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각종 논란을 낳았던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 ‘이루다’에 대한 논란이 결국 소송전으로 비화됐다. 이루다의 제작사 스캐터렙에 대한 집단소송 절차가 개시한 것.
소송인 모집은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을 통해 이뤄졌다. 23일 오전 10시 기준 385명이 참여했다. 24일 자정(25일 0시)까지 추가 모집을 받는 중인 만큼 소송 참여 인원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소송은 법무법인 태림이 맡았다.
소송은 스캐터랩이 자사의 서비스 ‘연애의 과학’ 등을 통해 카카오톡 대화내역을 당사자 모두의 동의 없이 수집한 후 신규 앱(이루다)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점에 주안점을 뒀다.
카카오톡 대화는 ‘나와의 채팅’이 아니라면 2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화다. 연인간의 대화라면 이는 2명의 정보이며 이와 관련한 정보를 수집·활용코자 한다면 모두에게 개인정보 수집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또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하려면 적절한 수준의 비식별 처리가 이뤄져야 한다. 정보에 마스킹 처리(홍길동→홍OO)를 하거나 일부 정보를 삭제하는(서울 관악구 신림동 1234번지→서울 관악구) 등의 방법이 있다. 관련 절차를 위한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도 마련돼 있다. 하지만 이루다가 이름, 주소 등 개인정보를 노출함에 따라 적절한 수준의 비식별 조치가 취해지지 않음이 드러났다.
‘AI 윤리’ 이슈로 부각됐던 사건 초기 스타트업에 과도한 책임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사태가 개인정보 유출 논란으로 확산되면서 긍정론도 사라졌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이하 개인정보위)의 조사를 받는 중이다.
소송이 개시될 경우 ▲개인정보 수집 동의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여부 ▲개인정보 유출 등이 법적 공방의 주요 논쟁거리가 되리라 예측된다. 하지만 법적 책임 이전에,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스캐터랩은 “연애의 과학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이용자의 동의를 받은 만큼 해당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연애의 과학 개인정보 취급 방침에는 ‘신규 서비스 개발 및 마케팅·광고에의 활용’이 안내돼 있다. 신규 서비스 개발에 대한 이용자 동의를 거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 이용자는 “그러라고 준 데이터가 아니다”라고 항의하고 있다. 앱의 서비스 강화도 아닌, 전혀 다른 앱 개발에 데이터를 쓰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기업이 이용자 동의를 받아 수집한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신규 서비스 개발’을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데이터 활용 빅테크 기업인 구글도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으로 ‘신규 서비스 개발’을 명시하고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 역시 마찬가지다.
구글, 네이버 등과 스캐터랩의 차이는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들은 개인정보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만큼 개인정보보호에도 공을 들인다.
가령 네이버의 경우 엄격한 개인정보처리방침을 운영 중이다. 자체적인 ‘프라이버시센터’를 운영하며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투명성 보고서’를 통해 수사기관에서 몇건의 압수영장·통신사실확인이 왔는지, 이중 몇건을 처리했는지까지도 공개한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 네이버와 같은 수준의 개인정보보호 노력을 요구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데이터 활용의 전제조건이 개인정보보호인 것을 고려하면 이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면 데이터 관련 사업을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최근 발간한 ‘2020 개인정보보호 리포트’를 통해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이용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서비스는 좋은 서비스라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번 사태는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으로 데이터 활용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치솟은 가운데 발생한 일이라 더욱 충격이 크다. 스캐터랩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활용하는 AI·데이터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업계 공통의 시각이다.
한편 스캐터랩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개인정보위는 지난해 2021년부터 2023년까지의 개인정보보호 기본계획을 통해 그동안 형식적으로 진행돼 온 개인정보 수집 동의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