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계 “시간 당 배달 건수 줄여야 속도경쟁 감소” vs 산업계 “공급 부족 현상 심화될 것”
[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음식배달 시장이 커지면서 배달노동자 안전사고가 증가하자 노동계에선 ‘안전배달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배달 건수를 제한하고 그에 맞는 수수료를 지급하자는 내용이다. 다만 산업계에선 공급 부족 상황이 심화될 수 있다며 실효성을 지적했다.
26일 이희종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열린 ‘배달플랫폼 안전배달제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음식배달 시장은 20조원 규모로 성장했고 종사자 수도 30만명 이상으로 늘어났다”며 “배달노동은 우리 사회 필수 노동이 됐지만 여전히 사회적 인식은 낮고 종사자에 대한 보호조치는 미흡해 배달 노동을 위한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안전배달제’는 적정한 수수료를 전제로 시간당 배달 건수를 제한하고, 안전교육 의무화, 유상종합보험가입 의무화, 공제조합을 통한 오토바이 보험료 인하 등을 내용으로 한다. 배달 라이더 안전을 지키고 속도 경쟁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지난 18일 서비스연맹 소속 배달플랫폼 노동자들이 노조 출범을 알리면서 내세운 것 역시 안전배달제 도입 촉구였다.
배달플랫폼 종사자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 변화와 보험가입·안전교육 의무화 등을 강조하는 건 노동계와 업계 모두 그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 다만 의견이 갈리는 지점은 ‘시간당 배달 건수 제한+적정배달료 지급’에 관한 내용이다. 무리한 운전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을 없애자는 주장과, 본인 소득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자유시장 경쟁체제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대치된다.
서비스연맹이 배달 라이더 614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과속·신호위반을 줄어들게 만드는 요인으로는 수수료를 인상하는 (34.9%)것보다 시간당 배달 건수를 제한했을 때(38.4%) 더 효과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배달 라이더들이 반대하더라도 노조 측이 시간당 건수 제한을 언급하는 이유다.
배달플랫폼 노조 준비위원회 홍창의 위원장은 “적정 최소시급 2만5000원을 가정했을 때 건당 배달비가 평균 4000원이면 한 시간에 6건 이상을 배달해야 한다”며 “바쁜 시간엔 음식점으로 음식을 가지러 가서 배달하는 시간까지 약 7분 안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급을 최대한 올리기 위해선 피크시간 때 많은 건수를 배달해야 하기 때문에 라이더들이 무리한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홍 위원장은 “안전배달을 위해선 무리한 운전을 못 하도록 시간당 배달 건수를 제한하고 적정 배달료를 지급해 최소시급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업계에선 시간당 배달 건수 제한에 대해 실효성이 낮다고 반박했다. 배달 라이더들이 3~4개 플랫폼에 종사하는 데다 인력 부족 현상이 더욱 부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배달 라이더 대상 안전보험망 서비스를 실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김영규 정책실장은 “주업으로 종사자 외 단기 근무하는 라이더들은 대부분 피크타임에만 일하고 있는데 시간당 건수 제한을 한다면 소비자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된다”며 “그러면 기업은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또다시 속도전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노동계에선 배달 라이더 80%가 한 개 플랫폼(앱)만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시간당 배달건수 제한 방식과 공급 부족 문제는 추가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이 정책실장은 “무조건 시간당 4건 제한 이런 식이 아닌 5분 거리를 1분 만에 갔을 때 4분 휴식 등 여러 가지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 위원장 역시 “배달대행업체에서 한 시간에 여러건 배달하던 라이더들이 4~5개만 배달할 경우 나머지 물량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논의한 바 없어 그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전했다.
적정 수수료와 배달 건수에 국한된 안전배달제에서 나아가 라이더들이 안전운전을 할 수 있도록 플랫폼사들이 알고리즘을 일부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은 “서비스 노동에 대한 적정 대가를 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기대 소득은 입지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며 “위치정보 데이터와 이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이 기업 이윤획득 기반으로서만이 아니라 안전관리 기반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사회적 개입이 가능해야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