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상반기, IT기업들에게 ‘힘든 한해’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내 정보보안업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면에 제약이 생김으로써 미팅이나 시스템 구축 등의 작업·계약이 지연·파기되는 일이 속출했다.
하지만 곧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재택·원격근무를 중심으로 한 비대면(언택트) 문화가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위기는커녕 정보보안업계의 호황기가 도래했다. 물론 모두가 다 호황을 누리지는 못했다. 시장변화에 둔감한 보안기업들은 여전히 어렵고, 주가도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 국내 주요 정보보안 기업이 발표한 사업·감사보고서를 토대로 각사의 지난해 사업 성과를 톺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 올해의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정보보안기업의 경우 대다수가 기업·기관을 고객으로 하는 B2B 비즈니스를 한다. 그렇다 보니 업계 선두권 기업임에도 일반 대중이 알지 못하는 기업이 많다. SK그룹사의 정보보안 계열사인 SK인포섹(지난 3월 물리보안 기업 ADT캡스와 합병)이 대표적이다.
국내 정보보안업계 매출 상위 5개 기업은 SK인포섹, 안랩, 시큐아이, 윈스, 이글루시큐리티 등 5개 기업이다. 이중 시큐아이를 제외한 4개 기업의 매출이 늘었다. 창립 이래 최대 실적이다.
◆합병으로 몸집 불린 SK인포섹··· 1위 정보보안 기업 이미지 공고히=SK인포섹은 연초 목표로 했던 매출 3000억원을 돌파했다. 매출액 3147억원, 영업이익 264억원으로 각각 전년대비 16.3%, 14% 증가했다. 국내 정보보안 기업 중 유일하게 매출 2000억원을 넘은 기업이라는 타이틀에 이어 3000억 이상 기업도 거머쥐었다.
주력 사업인 컨설팅 및 관제 서비스의 수요 증가가 실적 상승을 견인했다. 작년 2293억원이었던 용역매출은 2601억원으로, 411억원이던 상품매출은 545억원으로 증가했다. 일찌감치 클라우드·운영기술(OT)에 집중했던 것도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 매출도 순조롭게 상승했다. 171억원이었던 해외매출은 272억원으로 58.3% 늘었다.
SK인포섹은 올초 같은 SK그룹 계열사인 ADT캡스와 합병했다. 정확히는 SK인포섹과 ADT캡스를 지배하고 있던 라이프앤시큐리티홀딩스와의 합병으로, SK인포섹이 ADT캡스를 지배하는 구조다.
통합법인 출범 이후 사명은 ADT캡스로 변경됐다. 신규 법인명을 확정하기 전까지는 ADT캡스라는 사명을 사용하고, SK인포섹은 ‘ADT캡스 인포섹’으로 브랜드명을 변경하게 됐다. 박진효 ADT캡스 대표가 통합법인을 이끌며 이용환 전 SK인포섹 대표는 ADT캡스 사업총괄을 맡게 됐다.
국내 보안업계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의 ‘빅딜’인 만큼 많은 기대가 모인다. 전국 단위의 고객 네트워크를 둔 ADT캡스의 영업망 활용, 국내 1위 정보보안 기업 SK인포섹의 경쟁력을 활용한 운영기술(OT) 보안 등 유기적 결합이 이뤄질 경우 놀랄만한 퀀텀점프가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업은 안정적인데··· ‘창업주 리스크’=안랩은 조용하지만 안정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연결 기준 매출액 1781억원, 영업이익 199억원으로 각각 6.7%, 8.4%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11.2%다. 1~3분기 전년동기대비 매출액 상승폭 2.9%에 그쳤던 안랩은 4분기에 503억원을 벌어들이며 뒷심을 발휘했다.
