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다양한 전자제품이 우리 곁에서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을 반복했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던 기기가 어느 순간 사라지거나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디지털데일리>는 그 이유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백승은 기자] 반도체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은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입니다. 무어의 법칙은 인텔 창립자인 고든 무어가 고안한 개념인데요. 지난 3월 무어는 하와이에 위치한 주택에서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또 한 번 무어의 법칙이 화두에 올랐는데요.
1965년 등장한 무어의 법칙을 한 줄로 요약하면 ‘10년 뒤인 1975년부터, 반도체 성능이 2년마다 2배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약 50년 전 개념인데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대표적인 반도체 이론 중 하나입니다. 작년 9월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무어의 법칙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건재하다”라고 언급하기도 했죠.
◆“1962년 8~10개였던 칩, 1975년에는 6만5000개로 늘어날 것”
반도체 칩, 즉 집적회로(IC)란 두 개 이상의 소자를 한 개의 기판에, 또는 기판 내에서 분리될 수 없도록 결합한 전자부품을 말합니다. 주로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저항 ▲커패시티와 같은 개별 부품을 한데 모아 하나로 쌓아 올린 것을 뜻하죠. 이 개수가 2년이 지나면 2배가 증가한다는 게 무어의 법칙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짚어보겠습니다. 무어는 1965년 4월 ‘일렉트로닉스 매거진’에서 ‘칩에 부품 욱여넣기(Cramming More Components onto Integrated Circuits)’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는데요. 제목과 같이 무어는 회로 하나에 들어가는 부품(트랜지스터) 수가 매년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하나의 칩에 50~60여개의 트랜지스터를 보유하고 있는게 일반적이었죠. 무어는 1962년에는 8~10개였는데 이듬해인 1963년에는 이보다 두 배 많은 15~20개, 1964년에도 두 배가 늘어난 30개로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매년 증가해 10년 후인 1975년에는 6만5000개의 트랜지스터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다만 10년 뒤인 1975년에는 트랜지스터 수가 ‘매년’이 아닌 ‘2년’마다 증가한다고 이론 일부를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무어의 법칙은 무어가 스스로 지은 단어가 아닙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카버 미드 교수가 이 개념을 보고 무어의 법칙이라는 단어를 붙였고 널리 퍼지게 된 것이죠. 이후 수십 년간 반도체 산업에서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연구개발(R&D) 계획을 세울 때 많은 기업들이 무어의 법칙을 목표로 삼게 됐죠.
◆1세대 반도체 신화 이끈 인텔, 이제는 ‘비욘드 무어’
유년 시절 무어는 화학자를 꿈꿨습니다. 1940년대 산호세 주립대학교, UC 버클리,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화학과 물리학를 공부한 후 1956년 첫 직장으로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에 입사했습니다. 하지만 금방 연구소를 퇴사하고 동료들과 함께 회사 설립에 나섰는데요. 당시 한 회사에서 정년까지 일하는 게 대부분이었죠. 이들은 한때 ‘8명의 배신자’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초기 설립 자금 마련에 성공한 무어를 비롯한 동료들은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세웠습니다. 무어의 법칙이 탄생했을 당시 무어는 페어차일드의 연구 개발 이사였습니다. 당시에는 게르마늄을 소재로 한 반도체가 주류였는데, 페어차일드는 실리콘을 소재로 다룬 반도체 개발에 처음으로 성공하는 등 기술을 선도했습니다.
그렇지만 페어차일드의 경영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적자로 인해 내부 갈등이 깊어지자 무어는 회사를 떠났고, 동료였던 로버트 노이스와 1968년 인텔을 공동 창업했습니다.
무어는 인텔 초기 반도체의 선폭 미세화를 위해 미세공정을 도입하는 등 많은 기술적 혁신을 접목했습니다. 반도체가 한 폭의 그림이라고 가정하면 웨이퍼라는 도화지 위에 노광, 식각, 증착 등 공정을 반복하며 그림을 그린 후 마지막으로 포장(패키징)을 거치는데요. 이때 한정된 웨이퍼 안에서 더 얇은 선폭을 통해 더 많은 집적회로를 구현하고, 이를 통해 원가는 낮추되 생산성을 가져가는 게 중요합니다. 무어는 이미 그 사실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죠.
뛰어난 통찰력 덕분이었을까요. 인텔은 중앙처리장치(CPU) 생산 업체로 쑥쑥 커 가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보급과 맞물려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전 세계 컴퓨터의 80%가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탑재됐을 정도였으니까요. 무어가 이끈 인텔은 여전히 ‘1세대 반도체 신화’라고 불리고 있죠. 그 기반에는 같은 기간 안에 집적도를 높이는 것에 집중한 무어의 법칙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무어의 법칙은 유효하지만, 이제는 이보다 한 단계 넘어간 ‘비욘드 무어’를 향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요구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고 뛰어넘어야 할 기술적 과제는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과거의 무어의 법칙은 통하지 않는다는 시각이죠.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에서 어드밴스드패키지(AVP)팀장을 맡고 있는 강문수 부사장은 뉴스룸을 통해 “무어의 법칙에 기반한 공정 미세화만으로는 최근 추세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라며 “반도체 기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어의 법칙을 넘어설 ‘비욘드 무어(Beyond Moore)‘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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