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전례 없는 위기다. 구현모 현 KT 대표가 임기 만료를 사흘 앞두고 사퇴했다. 윤경림 KT 차기 대표이사 후보가 사퇴한 다음날이다.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이 일단 직무대행을 맡기로 했지만, 새로운 대표를 뽑아야 할 사외이사들마저 전원 사퇴할 조짐이다. 경영공백 자체도 문제지만, 그 공백을 메우는 일도 어렵게 됐다.
28일 KT는 구현모 대표가 일신상의 사유로 대표이사 사퇴 의사를 밝혔고, 일부 사외이사는 최근 일련의 과정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느끼며 사의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당초 윤경림 대표 후보가 사퇴한 상황에서 상법에 따라 구 대표가 당분간 대표직을 더 수행할 가능성도 점쳐졌지만 구 대표까지 결국 사퇴하게 된 것이다.
또한 유희열·김대유 사외이사도 자진 사임했다. 두 이사의 임기는 각각 2025년 3월 31일까지, 2024년 3월 29일까지였다. 현재까지 남은 KT 사외이사는 오는 31일 임기가 만료되는 강충구·여은정·표현명을 포함해 4명이다. 3명의 이사들은 올 주총에서 재선임에 도전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표이사 유고 상황이 됨에 따라 KT는 정관 및 직제규정에서 정한 편제 순서에 의거해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이 대표이사 직무를 대행하게 됐다.
KT는 현 위기 상황을 정상화 하기 위해 대표이사 직무대행과 주요 경영진들로 구성된 비상경영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전사 경영·사업 현안을 해결하는 ‘성장 지속 TF(태스크포스)’와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개선 작업을 수행하는 ‘뉴 거버넌스(New Governance) 구축 TF’를 운영하겠다는 구상이다.
성장 지속 TF는 말 그대로 기업 경영에 있어 당장 발생할 수 있는 공백을 막기 위해 고객서비스·마케팅·네트워크 등 핵심 사업부서를 총괄하는 경영진들이 박 직무대행과 함께 상시 운영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목되는 것은 뉴 거버넌스 구축 TF다. KT는 이 TF를 통해 문제의 대표이사 및 사외이사 선임 절차, 이사회 역할 정립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먼저, 주주 추천 등을 통해 TF를 구성할 외부 전문가들을 뽑고, 전문기관을 활용해 지배구조 현황 및 국내외 우수 사례 등도 점검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국내외 ESG 트렌드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반영하고,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는 게 KT의 계획이다.
그리고 KT 이사회는 이 TF에서 마련한 개선안을 바탕으로 사외이사 선임을 추진하고,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중심이 되어 변경된 정관과 관련 규정에 따라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주주들에게 추천권을 부여할 것인지, 사외이사 선임을 누가 하게 될지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KT 측은 “국내 및 미국 상장기업인 점을 감안 시 지배구조 개선 작업과 2차례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통한 사외이사 및 대표이사 선임 절차가 완료되기까지는 약 5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되지만 최대한 단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KT가 적어도 상반기를 넘겨 올 8월 말까지는 대표이사 공백에 따른 비상경영체제를 계속할 수밖에 없단 소리다. KT는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최대한 단축하겠다고 했지만 또 다른 변수가 발생할 경우 기간은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
이로써 KT의 경영공백 장기화는 현실화 됐다. 이미 작년 말부터 치러진 차기 대표 경선으로 인해 신규 경영계획이나 인사 및 조직개편은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던 상태다.
구현모 대표가 디지코(DGICO·디지털플랫폼기업) 일환으로 매진했던 신사업들도 올스톱될 가능성이 커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비(非)통신 사업을 확장하며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있는 경쟁 통신사들보다 한참 뒤처지게 될 것이란 우려가 KT 안팎에서 쏟아진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KT는 대표이사 선임에 5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막상 5개월 후에 차기 대표가 들어선다 해도 경영 안정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KT 입장에선 올해를 다 날려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