올해 성장도 기대된다. 국내 기업 중 최초로 선보인 보안 오케스트레이션, 자동화 및 대응(SOAR) 솔루션 ‘세피니티 에어’를 비롯해 클라우드 설계부터 구축, 운영까지 제공하는 ‘안랩 클라우드’ 등은 안랩의 새로운 캐시카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업적으로는 큰 이슈가 없었던 안랩이지만 사업 외적인 영역까지 시야를 넓힌다면 작년의 안랩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한해를 보냈다. 창업자이자 대주주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며 안랩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안철수 테마주’로 엮인 안랩의 주가는 지난 1월 8일 10만5300원까지 치솟았다. 지난 23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으로 단일화가 된 이후 안랩의 주가는 크게 하락한 후 다시 횡보 중이다.
안랩이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안 대표의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정치와 무관한 소식에도 안 대표를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다 보니 안랩으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추측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는 안 대표가 정치 활동을 지속하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재보궐선거 이후 국민의힘 합류나 내년 대통령 선거 등 굵직한 정치 이슈가 산적해 있다.
◆수익구조재편으로 매출 하락한 시큐아이, 사업기조 이어갈까?=삼성SDS의 보안자회사 시큐아이는 정보보안업계 매출 상위 5개 기업 중 유일하게 역성장한 기업이다. 매출액 1077억원으로 1192억원이었던 전년대비 9.6% 감소했다.
시큐아이의 매출 하락을 두고 의외라는 평가가 많다. 시큐아이는 국내 방화벽 시장에서 외산 벤더와 1·2위를 다투는 기업이다. 코로나19 이후 원격·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가상사설망(VPN)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이에 대한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 전망됐는데 정작 시큐아이의 매출이 줄었기 때문이다.
시큐아이는 이를 “수익구조재편에 따른 결과”라고 설명한다.
시큐아이의 매출은 ▲자체 솔루션 판매 ‘제품매출’ ▲타사 솔루션 판매 ‘상품매출’ ▲보안관제·유지보수와 같은 서비스 ‘용역매출’ 등으로 구분된다. 2019년까지는 상품매출이 482억원으로 비중이 가장 높았다. 제품매출, 용역매출은 363억원, 346억원이었다.
2020년에는 상품매출 185억원(61.6%↓), 제품매출 411억원(13%↑), 용역매출 481억원(38.8%↑)으로 바뀌었다. 매출 구조에 파격적인 변화가 있은 셈이다.
시큐아이 관계자에 따르면 시큐아이는 의도적으로 상품매출을 줄였다. 수익성이 높은 제품과 서비스 매출에 집중함으로써 영업이익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매출은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63억원으로 전년대비 32.3% 증가했다.
시큐아이는 앞으로도 제품매출·용역매출을 키우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올해 차세대방화벽(NGF) ‘블루맥스 NGF’와 와이파이6(802.11ax)를 지원하는 ‘블루맥스 WIPS’등을 바탕으로 운영기술(OT)과 소프트웨어 정의 광대역 네트워크(SD-WAN)에 대한 보안 기능 지원, 클라우드 보안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다만 시큐아이가 타사 제품 판매 비중을 줄이고 자체 솔루션, 서비스를 강화하는 사업 기조를 이어갈지는 불분명하다. 이와 같은 변화는 전임 대표인 최환진 대표 체재 하에 이뤄졌다. 지난 3월 18일 신임 대표로 지휘봉을 잡은 황기영 대표의 의중에 따라 사업 전략이 변할 수도 있다.
◆‘1000억 클럽’ 사정권에 둔 윈스··· 4번째 1000억 정보보안기업 되나=네트워크 보안기업 윈스는 작년 연결기준 매출액 938억원, 영업이익 187억원으로 각각 14.3%, 21.6% 증가했다. 1000억 클럽 달성을 한발자국 남긴 상태다.
