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다. 단통법이 가진 이용자 차별 완화 및 투명한 유통환경 조성 등 효과를 뒤로 한 채 무조건 폐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소관부처로서 규제권한을 지키기 위한 이해관계도 없지 않다. 특히 단통법에 따른 사실조사와 과징금 제재 등 통신사업자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권한을 가진 방통위는 단통법 폐지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해 방통위 관계자는 “국회에 단통법상 추가지원금 한도를 현행 15%에서 30%로 상향하는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데, 이를 통해 이용자 혜택을 높이면서 유통점 경쟁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에 주력하고자 한다”며 사실상 단통법 폐지 반대 의견을 보였다.
과기정통부도 단통법에 관해서는 소극적인 모양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과기정통부 독단적으로 단통법을 이야기할 순 없다”며 “소관부처인 방통위 의견 없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게 월권 행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 국회, 내년 총선 앞두고 단통법 손질할까
단통법은 통신사가 고객에게 지급하는 공시지원금 외에 판매점에서 주는 추가지원금을 제한(공시지원금의 15%)한 것이 골자다. 과거 통신사들의 차별적인 마케팅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일부 이용자가 지원금을 독식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시행된 것이다.
실제 단통법 시행 이후 들쑥날쑥이던 지원금은 투명해졌고 유통 시장도 안정화 됐다. 일부 ‘성지’에서 차별적인 지원금을 살포하는 일이 아직도 남아 있긴 하지만, 단통법이 낸 성과를 보면 폐지보다 개정에 무게를 싣는 정부의 판단이 마냥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이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내년 총선을 앞둔 국회 안팎에선 단통법 폐지 주장이 심심찮게 들린다. 단통법처럼 유달리 국민적 감정이 좋지 않은 법을 폐지하겠다고 나선다면 총선에서 유리한 여론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가운데서도 특히 여당은 통신경쟁촉진을 통한 가계통신비 인하를 주문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발맞춰 단통법 폐지론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야당 입장에서도 무작정 반기를 들 수는 없는 상황이다.
◆ 통신사들도 단통법 존폐 여부 예의주시
통신사들은 조용히 눈치를 보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정부 판단을 따르겠다”라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내심 단통법이 유지되길 바라는 분위기가 읽힌다. 단통법으로 무리한 보조금 경쟁이 사라지면서 마케팅비용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3사간 번호이동 수(MNP) 단통법 시행 전인 2013년 1116만명에서 2017년 704만명, 2019년 580만명, 2021년 508만명, 2022년 453만명으로 계속 줄고 있다. 지난 몇년새 통신사들의 마케팅비용도 줄곧 감소해,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주요 배경이 됐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통신사들이 마케팅비용 절감으로 수익성을 개선하는 재미를 봐 온 게 사실”이라며 “단통법이 없어진다고 해서 당장 마케팅 경쟁이 과열되진 않겠지만, 가입자 유치 비용이 다시 높아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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