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정권이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소프트웨어(SW)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모두 SW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다만 이와 같은 약속이 ‘공수표’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공공기관 대다수가 해외 기업의 화상회의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줌비디오커뮤니케이션즈의 ‘줌(Zoom)’이 대표적이다.
줌이 한국 화상회의 서비스 시장을 장악한 것은 코로나19 때부터다. 초유의 온라인 개학이 이뤄졌던 2020년, 교육부는 원격수업을 위한 SW로 네이버 ‘라인웍스’, 구루미 ‘온라인오피스 서비스’, 줌, 마이크로소프트(MS) ‘팀즈(Teams)’, 구글 ‘구글미트(당시 행아웃)’, 시스코 ‘웹엑스(Webex)’ 등을 예시로 들었다. 줌, 팀즈, 구글미트, 웹엑스 등은 외국 솔루션이다.
SW 산업계에서는 당시 “정부가 나서서 외산 SW를 추천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일부 한국 기업은 정부의 비대면 정책에 앞서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지만 외면받았다.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장관인 최기영 전 장관이 나서서 공공기관들에게 “국산 원격 SW를 써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 전 장관이 발표한 이튿날 교육부는 회의를 줌으로 진행했다. 이때는 줌에서 보안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던 와중이었다.
오히려 보안 문제로 미국 일부 주, 독일 등 ‘줌 사용 금지’를 시행하던 국가도 있었으나 한국 정부기관은 “특정 SW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통상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며 별도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3년이 흐른 지금도 공공기관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정부는 여전히 국산 SW 산업 육성을 외치지만 화상회의는 줌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 정부 위원회는 줌 사용 이유를 묻자 “예산이 없다”고 답했다. 국산 SW의 월 사용료는 2만원남짓이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가진 기관이 월 2만원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해명했는데, 해당 위원회는 그달 ‘국산 기술 기업 육성’을 강조했다.
‘두 얼굴의 정부’는 클라우드 산업에서 나타난다. 윤석열 정부는 클라우드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내 기업들의 성장을 도울 것이라고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과기정통부가 꺼낸 것은 국내 클라우드 기업들에게 독약이 될 ‘클라우드 보안인증(CSAP) 등급제 개편’이다.
CSAP는 공공 클라우드 시장 진입을 위해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인증이다. 현행 체계에서는 CSAP를 받은 서비스형 인프라(IaaS)에 탑재된 SW만 이용할 수 있다. IaaS는 물리적 망분리 등의 보안 조치를 요구하고 있는데, 국내 기업들만 이를 받은 상태다.
정부 개편안은 시스템의 중요도에 따라 CSAP를 상·중·하 등급으로 구분, 하 등급의 경우 인증 조건을 완화한다는 취지다. 이 경우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들에게 시장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국내 클라우드 기업들의 중론이다.
SW 기업 관계자는 “2020년 당시 과기정통부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 행정안전부 등은 줌을 애용했고 이는 국내 화상회의 시장의 황폐화로 이어졌다. 과기정통부가 앞장서서 진행하는 CSAP 개편은 클라우드 산업의 붕괴로 이어지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