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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최근 정부와 통신업계가 ‘오픈랜’(Open-RAN·Radio Access Network, 개방형무선접속망) 기술을 주목하고 있다.
오픈랜은 서로 다른 제조사가 만든 통신장비를 상호 연동할 수 있는 표준화 기술이다. PC의 운영체제(OS)처럼 네트워크 운용에 필요한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를 분리하는 방식이다. 어느 기업이 만든 장비를 쓰든 소프트웨어만 업데이트하면 되도록 말이다. 기존엔 통신장비 제조사가 각 통신사의 요구 사양에 맞춰 설비를 따로 만들다 보니 규격이 달라 호환 운용할 수 없었다.
오픈랜의 가장 큰 의미는 장비 종속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지국을 노키아 장비로 한번 구축하고 나면 나중에 에릭슨 장비로 바꾸려 해도 바꾸기 어려웠는데, 오픈랜이 도입되면 기지국은 노키아로, 안테나는 삼성 제품으로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정 장비회사에 구애받지 않고 다수 제조사 장비를 혼용해 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유연한 기지국 구축이 가능해진다.
통신사 입장에서 오픈랜을 도입하게 되면 장비 선택지를 넓힐 수 있어 통신 인프라 구축에 드는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여러 회사의 통신 장비를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부품을 구하기 쉬워지고 그만큼 기지국 구축에도 속도를 낼 수 있다. 전파 도달 거리가 짧고 장애물을 피하는 회절성이 약해 LTE 대비 기지국을 훨씬 촘촘히 설치해야 하는 5G 혹은 6G 네트워크 운용에 있어 특히 도움이 될 수 있다.
장비사 입장에선 두 갈래로 나뉜다. 삼성전자와 같은 후발주자들에는 업계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기존엔 다른 기업 장비를 먼저 도입해 쓰고 있는 통신사에 자사 장비를 팔기 어려웠는데, 오픈랜이 확산되면 판로를 넓힐 수 있다. 반대로 세계 통신장비 시장 1위 사업자인 화웨이에는 집토끼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된다. 초기 장비 공급으로 시장을 선점한 우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화웨이·ZTE 등 중국 통신장비 제조사를 견제하려는 미국이 오픈랜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이유기도 하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통신 네트워크 법안에 따라 통신 장비를 오픈랜 방식으로 교체하는데 최소 10억 달러와 최대 20억 달러의 신규 자금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 최대 통신사인 버라이즌은 2023년까지 오픈랜을 구축하겠다고 공식화한 바 있다.
국내 통신사들도 오픈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오픈랜 관련 글로벌 연합체인 ‘오랜 얼라이언스’(O-RAN Alliance)의 차세대 연구그룹(nGRG)에서 ‘6G 요구사항 및 서비스’ 분야 공동 의장사로 역할을 확대 중이다. 얼마 전 오랜 얼라이언스가 주최하는 ‘플러그페스트’(PlugFest) 행사에 주관사 자격으로 참여해 기지국 장비에 대한 실증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KT는 지난해 8월 오픈랜 얼라이언스 회의에 제안한 오픈랜 연동 규격에 대해 같은해 11월 표준 승인을 받았다. 이 외에도 가상화 기지국, 무선망 지능형 컨트롤러(RIC·RAN Intelligent Controller) 등 오픈랜 네트워크를 유연하게 구축하기 위한 기술들을 확보했다. LG유플러스는 글로벌 통신장비 제조사 시에나와 함께 오픈랜 규격에 기반한 스몰셀 인빌딩 솔루션으로 실내 5G 서비스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정부도 오픈랜 활성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주도해 통신사와 통신기업,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이 참여하는 ‘오픈랜 얼라이언스’를 다음 달쯤 출범한다. 오픈랜 얼라이언스는 5G 특화망 또는 5G 상용망 일부 구간에서 오픈랜 장비를 구축할 계획이다. 일부 도심을 비롯해 농어촌과도서·산간 지역 대상으로 시범사업이 추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