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 논설실장] 20대 대선에 출마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는 지난 7일, 서울 여의도에서 ‘G3 디지털경제 강국 도약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안 후보의 디지털경제 관련 공약이 총망라된 자리였다.
이날 안 후보는 “세계 1위 과학기술 5개만 확보하면 삼성전자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 5개를 보유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한국은 세계 경제 5대 강국 안에 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555 공약’이다.
구체적으로 디스플레이, 2차전지, 원전, 수소산업, AI반도체, 바이오 테크놀로지, 콘텐츠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열거했다.
동시에 안 후보는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인 ‘과학기술부총리’를 신설해 모든 정부부처 연구개발비 집행‧관리를 맡기고, 청와대 내 수석비서관급 과학기술 분야 보좌진을 두고, 직속의 규제개혁처를 신설해 규제 혁파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디테일에 다소 차이만 있을 뿐이지 이번 대선에 나온 주요 후보들 역시 ‘과학기술 기반의 신성장 미래산업’에 대한 해법은 거의 대동소이했지만 이 분야에서 전문가다운 안후보의 식견이 돋보였다. 물론 역시 관건은 실천할 수 있는 의지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생각해보면 대선 후보들의 ‘정부 주도적 또는 정책 주도적 과학기술 발전’ 청사진이 어딘지 모르게 이제는 ‘올드’하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삼성전자급의 세계적인 대기업’이란 수식어, 웅장하지만 그 성장과 육성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지금의 삼성전자가 오롯이 과거 정권들의 전폭적인 정책적 지원에 의해서만 이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당시 불가능에 가까웠던 반도체에 승부수를 던졌던 모험적인 기업가 정신,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는 철저한 자기 혁신의 결과들이 모여 지금의 위치를 만든 것이다.
물론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그림자도 있었다. 삼성전자는 대한민국 현대사와 궤를 같이 한다. 현대, SK, LG 등 우리가 ‘재벌’(財閥)이라고 부르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성장 신화에는 오롯이 시장논리가 아닌 때로는 정치논리가 개입된 시절도 있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은 역동적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반면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는 정경유착의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 후유증은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지금도 완전히 청산되지 못했다. 이는 앞으로도 우리가 짊어져야하고 극복해야할 과제이기도 한다.
아울러 과거 재벌 구조의 경제시스템에 의해 고통받았던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들의 아픔과 애환도 함께 녹아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 5개’라는 표현을 듣고, 문득 느껴지는 아득함은 지난 40~50년간 압축성장 과정에서 겪어야했던 긍정과 부정에 대한 상념의 교차때문일 것이다.
이제 과거처럼 누군가의 조력이 뒷받침이 된 ‘신화적 성장 스토리’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믿을 것은 시장밖에 없는 시대로 진화했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재벌들 역시, 이제는 글로벌 수준에 맞는 투명한 경영구조를 갖추었다. 또 누군가의 조력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실력과 자본력도 갖췄다.
이제 정부는 시장 그 자체에 대한 신뢰를 보냈으면 한다. 전폭적인 ‘육성’과 ‘지원’은 뒤짚어보면 또 다른 의미의 규제이고 특혜일 수 있기때문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들과 같은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젊은 리더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정부의 역할은 가급적 최소화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전혀 손을 놓고 있을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고 ‘시장 기능과 원리’를 존중한다는 강력한 시그널만 보여주면 기업은 스스로의 동력을 성장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다음 시대는 ‘시장의 힘을 믿는 시대’로 가봤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