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착취물을 사고파는 ‘텔레그램 n번방 사태’는 국민적 공분을 샀다.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도록 익명성 기능을 강화한 텔레그램과 다크웹 등을 기반으로 암세포마냥 커져 왔다. 4월29일 n번방 재발 방지를 위한 법 개정안 3건이 통과되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섰다. 불법 성착취물을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한 이까지 처벌하는 강도 높은 법률이다. 이후 n번방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IT 업계와 유관기관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n번방 사태 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으로 ▲처벌 실효성 강화 ▲아동.청소년에 대한 확실한 보호 ▲수요 차단 및 인식개선 ▲피해자 지원 내실화(인터넷 사업자의 책임 강화) 등의 대책을 내놨다.
정보기술(IT) 업계도 n번방 재발 방지를 위한 협력에 나섰다. 특정 콘텐츠를 거름망으로 걸러내는 필터링 등의 기술적 조치가 대표적이다.
필터링 기술 중 적용이 쉬운 기술은 ‘디지털 증거의 지문’이라고 불리는 파일 고유값(해시값)을 이용한 ‘해시값 필터링’이다. 가령 A라는 영상의 해시값을 확보할 경우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는 해당 해시값을 이용해 A 영상의 업로드를 차단·추적할 수 있다.
해시값 필터링은 파일 형식이나 해상도 등이 변형될 경우 해시값이 변해 필터링을 우회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파일 내용 중 음원 주파수, 영상 색상값 등의 특징이 같은 파일을 찾아내 차단하는 ‘DNA 필터링’이 주목받고 있다. DNA 필터링은 원본 영상을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할 경우 일부 변형이 있어도 추적이 가능하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필터링 기술도 개발 중이다. 네이버는 음란물 필터링 AI 기술 ‘엑스아이’를 통해 부적절한 내용을 담은 이미지나 영상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검색 노출을 막는다. 필터링 대상이 음란물의 특징과 얼마나 유사한지에 따라 음란물 지수가 측정되고, 이 지수를 기준으로 필터링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기술적 조치로 n번방 재발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재 음란물을 100% 막는 기술은 없다. 또한 이러한 기술적 조치가 정작 음란물 유통의 근원지인 다크웹이나 텔레그램 등에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법학계 전문가는 “국내에서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이것이 해외 기업에 적용되지 않을 경우 소용이 없다”며 “n번방 사건의 사업자인 텔레그램은 국내 지사 및 대리인 부재 등으로 규제가 강화되더라도 법 집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n번방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해외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요구하는 규제나 의무 등을 준수할 수 있도록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하며 n번방 재발 방지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국제 공조’라고 주장했다.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는 정부, 민간 조직의 지원을 늘리고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 연방기구는 아동인터넷보호법(CIPA)에 따라 공립학교 및 도서관에 인터넷 접속 차단, 필터링 등의 기술적 조치를 취하도록 의무화한다.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비동의 성적 영상 사이트에 대한 시정 조치를 취하도록 한다. 또 디지털 성폭력 근절 비영리 단체인 사이버인권보호기구(CCRI)와 비동의 성착취물 지원단체 BADASS 등이 민간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고 있다.
영국은 ‘성범죄법’, ‘관음행위처벌법’ 등의 법적 제재와 함께 민간 차원에서 웹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리벤지 포르노 이미지, 영상을 모니터링한다. 이미지 기반 디지털 성착취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파이트 프로젝트 등도 진행되고 있다.
불법 음란물 유통은 대부분 영리 목적인 만큼 ‘돈줄’을 막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제안도 나온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는 가입 시 고객신원인증(KYC) 인증을 거치기 때문에 거래소가 협조할 경우 전자지갑의 주인을 특정할 수 있다. 수신자와 발신자를 숨기는 익명성 기능이 제공되는 다크코인의 경우도 컴퓨팅 파워를 대량으로 투입할 경우 출처를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다크코인인 모네로 거래를 종료하고 나섰다. 암호화폐가 범죄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국회는 29일, 30일 본회의를 열고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불법 성적 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한 사람은 물론 시청한 사람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신설했다.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한 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강요한 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모든 ISP가 음란물 필터링 등의 기술적 조치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음란물이 유통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도 제출됐다. 음란물을 100% 막을 수 있는 기술이 존재치 않는다는 것과 정작 근원지인 해외 기업에는 적용이 어렵다는 것 등으로 실효성 없는 졸속 입법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제20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오는 29일까지”라며 “한두 달 남짓한 시간으로 디지털 성범죄를 막는 입법을 만드는 셈인데, 실효성이 의심되는 법이 다수”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그는 “n번방 추적과 처벌은 지금처럼 강도 높게 해야 한다”며 “하지만 장기적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지금처럼 급급하게 법안을 만드는 만들 것이 아니라, 사안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논의가 선결돼야 한다”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