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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컴퓨터’ 익숙한 단어인가요, 낯선 단어인가요? ‘옛날세대’와 ‘요즘세대’를 나누는 기준이라고 하면 너무 가혹할까요.
삼보컴퓨터는 1980년 만들어진 국내 벤처기업으로, 올해 40주년을 맞은 컴퓨터 전문 브랜드입니다. 여기서 ‘삼보’는 인재‧기술‧서비스 등 세가지 보물을 의미하는데, 이들을 필두로 초창기 국내PC 선두주자로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1982년 삼보는 캐나다로 컴퓨터를 수출하며 ‘국내 1호 PC’, ‘대한민국 1호 PC’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기술력도 상당했죠. 애플이 ‘뉴턴’이라는 PDA를 출시했던 1993년, 삼보도 독자적 기술로 PDA ‘잼패드’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일체형 컴퓨터 등 지속적으로 혁신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삼보컴퓨터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외국기업의 경쟁에서 삼보가 밀려 사라진 걸까요?
아뇨, 삼보컴퓨터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2018년 매출은 약 913억을 기록했습니다. 심지어 수출도 전혀 하고 있지 않은 채로 말이죠. 국내에서만 활동하는 삼보가 소비자들 눈엔 보이지 않습니다. 삼보는 어떻게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걸까요?
답은 정부 공공구매 조달시장입니다. 2013년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은 데스크탑 PC를 ‘중소기업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했습니다. 정부 관공서, 학교 등에 공급하기 위한 수주경쟁에서 대기업이 제외된 것입니다. 2013년 50%, 2014년 75%, 2015년 100%…. 공공기관 조달시장에서의 중소기업 데스크탑 PC 구매율은 이때를 기점으로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이 공공기관 조달시장에서 삼보컴퓨터가 1위입니다. 삼보의 매출 95% 이상이 여기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조달청 나라장터 통계분석정보에 따르면 삼보컴퓨터의 조달 시장점유율은 최근 3년간 22~24% 정도입니다. 정부대상사업(B2G) 시장에서 삼보와 에이텍, 대우루컴즈 3사가 합쳐 약 68% 정도의 점유율을 갖고 있습니다. 70%가 넘어가면 담합이 될 수 있다고 하네요.
업계 관계자는 “공공기관 조달시장은 무려 4000억 규모”라며 “정부에서 3년마다 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기업들을 내부적으로 평가하는데 삼성‧LG도 항상 들어오고 싶어한다”고 말했습니다.
대기업도 현재 권한은 없지만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말인데요, 충분히 일리 있는 말입니다. 국내 경기침체 뿐 아니라 스마트폰 등 대체기기 보급이 확대되면서 PC시장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특히 소비자대상(B2C) 시장은 오래된 PC를 바꾸는 것 외 신규 수요창출이 없어 어려운 상황입니다.
반면 관공서‧학교‧유관기관 등에서는 4-5년 주기로 컴퓨터를 교체합니다. 시기에 맞춰 균형 있는 예산 집행과 안정적인 수요창출이 가능한 셈이죠. 교육청이나 국세청 등 대규모 수주를 따내면 그 기업의 제품을 전국망에서 가져갑니다. 삼보로선 정부 조달시장 교체 수요만 잘 공략하면 안정적 시장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입니다.
삼보컴퓨터가 국내 1세대 벤처기업이 PC 단일 브랜드로 40년 명맥을 유지해온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크게 주목받지 않고도 안정적인 경영을 해온 건 일반 소비자들을 두고 경쟁하는 레드오션 대신 정부사업을 노린 점, 또 데스크톱PC가 중소기업간 경쟁제품으로 선정됐다는 ‘운’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첨단이미지를 앞세웠던 기업이 안정을 추구한 회사로 안착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삼보컴퓨터는 사업보고서에서 “새로이 추진하기로 한 중요한 신규사업은 없다”고 밝혔는데요, 앞으로도 안정적인 사업을 운영해갈 수 있을까요? 정부에서 대기업PC를 수주할 가능성은 앞으로도 영영 없는 걸까요? 정부를 대상으로 한 중소기업간 경쟁에서도 변화와 혁신은 꼭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안나 기자>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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