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국내 통신사를 상대로 보조금 갑질 논란을 빚은 애플이 자진 시정안 중 하나로 ‘최소보조금’ 설정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곧 공시지원금과도 이어지는 것이어서, 일각에서는 평소 ‘짠물’로 유명한 아이폰 시리즈의 지원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소비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4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심사하던 거래상 지위남용 건과 관련해 동의의결절차 개시를 신청하고 잠정 동의의결안을 마련했다. 동의의결이란 사업자가 제시한 시정방안이 타당할 경우 법 위반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애플은 그동안 국내 통신사에 광고비용과 고객수리비용 등을 떠넘기고, 특허권 및 계약해지와 관련해 통신사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거래조건을 설정하는 등 사실상 갑질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공정위가 심사에 착수하자, 과징금 등 법적 제재를 받기 전에 자진 시정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번 의결안에는 광고비용 분담 및 협의절차 개선과 보증수리 촉진비용 폐지 등 거래질서 개선방안, 그리고 1000억원 규모의 사용자후생 제고 및 중소사업자 상생지원방안이 포함됐다. 아울러 최소보조금 수준은 통신사 요금할인액을 고려해 조정하고, 추가로 협의를 위한 절차를 마련하기로 했다.
여기서 최소보조금은 곧 공시지원금을 뜻하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향후 아이폰12 등 신제품에 대한 지원금이 오르지 않을지 기대도 나온다. 그동안 아이폰의 경우 통신사 공시지원금은 ‘짠물’ 수준으로 유명했다. 지난 2018년 출시작인 아이폰XS도 7~8만원 요금제 기준 공시지원금이 아직 7만원대에 머물러 있을 정도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러나 이번 시정안만으로 아이폰 공시지원금이 오를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공정위가 최소보조금을 문제 삼은 것은 통신사들이 결정해야 할 보조금에 대해 애플이 간섭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지, 소비자에게 지급되는 보조금 액수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통상 공시지원금은 통신사가 지급하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상 제조사와 통신사 재원이 함께 투입된다. 국내 제조사들의 경우 판매 촉진을 위한 판매장려금을 통해 통신사들과 비용을 분담하고 있다. 하지만 애플은 이와 달리 장려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통신사가 아이폰에 지급하는 최소보조금(공시지원금)을 마음대로 정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사업발전기금(BDF)을 적립하도록 했다.
이에 애플은 이번 시정안에서 최소보조금을 통신사의 요금할인액을 고려해 조정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이는 통신사가 제공하는 25% 선택약정 요금할인에 따른 비용부담을 감안해 최소보조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는 뜻이다. 또한 애플은 최소보조금 위반에 따른 통신사들의 부당한 사업발전기금 적립 조항을 삭제하고, 조정절차를 도입해 통신사와의 상호협의 가능성을 남겼다. 즉, 최소보조금 설정은 결국 애플이 통신사에 자율권을 되돌려준다는 의미인 것이다.
공정위 역시 “애플의 보조금 간섭을 문제삼은 것일뿐 실제 얼마를 지급하느냐 하는 것은 이번 시정안과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애플의 경우 판매 마케팅 방식 자체가 국내 환경과 다르기 때문에 이를 쉽게 바꾸지는 못하는 점도 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애플은 전 세계적으로 신모델이 나오면 보조금이 아니라 이전 모델 가격을 낮춰 재고를 소진하는 방식을 추구해왔다”면서 “기존 방식을 고수하면서 자체 마케팅비를 늘려 소비자 혜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궁극적으로 단말기 보조금이 늘어나려면 결국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개선에 관한 법(이하 단통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애플도 제조사 보조금을 늘리겠다기보다 당장 공정위 처벌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으로 안을 내놨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단통법상 불분명한 제조사들의 단말기 보조금이 오픈돼야 삼성이든 애플이든 제조사끼리 자연스레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애플은 전날 공정위의 동의의결안 발표와 관련 “애플은 한국 소비자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 고객들이 최고의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모든 파트너사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전 세계 고객에게 가장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두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권하영 기자>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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