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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로 주력 옮기는 TSMC… ‘반도체 방패 사라지나’ 불안커지는 대만인들

[디지털데일 박기록 기자]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는 지난 6일(현지시간)환호성으로 들썩였다.

대만의 국민기업이라 할 수 있는 TSMC가 2026년 가동을 목표로 3나노 기반의 반도체 제조시설(팹)을 추가로 지을 계획이며, 이를 위해 당초 120억 달러보다 무려 3배나 늘어난 40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발표는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TSMC 피닉스 공장 가동식의 극적 효과를 배가시켰다. 지난달 치러진 미 중간 선거에서 사실상 승리한 바이든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제조업이 돌아왔다”며 정치적 의미도 빼놓치 않았다. 애리조나 주는 선거때마다 격전지중 한 곳으로 꼽힌다.

이날 TSMC의 행사에는 대통령 뿐만 아니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등 행정부 고위 인사들과 민주당 소속 의원들, 또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 등 주요 IT기업의 수뇌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번 TSMC의 애리조나 제조 시설과 관련해 쏟아진 여러 뉴스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TSMC의 주요 고객사중 한 곳인 애플의 팀 쿡 CEO의 언급이다.

그는 ‘앞으로 미국산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물론 TSMC는 대만 국적의 회사지만 관세법 등 국제 통상 규정에선 주된 생산지가 ‘원산지(C/O)’로 간주되기때문에 ‘미국산’(Made in USA)인 것은 당연하다.

중국 상하이에서 만든 테슬라 전기차와 정저우에서 만든 아이폰이 ‘중국산’(Made in China)이듯이 평소같았으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발언이다.

그러나 팀 쿡의 이 발언에는 “이제 ‘차이나 리스크’(China Risk)로부터 한 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는 의미에 방점이 강하게 찍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국 정저우 폭스콘 공장의 생산 차질로 아이폰14 고급 모델의 판매에 적지않은 타격을 입고 있는 애플의 입장에선 미-중 갈등의 핵심인 대만도 이제 넓은 의미의 '차이나 리스크'로 간주하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아이폰 생산 비중을 중국에서 인도로 빠르게 옮기고 있는 것과 같은 논리다.

따라서 현재 대만 TSMC에서 만들고 있는 칩을 지정학적으로 훨씬 안전한(?)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서 조달받을 수 있게됐다는 것이 기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은 TSMC의 주요 고객사인 AMD, 퀄컴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상 공급망측면에서만 놓고보면, 앞으로 3나노 이상의 고급 공정을 애리조나 제조 시설에 적용하게될 TSMC가 ‘미국 기업’으로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게된 것이다.
지난 6일 TSMC 애리조자 공장 가동식에서 축사를 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지난 6일 TSMC 애리조자 공장 가동식에서 축사를 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그런데 이같은 미국의 환호와는 정반대로 대만인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CNN은 10일(현지시간) 이번 TSMC의 대규모 미국 투자를 바라보는 대만인들의 다양하고 속깊은 불안감을 전했다.

무엇보다 단순히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날라간 것에 대한 불안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물론 대만인들은 글로벌 매출 비중이 절대적인 TSMC가 이제는 대만 본토 뿐만 아니라 유럽, 중국, 미국 등 다양한 지역에서 보다 역동적으로 칩 제조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은 수긍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인들은 그와 반비례해, 어쩔 수 없이 ‘대만의 존재감’은 갈수록 하락하는 것 또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대만의 존재감 하락은 대만의 안보 위협으로 직결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즉, 대만인들은 그동안 TSMC와 같은 핵심 반도체 제조시설이 대만에 존재했기 때문에 중국의 무력 침공 위협으로터 미국 등 서방 세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만인들이 TSMC를 ‘국보’라고 생각하는 데는 이같은 안보적인 이유도 포함돼 있다.

이것이 대만의 안보에 있어 TSMC 반도체가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른바 ‘반도체(실리콘) 방패’ 이론이다.

실제로 TSMC가 전세계 컴퓨터산업 생태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역할과 비중을 고려하면 이같은 방패 이론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결국 최근 TSMC의 해외 팹 시설 확장은 대만인들에게 일자리 불안외에 ‘안보 불안’이라는 이중의 정서적 충격파를 주고 있는 것이다.

CNN에 따르면, 실제로 최근 야당인 대만인민당의 치우 첸위안 의원은 이번 TSMC의 미국 투자와 관련해 반도체 운영과 최첨단 기술을 미국에 이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치우 의원은 그 증거로 TSMC 엔지니어를 포함해 300명을 애리조나 공장으로 이전한 점을 지적했다.

그는 또한 조셉 우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한 대정부 질문을 통해 ‘혹시 미국과의 비밀 거래가 있는 것이 아니냐’며 따졌다. 물론 대만 외교부는 “미국과 비밀 거래가 없으며 TSMC에 대한 대만의 중요성을 축소하려는 시도도 없다”고 해명했다.

대만의 ‘반도체 방패론’을 제외한다면, 당장 반도체 분야에서 쪼그라드는 일자리 문제도 대만에겐 적지않은 현실적 고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제조시설의 ‘탈 대만’ 현상이 가속화될수록 1970~80년대 미국 제조업 중심지였던 오대호 연안의 러스트 벨트의 쇠락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란 우려가 대만의 업계 전문가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TSMC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지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선 '반도체 방패'를 굳건하게 믿어왔던 대만인들의 걱정 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편 공격적인 TSMC의 미국 직접 투자 확대는,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략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도 결코 남의 일처럼 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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