특히 작년, 이 회사는 도쿄올림픽 특수로 인한 수출 증가가 유효했다. 코로나19로 일정이 연기됐지만 네트워크 장비의 경우 개최일보다 한참 이른 시간에 납품되기 때문에 타격을 받진 않았다. 하지만 도쿄올림픽 특수와 같은 특별 호재가 더 이상 없다는 점은 마이너스 요인이다.
침입방지시스템(IPS) 등 네트워크 보안 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윈스의 성장은 가속화되는 5세대 이동통신(G) 전환에 따른 결과다. 5G 시대가 되고 트래픽이 크게 증가하고 100기가(G)급 IPS 수요가 늘어난 것이 매출 상승의 이유다.
국내의 경우 LG유플러스를 시작으로 KT와 SK브로드밴드에 100G IPS를 공급 예정이다. LG유플러스에는 작년 1차 초도 제품이 납품됐고 KT와 SK브로드밴드와도 공급을 협의 중이다.
통상 제품에 집중했던 윈스는 올해부터 클라우드, 관제사업에도 뛰어든다. 앞서 작년 9월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반 클라우드 보안을 사업 목적에 추가했다. 윈스 관계자는 “AI 관제 플랫폼 개발도 마무리 단계다. 클라우드 사업자와의 파트너십으로 클라우드 기반 엔드포인트 보안 제품과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보안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갖춘 IT서비스 업체들도 관제사업 범위를 크게 확장하는 등 어느새 이 시장이 레드오션화가 진행되고 있기때문에 윈스가 어느정도 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AI에 올인하는 이글루시큐리티··· 작년 특허 34건 취득=통합보안시스템(SIEM)으로 익숙한 이글루시큐리티도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매출액 817억원, 영업이익 48억원으로 각각 전년대비 8.1%, 188.8% 증가했다.
작년 이글루시큐리티의 활동 중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연초부터 시작한 ‘특허 취득 러시’다. 이글루시큐리티는 작년 한해 동안 34건의 AI 관련 특허를 취득했다.
이글루시큐리티의 특허 취득은 다른 기업의 특허 상황과 비교했을 때 더욱 눈에 띈다. 특허정보넷 키프로스를 통해 확인되는 바에 의하면 매출 톱5 정보보안 기업 중 이글루시큐리티를 제외한 기업들의 특허 취득 건수는 한 자릿수다.
올해도 특허 취득을 이어가고 있다. 4월 2일 현재 이글루시큐리티는 10건의 특허를 취득했다. 특허 대다수는 SIEM 솔루션 ‘스파이더 TM AI 에디션’의 고도화 및 신제품 개발에 활용될 예정이다.
이글루시큐리티는 올해는 보다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스파이더 TM AI 에디션과 통합로그관리 솔루션 ‘스파이더 로그박스’, 보안 오케스트레이션·자동화·대응(SOAR) 솔루션 ‘스파이더 SOAR’ 등을 바탕으로 AI 보안관제, 클라우드 보안, OT 보안 등 3개 영역에 진출해 수익 모델을 다각화한다는 계획이다.
◆격전지 된 AI·클라우드·OT 보안··· 경쟁 치열해질 듯=통상 정보보안 기업 대다수는 고유의 영역을 유지하고 있다. 컨설팅에 강한 ADT캡스 인포섹, 방화벽의 시큐아이, SIEM의 이글루시큐리티, 네트워크 보안장비의 윈스. 보안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안랩이 특수한 경우다.
서로 바라보는 시장, 고객이 다르다 보니 기업들 간의 경쟁도 타 업종에 비해 적다. 경쟁을 한다면 국내 기업보다는 외산 벤더와의 경쟁이 더 치열한 편이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기업들이 AI, 클라우드, OT라는 공통의 화두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경쟁이 아니더라도 기업들끼리의 교집합은 점점 더 넓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정보보호 시장은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규모다. 꾸준히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모든 기업의 수요가 충족될지는 미지수다. 저마다의 경쟁력, 차별점, 개인기가 필요할 듯하다.
<이종현 기자>bell@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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