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중국 반도체 제재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더욱 강도가 세졌다. 단순히 자국 소프트웨어, 장비 등 기업과 거래를 제한하는 것을 넘어 다른 나라의 동참을 촉구했다. 그 결과 미국 주도로 ‘칩4(한국 미국 일본 대만) 동맹’이 형성됐다.
우리나라는 칩4 초기에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수출 비중이 높은 중국에 등을 돌린다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 기업, 학계 등과 수차례 논의를 펼치면서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일련의 과정 속 미국과 일본은 TSMC를 앞세운 대만을 끌어들이면서 동맹을 강화했다.
최근 들어 한국도 칩4 참여라는 공식 입장을 낸 가운데 향후 중국과 어떤 식으로 협상해나갈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요 생산거점 중 하나가 중국이라는 부분도 해결 과제다.
개별 기업은 시장 악화 속에서 전반적인 투자를 줄여나갔으나 연구개발(R&D)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메모리에서는 2위 SK하이닉스와 3위 마이크론이 1위 삼성전자보다 먼저 최신 기술 또는 제품을 공개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파운드리 역시 2위인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3나노미터(nm) 공정을 상용화하면서 TSMC에 선전포고를 날리기도 했다. 메모리에서는 YMTC, 파운드리에서는 인텔의 약진이 눈에 띄기도 했다. 이들은 아직 선도업체 대비 성과를 내지 못했으나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는 모양새다.
◆2023년은 상저하고(上低下高)?
반도체 불황이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만큼 하반기 반등이 예상된다는 의견도 대다수다. 데이터센터와 전자제품 업계가 살아나면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반도체 제조사도 비슷한 생각이다. 따라서 무리한 투자보다는 업황을 지켜보면서 시설투자를 단행하는 등 조심스러운 사업 전략을 펼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의 행보는 소재, 장비 협력사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순차적으로 실적이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누구도 이같은 경기침체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내년 하반기 상승 곡선 역시 장담할 수는 없다.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한 반도체 패권 다툼은 더 격화할 예정이다. 칩4 위력이 얼마나 강해질지, 중국의 반격이 얼마나 거셀지 등이 전쟁의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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